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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인생독서] 1980 광주, 2017 광화문

영화 '택시운전사'를 본 뒤 펴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2017.08.15(Tue) 15:00:00

[비즈한국]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980년 당시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들이 광주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폭동을 일으켰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간첩을 신고하면 3000만 원의 포상금을 받던 시절,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인데, 수백 명의 북한 간첩이 총을 들고 광주까지 가는 동안 아무도 신고한 사람이 없었다는 게 좀 이상했어요.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물었어요. “아버지, 광주에 간첩이 그렇게 많은데 왜 아무도 신고를 안 해요?” 

아버지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셨어요. “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난다. 다시는 그런 얘기 하지 마.”

 

5·18 광주항쟁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영화를 보고 광주 항쟁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책을 펼쳤어요. 32년 전 ‘지하 베스트셀러’였던 5월 광주 민중 항쟁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올해 5월에 전면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광주 항쟁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께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10·26 사태로 박정희 군사 독재가 막을 내린 후, 우리 사회는 드디어 민주주의를 꽃피울 절호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이때 전두환 등이 이끄는 군부 세력이 12·12 군사 정변을 일으킵니다. 80년 봄에 민주화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요. 민주화운동 진영은 학생운동을 선봉으로 신군부 세력과 피할 수 없는 정면충돌을 앞두게 됩니다. 

 

1980년 5월 7일,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는 백악관에 전문을 보냅니다. ‘한국정부, 특전사 부대를 이동하다’라고. 5월 8일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차관이 답신을 보내지요. ‘우리[미국 정부-인용자]는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한 한국 정부의 비상계획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5월 9일 글라이스틴은 전두환을 만나 미국이 시위진압을 위한 군대 동원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합니다. 이것이 광주에 공수부대가 투입되고 5·18의 비극이 일어난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보수적인 환경에서 살아온 저는, 세 아버지들에게 배신당한 기분입니다. 저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어린 제게 진실을 알려주는 대신 거짓된 침묵을 강요했고요. 국가 발전의 아버지라 믿어왔던 대통령들은 민간인 학살의 주범들이었어요. 정치 문화적으로 아버지의 나라라 믿어온 미국은 군부 독재의 비호 세력이었고요. 아버지들의 배신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어린 저의 기억에 1980년 당시 아버지는 분명 진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후, 아버지는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는 주장을 조금씩 받아들이셨어요. 왜 그럴까요?

 

그렇게 믿는 편이 마음이 편하니까요. 죄 없는 사람들이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어갔는데 모른 체 했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니까요. 죄책감을 피하는 방법은, 죽은 이들이 간첩의 선동에 넘어갔다고 믿는 것이니까요. 이 땅에 사는 평범한 이들을 학살의 공범으로 만들어버린 것, 그것이 군부 독재의 가장 큰 죄가 아닐까요?

 

지난 몇 년은 광주를 추모하는 일이 힘든 시절이었어요. 5·18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요. 황석영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광주항쟁에 대한 터무니없는 왜곡과 공격이 난무하는 가운데 입술을 깨물며 준비를 했고 그 사이에 ‘촛불 혁명’이 진행되었다. 5·18 광주와 세월호의 어린 넋들이 함께하는 이 빛나는 계절에 위대한 시민들은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책의 머리말에서

 

영화 속에서 불타는 광주 MBC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MBC는 제대로 보도하라!” 

 

그 외침이 1980년 광주의 것인지, 2017년 촛불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으려는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김민식 MBC 피디​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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