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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시민의 '클라스'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상식을 지키고 부끄러움을 아는 게 클라스

2017.09.11(Mon) 14:48:00

[비즈한국] 언론에서 종종 얘기하는 사회지도층이란 표현에 심각한 거부감이 있다. 교수나 의사, 판사, 검사부터 정치인, 고위관료, 기업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다 사회지도층이란 타이틀을 붙여준다. 심지어 부자나 연예인처럼 돈이 많아도, 유명하기만 해도 사회지도층이라고 칭한다. 

 

도대체 누가 누굴 지도한단 말인가? 사회지도층이란 표현 자체가 지극히 권위주의적이다. 사회에 계급이 존재하듯, 상위의 누군가가 지도층으로서 보편 다수의 일반 국민에게 가르침도 주고 모범도 보인다는 것인데,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말이다. 헌법에도 보장되듯 우린 평등한 존재다. 부와 지위가 권력이 되어 우월적 존재이자 사회적 서열을 만들어내는 건 지극히 구시대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지도층(社會指導層)을 영어로 하면 leading people of the society 혹은 leaders of the society라고 쓸 수 있을 텐데, 사실 이 표현은 서구 뉴스에서 보편적으로 쓰진 않는다. 특히나 우리처럼 판사, 검사, 의사나 CEO에게 붙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말을 아주 보편적으로 쓰는 걸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검색에서 ‘사회지도층’을 검색하면 1929년 2월과 4월에 각기 ‘동아일보’에 사용된 게 최초로 보인다. 일제 식민시대에 쓰던 다소 권위적이고 계몽적인 표현인데, 기사에 쓰인 “實(실)로 이 社會指導層(사회지도층)의 가림업는 鞭韃(편달)과 指導(지도)를 바들수 잇섯든 까닭이거니와” 같은 표현의 뉘앙스로 봐서도, 사회지도층이 일반인보다 우월한 존재이며 그들을 잘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 말은 일제시대에 아주 간간이 쓰였다. 1년에 한두 번 쓰일까 말까 했을 정도다. 이 말을 50년대에도 아주 일부가 쓰였고, 60년대에도 비슷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많이 쓰기 시작한 게 60년대 후반부터다. 70년에 진입하면서 더 많이 쓰였고, 80년대에는 그보다 더 늘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90년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사회지도층이란 말을 정치적으로 가장 잘 활용했던 게 1970~80년대였던 셈이고, 그 관성을 1990년대 이후 지금껏 이어받아서 언론에선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을 복제하듯 쓴다. 우리 사회가 사회지도층이란 말을 좋아했던 것은 6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30년간 이어졌던 군사정권 영향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회지도층이란 말은 그만 써도 된다. 이제는 시민권력을 얘기해야 한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습니다.”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미읍성에서 열린 ‘제6차 아시아 청년 대회 폐막 미사’ 강론 때 한 말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 단결된 힘이 바로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우리의 미래입니다.”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브리핑 때 했던 말이자 그가 남긴 대표적 어록이다. 무덤의 비석 받침 바닥면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공식석상이건 비공식석상이건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자주 언급했던 표현이 바로 ‘깨어 있는 시민’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꽤나 비슷하면서도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가 종교를 얘기하건 민주주의를 얘기하건, 시민의 건강한 힘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우리는 최근 아주 유감스러운 일을 목격했다. 어쩌면 우리 시민의 수준이 아직은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싶어서 화가 난다. 아니, 장애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장애인 학부모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사회라니? 장애인 학교는 혐오 기피 시설이고, 병원은 선호 시설인가? 그리고 이 모든 사달이 땅값, 집값이 오르느니 내리느니 하는 이유에서 일어났다는 것도 끔찍하다. 마찬가지 이유로 소방서 건립을 반대했던 곳도 있었고, 기존에 있던 실업계 고등학교를 몰아내버리려 했던 곳도 있었고, 대학 기숙사를 못 짓도록 반대했던 곳도 있었다. 놀랍게도 다들 집회도 하고, 대놓고 자신들의 뻔뻔함을 당당히 드러냈다. 

 

사회지도층이란 말이 주는 끔찍함도 빨리 지워야겠지만, 탐욕스런 사람들이 시민이란 이름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사회적 지위나 직급이 높은 게 그 사람의 ‘클라스’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상식은 지키고, 부끄러움은 알아야 하는 게 클라스다.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클라스의 맥시멈이 아닌 ‘미니멈’을 얘기하는 게 현실적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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