[비즈한국] 2016년에 발간한 책 ‘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공부’에서 웬만하면 피해야 할 종류의 책을 소개하면서 ‘(소설을 제외한) 고전’과 ‘사업가의 성공담’을 거론한 바 있다. 고전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지식의 반감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역사적인 서술임에 분명하나, 이 책을 읽는 데 투입하는 시간에 차라리 잘 쓰인 경제학 교과서나 혹은 입문서를 읽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공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경제학 지식은 영원 불멸하지 않으며, 이미 후학들에게 많은 부분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부론’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인 ‘핀 공장 사례’도 마찬가지다.
숙련된 장인 한 명이 혼자서 바늘을 만들 때에는 잘해야 하루에 한 개 정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핀 제조 과정을 18개 공정으로 나누어 분업을 하면 하루에 4만 80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다.*
매우 흥미로운 예이지만, 경제의 성장은 ‘분업’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아무리 분업을 확대한들 핀 시장이 매우 작다면, 핀 공장이 아예 출현하기도 힘들 것이다. 더 나아가, 아무리 혁신적인 기계가 발명되더라도 인건비가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 비싼 기계를 도입할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분업뿐만 아니라 기술의 축적 및 제도의 발달 등이 뒷받침되어야 지속적인 산업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국부론’ 발간 이후 경제발전의 원동력에 대해 수많은 연구가 이뤄져 왔으며, 쿠즈네츠와 솔로 등은 경제성장의 측정 방법은 물론 성장의 원동력을 다양한 측면에서 파헤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의 발전, 특히 지속적인 성장의 근원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국부론’을 읽는 것보다 최근에 쓰여진 ‘경제 개발론’ 교과서가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설이나 시, 수필 같은 문학 고전마저 읽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스타인벡의 역작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에 대해 쓴 수많은 경제 보고서보다 대공황 시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1929년 대공황 이후 발생한 심각한 불황으로 정든 고향 오클라호마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조드 집안이 겪은 생생한 고난은 ‘불황’이 얼마나 인간을 망가뜨리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불행에 취약하다는 것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이 책 발간 이후 미국에서는 ‘빈곤한 이동 농민’의 어려움을 돕기 위한 많은 조치들이 취해진 바 있다.
고전 읽기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오늘은 사업가의 성공담에 초점을 맞춰보자.
성공에서 ‘운’과 ‘실력’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늘 소개하는 책 ‘골목의 전쟁’은 한국 자영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특히 성공한 기업가의 성공담을 너무 신봉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가 조금 더 극적이기를 바란다. 특히 자신의 성공에 사람들이 관심이 몰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면, 그가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유혹을 이길 수 있을까? -책 70쪽
아래 그림은 성공에서 ‘운’과 ‘실력’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림의 오른쪽 끝에 있는 체스나 바둑 같은 게임은 거의 절대적으로 실력이 우선이다.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한들, 바둑 초보자가 바둑에서 이창호 9단을 이길 가능성은 0%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야구는 조금 다르다. 아무리 강팀이라고 해도, 한 해 동안 승률 100%를 기록할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한국프로야구(KBO)의 역대 승률 최고팀은 1985년 삼성 라이온즈로, 승률은 0.706이었다. 즉 10경기 중에서 7경기를 이기면 역대 최고 승률팀이 된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아무리 실력이 약한 팀이라고 해도 최강팀에게 10판 중 3판은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봐도 된다.
그럼 주식은 어떨까?
한국 주식시장에서 매번 외국인과 기관이 큰 돈을 벌어가지만, 사실 주식투자는 매우 ‘운’에 좌우되는 곳이라는 게 학자들의 의견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초심자의 행운’ 아닐까? 주식을 처음 투자하는 사람일수록 수익률이 높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칭하는 이 현상은 주식투자의 성과가 매우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아래 그림에서 제일 왼쪽 도박 바로 옆에 있는 게 주식투자다).
그럼 사업의 성과는?
자신의 성공을 부풀리고 싶은 사업가 입장에서는 안된 이야기지만, 이 역시 ‘주식’과 마찬가지로 꽤 운에 좌우되는 측면이 많은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골목의 전쟁’에 거론되는 케이크 카페, D 업체 이야기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 업체의 성공 스토리는 대단하다. 그는 대학시절에 장학금과 용돈 등을 털어서 케이크 카페를 차렸다. 그리고 7년 동안 적자를 보다가 8년째부터 턴어라운드를 했으며, 10년째에는 연 매출 300억 원, 고용직원도 300명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터뷰에서 대표는 적자를 봤던 7년 동안 무척 힘들었지만 뚝심으로 이겨내고 성공했다고 말했다. -책 89쪽
대표의 생각과 달리, 이 업체의 성공 포인트는 “오래 장사한 것”일 수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월 매출이 2000만~3000만 원씩 나왔음에도 7년 동안 적자였다가 2호점 오픈이라는 도박에 성공하면서 숨통을 틀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핵심은 적자가 났음에도 7년이나 영업을 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영업을 이렇게 오래 못한다. 2017년 초까지 ‘상가임대차보호법’ 상의 계약기간이 5년이었기에 권리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그 기간 안에 임차인을 구해야 한다. 더군다나 목 좋은 상권이라면 임대료 상승률이 높아서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책 92쪽
오래 장사한 것이 성공의 원인이라는 김영준 저자의 지적은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어떻게 이 업체는 7년을 유지한 것은 물론, 2호점 오픈이라는 도박이 가능했는지 궁금해진다.
힌트는 업체 대표의 배경에 있다. 처음 가게를 차린 지역은 인천의 핵심 상권으로, 대표의 부친이 그 상권 중심 빌딩의 건물주였다. 부친의 건물에서 가게를 했기에, 다른 지역에서 영업을 했다면 겪어야 했을 계약 만기와 권리금의 회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이는 절대적 이점이다. -책 94쪽
물론 이렇게 부유한 집안의 금수저로 태어났음에도 7년 동안 사업을 지속해 결국 성공에 이른 노력은 분명히 칭송받아야 한다. 다만, 성공의 원인을 능력이나 노력에만 돌리는 것에는 거부감이 든다.
누군가의 성공담은 참으로 흥미롭지만, 그것을 100%인 양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성공담을 ‘실제’인 양 믿고, 또 그 믿음을 실행에 옮긴다면 예상 못한 어려움에 직면해 파산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사업은 (주식만큼) 힘든 일이며, 그리고 아무리 준비하고 노력해도 실패할 위험이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매일경제(2014.3.24), “이선 교수의 창조경제 특강-아담 스미스의 핀 공장 이야기”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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