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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월성 유찰" "알았시유" 효성·현대중·LS, 원전 변압기 입찰담합 의혹

카톡·문자·전화에 낙찰자와 가격 협의 내용 고스란히 담겨…업체들 "담합 없었다"

2017.09.05(Tue) 17:13:55

[비즈한국]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원자력발전의 안전과 신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뜨겁다. 이런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이 발주한 원자력발전소 변압기 구매 사업에서 납품업체인 효성중공업·현대중공업·LS산전이 담합한 정황 자료를 ‘비즈한국’이 입수했다.

 

입찰담합은 납품 단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인 만큼 세금이 낭비되고, 품질로 승부할 이유가 사라져 불량의 여지까지 생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을 ‘시장경제의 적’으로 규정하고 다른 불공정행위보다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정위와 수사당국에 적발된 입찰담합 사건들과 비교해 구체적인 담합 내용이 담긴 자료가 외부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즈한국’ 취재 직후 한수원은 사실 확인에 착수했다. 

 

국내 원자력발전소에 사용되는 변압기는 효성중공업·현대중공업·LS산전 3사의 과점형태로, 이들은 입찰 시 낙찰자와 가격을 사전 협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변압기란 교류전압을 높이거나 낮추는 장치다. 수력·화력·원자력 등 각종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공장과 가정에 전달될 때 발생하는 손실을 줄이는 데 사용된다.  

 

한수원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원자력발전소 25기의 변압기는 효성중공업·현대중공업·LS산전의 3사가 과점하고 있다. 1977년 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건설된 이후 30여 년간 과점 형태가 이어지고 있다. 고리·울진 지역 원자력 발전소들에는 대부분 효성중공업의 변압기가 납품됐고, 월성·영광 지역 발전소들에는 현대중공업 변압기가 납품되는 식이다. LS산전은 2000년대 후발주자로 들어왔다.   

 

‘비즈한국’이 입수한 자료는 2010~2015년 3개 업체 변압기 담당 실무자들이 주고받은 메신저 내용과 문자메시지, 녹취파일 등이다. 이들은 낙찰될 업체와 가격 등을 사전에 합의하거나, 수의계약을 유도하기 위해 입찰을 고의로 유찰시켰다. 실제 입찰 결과도 이들의 대화 내용대로였다. 

 

3개 업체 실무자들이 근무하는 해당 영업팀은 화력, 수력 발전소 등에도 변압기를 납품하고 있다. 이들 대화에는 원자력발전소 외에 다른 발전소도 언급된다. 담합이 더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 2013년 울진 1, 2호기, ‘효성 밀어주기’

 

2012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 효성중공업 관계자와 LS산전 관계자는 긴밀한 대화를 나눈다. 한수원이 발주한 ‘울진 1, 2호기 480V 교류 정상/비상 계통 변압기 구매 계약’과 관련된 대화다. ‘비즈한국’ 확인 결과, 관계자들은 당시 기준 경력 10년 이상의 영업 실무자들이다.  

 

LS산전 실무자와 효성중공업 실무자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LS산전 관계자는 경쟁사에 투찰 가격을 알려주고 “얼마 쓰셨냐”고 되묻기도 했다.


자료를 공개한 A 씨에 따르면, 대화 내용 중 ‘135’는 투찰 가격 13억 5000만 원을 뜻한다. LS산전 관계자는 자신이 투찰한 가격을 효성에 알려준 뒤 얼마에 썼는지 되물었다. A 씨는 “효성은 당시 11억여 원을 제시했고, LS산전은 사전에 합의한 대로 가격을 효성보다 더 높여서 썼다”며 “2013년 3월 효성이 최종 낙찰업체가 됐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이 2013년 발주한 변압기 구매사업은 효성에 최종 낙찰 됐다.


한국수력원자력 전자상거래시스템 ‘K-Pro’를 통해 확인한 결과, 당시 한수원이 발주한 이 변압기 구매 사업은 2013년 3월 19일 (주)효성(입찰 주체는 효성이지만 변압기 실무는 효성중공업이 담당)이 11억 3899만 9974원에 계약업체로 결정됐다.

 

# 월성 1호기, 고의 유찰 뒤 ‘수의계약’

 

이들은 입찰을 고의로 유찰시키기도 했다. 효성중공업 실무자는 LS산전 실무자에게 “월성. 이번에도 유찰시키기로 했다”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유찰 후 가격조사 다시 한 다음에…”라고 말했다. LS산전 실무자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LS산전 실무자와 효성중공업 실무자의 고의 유찰 관련 대화. 이 계약은 2차례 유찰됐고 효성중공업이 수의계약으로 사업자로 선정됐다.

 

고의 유찰은 낙찰 가격을 높이거나 특정 업체에 수의계약을 밀어주기 위해 활용된다. 두 업체 실무자들이 대화를 나눈 계약은 2013년 6월 26일 최종 낙찰자가 결정된 ‘월성 1호기 예비용 여자변압기 구매 계약’이다. 이 사업은 두 차례 유찰됐고 (주)효성(효성중공업)이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한수원 K-Pro에 따르면 수의계약 사유는 “경쟁입찰을 실시했으나 입찰자가 1인”으로 명시돼 있다.

 

2013년의 월성 1호기 변압기 입찰은 2차례 유찰 후 (주)효성이 수의계약으로 입찰을 따냈다.

  

# 부서장이 보고 받아…개인 일탈 아닌 조직적 담합 의혹

 

그동안 공정위와 경찰·검찰 등 수사당국에 적발된 입찰 담합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각 사 부서장이나 팀장급 임원들끼리 주로 합의하고 결정을 내렸다. 영업 실무자 개인 판단이 아닌 부서장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담합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즈한국’이 입수한 자료에서도 효성중공업·현대중공업·LS산전 관련 팀 부서장들의 대화 내용이 발견된다. 이들은 경쟁사 실무자와 직접 전화통화를 하거나 담합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2014년 11월 7일 오후 4시 42분부터 녹음된 전화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효성중공업 영업팀 차장과 현대중공업 영업팀장의 대화가 이어진다. 현대중공업 영업팀장은 지난해 퇴사했다.

 

전화통화는 효성중공업·현대중공업이 계약을 진행하기로 한 상황에서 LS산전이 계약에 참여하자 이를 ‘막겠다’는 대화로 흘러간다. 효성중공업 실무자는 현대중공업 팀장에게 “LS가 들어오냐, 안 들어오냐”며 “어차피 제가 하기로 한 거니까. LS 뭐 늦게라도 알게 됐으면 제가 그건 막을게요”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영업팀장과 효성중공업 실무자의 전화통화 녹취록. 효성중공업 실무자는 경쟁사 영업팀장에게 “LS산전이 들어오냐, 안 들어오냐”며 “들어오면 막겠다”라고 말했다.

 

이 대화는 2015년 1월 23일 최종 낙찰자가 선정된 ‘신고리 3, 4 여자 변압기 구매 계약’ 사업 관련 내용이다. 한수원 K-Pro에 따르면 이 계약의 최종 낙찰자는 효성이다.

 

보도 이후 효성 측은 “당시 실무 담당자는 녹취록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며 정상적인 절차에 의하여 진행한 것이지 담합이 아니다. 또한 그 프로젝트는 입찰 참가자격이 현대중공업과 당사, 2개사뿐이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 실무자들 “기억나지 않는다”

 

앞서의 메신저 대화와 문자메시지, 전화통화에서 대화를 나눈 당사자들은 모두 ‘비즈한국’과의 전화통화에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눴던 LS산전 실무자는 처음 “효성중공업 관계자를 모른다”고 대답했고, ‘비즈한국’이 입수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일부와 이 관계자가 직접 올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대해 설명하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담당하는 계약 건도 많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다만 울진과 월성은 LS산전이 계약하지 못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 역시 전화통화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이들에게 카카오톡 대화, 또는 통화 내용을 직접 보고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두 관계자 모두 거부했다.

 

LS산전 당시 영업팀 차장과 효성중공업 실무자가 나눈 대화.  LS산전 관계자는 대화를 나눈 효성중공업 실무자를 “모르는 사람이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비즈한국’은 이 관계자가 효성중공업 실무자와 함께 골프를 치러 간 사진을 보내며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그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효성중공업·현대중공업·LS산전 본사도 입찰담합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효성중공업 측은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문자메시지로 보고받은 부서장에게 확인한 결과, 실무자가 업무 과정에서 의욕을 보여 승인한 적은 있다. 문제될 만한 지시를 내린 적은 없었다”며 “입찰담합 역시 없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측도 “계약을 담당하는 현대 일렉트로닉에 확인해봤지만, 입찰담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LS산전 측은 “입찰담합은 사실무근”이라며 “담합을 했다고 가정해도, 주는 게 있었다면 받는 게 있었어야 하는데 그동안 LS산전이 원자력발전소와 맺은 납품 계약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 됐다. 이익을 본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업계 관계자는 “LS산전은 2010년 초고압 변압기 전용 공장을 설립하면서 변압기 시장에 들어왔다”며 “기존 가동 원전들은 효성과 현대가 수십 년간 변압기를 납품해온 탓에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 다만 LS산전이 공장을 설립할 당시, 신고리 등 새롭게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원전들이 많았다. 원전뿐만 아니라 화력·수력 발전소, 건설사 등 납품 대상도 다양하다. 담합이 사실이라면 LS가 참여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LS산전은 부산 화전산업단지 10만 8000㎡ 부지에 2100억 원을 투입해 초고압 변압기 전용 공장을 설립하고 2010년 4월 2일 정식 가동을 시작했다. LS산전 부산 공장은 화전 산업단지 최대 규모다.

 

# 8년간 원전 입찰담합, 한수원 사실 확인 나서

 

공정위는 2014년 12월 16일, 한수원이 발주한 원자력발전소용 ‘전동기(모터)’ 구매 사업에서 8년간 입찰담합을 벌여온 업체 다섯 곳을 적발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에 과징금 11억 5300만 원을 부과한 뒤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적발된 업체는 효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중견업체 세 곳이었다. 이들 업체는 2005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원자력발전소용 전동기 구매입찰 265건 중 128건에 대해 담합했다. 공정위가 공개한 심의 의결서를 보면 “이들 업체는 사전에 유선연락 등을 통해 낙찰사와 ‘들러리 참여사’를 결정하고, 입찰일 직전에 연락, 투찰 가격을 합의해 결정했다”고 명시돼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사전에 합의했다는 내용이 실제로 이행됐는지 여부와 계약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문제가 된다고 판단이 되면 입찰담합으로 관련 법령을 적용할 수 있다”며 “반복 적발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가중처벌 규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수원은 입찰담합이 있었더라도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수원에 제출한 서류 등은 문제가 없다. 업체별로 사전에 합의를 했다 하더라도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고 말했다. ‘비즈한국’ 취재가 시작된 이후 한수원 감사실은 관련 자료 등을 확보하고 사실 확인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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