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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인생독서] '왕좌의 게임' 조지 마틴의 '새파란' 시절을 읽다

작가가 성장하듯, 책을 읽는 독자도 함께 성장하기를

2017.09.26(Tue) 10:13:38

조지 R. 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를 원작으로 한 인기 미드 ‘왕좌의 게임’. 사진=HBO


[비즈한국] 평생을 책 읽는 즐거움으로 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그 많은 책을 번역해준 덕분에 즐길 수 있었어요. 1990년대 중반 외대 통역대학원 다니던 시절, 빚 갚는 심정으로 취미 삼아 SF 소설을 번역했어요. 국내 미공개 단편 중 재미난 작품을 번역해서 나우누리 SF 동호회에 올렸습니다. 배낭여행 갔다가 영어 원서로 ‘휴고상 수상 단편선’을 구했는데요, 그중에서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작품이 하나 있어요. SF 3대 문학상인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의 3관왕 수상작인 ‘샌드킹’입니다. 

 

신기한 애완동물을 찾던 주인공이 샌드킹이라는 외계의 곤충(?)을 사들이는데요, 모래 속에 집을 지어 살며 서로 전쟁을 하는 동물입니다. 친구들을 불러다 샌드킹의 싸움 구경을 시키다 재미를 더하려고 샌드킹들을 굶깁니다. 굶으면 포악해지고 싸움이 더 잔인해지거든요. 온갖 난폭한 동물들과 싸움을 붙이다보니 샌드킹의 전투력이 날로 커지고, 결국엔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SF와 공포를 결합한 놀라운 작품이었어요.

 

단편 ‘샌드킹’이 수록된 조지 R. R. 마틴 걸작선.

몇 달 전, 신문을 읽다가 미국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로 세계적 팬덤을 형성한 조지 R. R. 마틴(69)의 중단편 소설집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봤어요. 그의 46년 문학인생을 집대성한 ‘꿈의 노래’가 나왔는데 그중 제2권 ‘하이브리드와 호러’에는 마틴의 대표작 ‘샌드킹’도 포함됐다고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그 옛날 샌드킹을 쓴 작가가 ‘왕좌의 게임’ 원작자였어? 반가운 마음에 책을 주문해서 보니, 90년도에 읽었던 그 ‘샌드킹’이 맞네요.

 

총 9편의 작품이 수록된 걸작선인데요, 읽다보니 스티븐 킹이 자꾸 떠오릅니다. ‘우주판 샤이닝’이라고 불리는 ‘나이트플라이어’를 읽으면서, ‘어라? 스티븐 킹 소설 중에도 같은 제목의 이야기가 있지 않나?’ 했어요. 스티븐 킹의 ‘나이트 플라이어–The Night Flier’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이야기고, 조지 R. R. 마틴의 ‘나이트플라이어-Nightflyers’는 승객들이 죽어나가는 우주선 이야기입니다. 살을 빼려다 무시무시한 공포를 맛보게 되는 ‘원숭이 다이어트’는 스티븐 킹의 단편 ‘금연 주식회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이어트건, 금연이건, 어려운 걸 쉽게 하려면 악의 유혹에 빠지게 되지요.

 

‘아이스 드래곤’이라고 용들이 나오는 이야기도 있어요. 주인공 여자아이는 어려서 동상에 걸려 죽을 뻔한 이후,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온몸이 얼음으로 덮인 아이스 드래곤을 만나 친해지는데요. 그때 적국의 용기사들이 세 마리의 용을 몰고 마을을 습격합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을 내뿜어 주민들을 태워죽이지요. 그 순간 아이는 아이스 드래곤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불을 뿜는 용과 냉기를 뿜는 아이스 드래곤의 공중전이 펼쳐집니다. 불과 얼음의 싸움을 그린 ‘아이스 드래곤’을 보며, 훗날 ‘얼음과 불의 노래’의 세계관이 이 작품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작품에 얽힌 작가의 코멘터리도 재미있어요. 작정하고 쓴 작품은 반응이 없고,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쓴 소품이 의외의 대박을 냅니다. 1978년 크리스마스 휴가 때 3편의 단편을 작업하는데요. 회심작은 ‘아이스 드래곤’이었어요. 다음으로 기대한 작품은 ‘십자가와 용의 길’. 심심풀이 소품 삼아 썼던 작품이 ‘샌드킹’인데요. 그게 그의 대표작이 됩니다. 

 

심심풀이로 쓴 ‘샌드킹’으로 이름을 알린 조지 R. R. 마틴은 ‘왕좌의 게임’으로 톨킨을 잇는 판타지의 대가가 된다. 사진=조지 R. R. 마틴 트위터


1948년생인 조지 R. R. 마틴은 1967년부터 SF 잡지에 단편을 기고하기 시작해서 1979년작 ‘샌드킹’으로 이름을 알리고, 1996년에 나온 ‘왕좌의 게임’으로 톨킨의 뒤를 잇는 판타지의 대가가 됩니다. SF, 판타지, 호러를 넘나들며 다양한 단편으로 자신의 적성을 시험한 후, 판타지 대하 시리즈로 마지막 승부를 거는 작가를 보면서, 역시 끈기가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가의 인생이 성장하듯, 책을 읽는 독자의 인생도 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책을 읽은 후, 서점에 달려가 ‘왕좌의 게임’과 ‘왕들의 전쟁’을 샀어요. 이번 추석, 행복한 명절이 될 것 같습니다. 긴 연휴, 최고의 휴가는 역시 독서지요.​

김민식 MBC 피디​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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