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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추석의 사나이' 성룡

몸 사리지 않는 현란한 액션, 숙고하고 진화하는 영화의 장인

2017.10.02(Mon) 06:00:00

[비즈한국]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려니까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연기를 해야만 했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팬들을 즐겁게 해주느냐가 관건이다. 죽는 게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팬들이 즐거워하면 되니까 그냥 한다.”

 

2013년 2월 ‘차이니즈 조디악’ 개봉에 맞춰 홍보를 위해 방한한 성룡(청룽)이 한 얘기다. 

 

영화 ‘취권’​ 스틸 컷. 성룡이 매운 고추를 먹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다.


성룡은 1980~1990년대 한국의 추석과 설을 책임지는 명절 단골 배우였다. 그 시절 극장가에는 성룡의 영화가 항상 개봉했고 TV에서는 성룡의 영화들이 대거 편성돼 방영됐다. 성룡의 액션 코미디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박장대소하며 볼 수 있는 가족 오락영화였기 때문이다. 

 

이제 60대의 나이라 예전만큼 몸 사리지 않는, 신기에 가까운 액션 연기는 보여주지 못하지만 ​성룡은 여전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고 있다. 

 

성룡은 1954년 홍콩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환경으로 인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대스타가 된 이후에도 대본을 읽을 수 없어 동료가 대신 읽어준 대사를 외어 연기했다고 한다. 부인 임봉교(린펑자오)도 성룡에게 대본을 읽어주다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고 한다. 물론 성룡은 현재 글을 깨우쳐 문맹을 벗어났고 영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젊은 시절 성룡의 액션 연기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하는 경탄을 자아낸다. 그의 액션 연기는 다양한 소품을 활용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뒤틀면서 서커스에서조차 보기 힘든 묘미로 가득 차 있다. 

 

성룡은 이러한 액션 연기의 초석을 우점원 경극학교에서 쌓았다. 이곳에서 무술, 기계체조, 연기를 10년간 배웠다. 이 학교의 4년 선배가 홍금보(홍진바오)였고, 4년 후배가 원표(위안바오)였다. 훗날 세 사람은 1980년대 초중반 홍콩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전반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홍콩 코믹 액션 3인방으로 군림했다. 

 

 

성룡은 경극학교를 졸업한 후 오랜 기간 영화판에서 단역을 전전했다. 이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대 홍콩의 스타 배우 부성(푸청)이 스케줄 문제로 ‘사형도수’(1978) 주연에서 하차하자 성룡이 대타로 주연을 맡게 됐고 영화에서 그 특유의 코믹 액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같은 해 출연한 ‘취권’(1978)이 동아시아권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취권’은 우리나라에는 이듬해인 1979년 상륙했는데 지금은 사라진 서울 국도극장에서 상영됐다. 

 

무려 수개월간 한 극장에서 상영된 ‘취권’은 서울에서만 관객 90만 명을 동원해, 멀티플렉스 체제가 도입되기 전 20여 년간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전까지 엄숙하고 비장했던 무술영화들과 달리 성룡의 영화는 관객들의 배꼽을 잡게 했고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성룡은 ‘사제출마’(1980) 대성공 이후 할리우드로 넘어가 ‘배틀 크리크’(1980)에 원톱 주연으로 출연했으나 실패했다. 홍콩에 돌아와 ‘오복성’(1983), ‘프로젝트 A’(1984) 등 스케일이 큰 오락영화에 출연하면서 다시 동아시아를 호령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주윤발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 주성치로 대표되는 엽기 코믹물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성룡의 입지는 다소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워’​ 스틸컷. 성룡이 함께 출연한 크리스 터커(왼쪽)와 비행기 안에서 노래를 들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진출에서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할리우드에 진출한 성룡은 ‘러시아워’ 시리즈와 ‘상하이 나이츠’(2003) 등 세계적 히트작을 내놓았다. 그러나 세월은 비켜갈 수 없듯 그 역시 나이를 들어가면서 더 이상 현란한 액션을 구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점점 그의 영화는 다양한 장치와 특수효과를 활용한 작품이 많아졌고, 그에게서 몸 사리지 않는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을 멀어지게 했다.

 

성룡은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를 직접 감독해왔다. 그의 감독 스타일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주의로 유명하다. 자신이 원하는 화면을 담아내기 위해 한 장면을 무려 1000번을 찍은 적도 있다고 한다. 

 

성룡의 작품에는 스턴트 중의 사고, NG 등을 모아서 엔딩 크레딧에 올리는 전통이 있다. 성룡은 이를 통해 자신의 몸을 이용해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는 영화 장인으로서 존재감을 알리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함부로 따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성기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지만 성룡의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성룡은 고비가 닥칠 때마다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신의 장점을 숙고해 업그레이드해왔다. 아쉽게도 요즘엔 명절 때 성룡의 영화가 개봉하거나 전파를 거의 타지 않는다. 그래서 추석이면 성룡 영화가 그리워지는 이유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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