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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너무 사소해' 공권력이 외면한 응급실의 새벽은 위태롭다

여성 인턴 성추행, 욕설에도 출동한 경찰은 그냥 가버려…의료진이 기댈 곳은 어디?

2017.09.30(Sat) 06:00:00

[비즈한국] 새벽 4시였다. 응급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고로 죽어가는 사람, 사고로 이미 죽어 누워있는 사람, 망연자실한 망자의 배우자, 아직은 영문을 모르는 자녀들, 그리고 의식저하 환자가 밀고 들어와 뒤엉키고 있었다. 

 

그 틈에 어딘가 행동거지가 불안해 보이는 60대 남자가 등장했다. 그가 응급실에 온 이유는 ‘방금 어떤 여자에게 목을 잡혀서’라고 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고, 아마 의학적인 치료보다는 목을 잡힌 것이 분해서 온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심지어 경찰이 그때까지도 욕을 하던 환자를 그냥 응급실 문 앞에 두고 간 것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비즈한국DB


초진을 위해 여자 인턴이 다가갔다. 환자는 앞쪽 목에 상해를 입어 아프다고 호소했다. 인턴은 육안으로 목과 턱 부분을 보았으나 특별한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환부를 촉진했을 때 별다른 부종이 없음까지도 확인했다. 기타 병력까지 확인하고, 인턴은 보고를 위해 자리를 뜨려고 했다. 

 

환자는 돌연 자기가 겪은 일에 대한 분이 안 가셨는지 떠나려는 인턴의 손목을 꽉 붙들어 자신의 턱과 목으로 가져갔다. “여기가 아프다니까. 여기 다시 만져보라고.” 환자가 두 손을 이용해 강제로 인턴의 팔목을 잡아 자신의 목과 턱을 만지게 하는 모양새였다. 거친 손아귀였고,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당해 불쾌감을 느낀 인턴은 소리를 질렀다. “뭐 하시는 거예요.” 그녀는 억지로 환자의 손을 뿌리쳤다.

 

나는 이 장면을 옆에서 명백히 보았다. 환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충분히 성추행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여자대학교의 부속병원이었고,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더 엄중하고 단호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환자는 자신이 무슨 성추행을 했냐고 길길이 뛰었다. 

 

경찰 두 명은 곧 응급실에 등장했다. 계급이 높아 보이는 쪽이 의료진의 사정을 정리해서 들었고, 계급이 낮아 보이는 쪽은 완력으로 날뛰는 가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지했다. 우리는 정확히 방금 일어났던 사실을 전했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적절한 처분을 원한다고 전했다. 

 

환자는 자기는 손을 잡은 일도 없으니 CCTV를 돌려보면 되지 않겠냐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길길이 날뛰다가 결국은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개XX. 나를 성추행범으로 모는 개XX. 병원이 무슨, 아프다니깐 이런 XX놈들.”

 

우리는 이제 이 사람이 응급실에서 욕설과 폭언을 하며 물리적으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으므로, 이는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며, 방금 성추행과 더불어서 이것까지도 처벌을 원한다고 전했다. 현행범이니 연행해야 하지 않겠냐고, 더불어 목을 잡혀서 왔지만 겉으로도 멀쩡하고 말을 잘 하니 기도도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으므로, 진료는 관련된 처벌 이후에 받아도 될 것이라는 소견까지 전했다. 

 

경찰은 알겠다고 하며 아직까지도 고래고래 욕설을 하는 환자를 데리고 나갔다. 응급실 바깥에서 경찰과 남자는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나를 성추행범으로 모는 이 개XX들”에 대한 욕이 들려왔다. 10분 뒤, 방금 계급이 높아 보이는 경찰이 다시 들어와서, 성추행을 당했던 인턴에게 말했다. 

 

“이번 사건은 너무 사소하고 처벌하기도 애매한 사항이므로, 저희는 사건을 종결하고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그냥 가버렸다. 응급실 난동에 대한 공권력의 설명까지 더불어 원했던 나에게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우리 레지던트가 덧붙였다. “이번에는 그래도 쓸데없는 일에 신고했다고 구시렁거리지는 않네요.”

 

놀라운 것은 심지어 경찰이 그때까지도 욕을 하던 환자를 그냥 응급실 문 앞에 두고 간 것이다. 방금까지 우리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물리력을 행사하던 환자는 다시 욕을 하며 들어와 앉았다. 통제되지 않는 사람이라, 이제 공권력이 떠난 응급실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 몰랐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의 절박한 보호자와, 막 남편을 잃고 망연자실한 아내와, 어린 자녀들 사이에 그가 앉아있는 꼴이 위태로웠다. 

 

이번에는 당연히 내가 직접 진료에 나섰고, 목은 CT를 찍어서 확인해야 한다는 말에 또 다시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다가, 돈이 없으니 진단서나 써달라고 하더니, 좀 있다가 모든 검사를 안 받고 그냥 응급실을 나갔다. 아침까지 그가 다시 돌아올까 조마조마했다. 

 

어제 일어났던, 있는 그대로의 사건이다. 실은 우리도 이 사람이 의미 있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허나 이 환자가 명백하게 성적인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한 것은 맞았고, 이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으며, 또한 한참 사람들의 생사가 오가고 있는 응급실에서 의료진의 진료가 방해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증거가 확실했고, 정당한 처벌의 의사를 밝혔고, 이에 관련해서 적어도 진료가 방해받지 않게 연행이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이런 상황에서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의료진은 기댈 곳이 전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얻은 교훈은, 어제 그 환자가 한 행동 전부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합법이라는 것이며, 의료진에게 욕설을 해도 현행법상 무탈하며, 우리가 정말로 기댈 곳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린 어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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