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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이건 정말 진짜 아파요" 의사가 겪은 고통의 편린

의대생 시절 발가락 마취 엄청난 고통…환자와 공감할 수 있는 경험

2017.08.07(Mon) 06:00:00

[비즈한국] 나는 좀처럼 아플 일 없이 건강한 청년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삶에서 으레 겪는 감기나 몸살 외에는 특별히 다치거나 앓은 적이 없다. 그러던 의대생 시절 간단한 수술을 받은 적이 한 번 있다. 당시 나는 발톱이 발가락 안쪽으로 파고들어가 염증이 생기는 내성발톱을 상당히 심하게 앓고 있었다. 

 

세상에. 주여. 그건 그냥 ‘많이 아픈’ 게 아니었다. 나는 우주의 분자들이 전부 내 발가락 신경을 꾸짖으며 성을 내고 있다고 느꼈고, 선생님이 내 발가락 하나를 도륙내고 있는 줄 알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병원에 환자로 가는 일을 싫어했기 때문에, 결국 참고 참다 왼쪽 엄지발가락이 팅팅 붓고 터져 동네 정형외과에서 간단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일단 엄지발가락을 부분마취한 후 파고 들어간 발톱을 절개하고 꿰매는, 지금 생각하면 단순 시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 발가락 부분마취의 기억은 유독 강렬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모든 발가락은 좌우 아래위로 네 개의 신경이 지나간다. 이 네 개의 신경에 전부 마취제를 주입하면 그 아래는 일시적으로 감각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의사는 주사기를 들어 발가락이 나오는 부분 좌측에 꽂고 마취제를 주입한 다음, 더 깊이 주사기를 꽂고 한 번 더 주입한다. 이 과정을 우측에도 반복하면 마취가 완료된다. 문헌상으로도 실제로도 복잡하지 않은 과정이다. 손이 유난히 크고 털이 복슬복슬하게 나 있던 동네 정형외과 선생님은 마취하기 전 나에게 말했다. 

 

“이거 많이 아픕니다.” 

 

억지로 버티다 끌려온 나는 조마조마한 긴장감으로 솜털이 곤두선 채 예견된 고통을 기다렸고, 선생님은 아랑곳없이 내 예민한 발가락 신경에 바늘을 꽂고 주사기를 눌러 마취제를 마구 쏘았다. 

 

세상에. 주여. 그건 그냥 ‘많이 아픈’ 게 아니었다. 나는 우주의 분자들이 전부 내 발가락 신경을 꾸짖으며 성을 내고 있다고 느꼈고, 선생님이 내 발가락 하나를 도륙내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 사람 발가락에 저렇게 깊이 주사기를 꽂는 법도가 있다니. 저걸 인간이 인간에게 하고 있다니. 지금 생각해도 발끝에 백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이 모골이 송연한 통증이었다. 또한 그것은 좀처럼 아플 일이 없던 청년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외에 더 이상 아플 일이 없던 청년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넘어지고 구르고 깨져서 그 청년을 찾아왔다. 그것들은 인류 보편적으로 매우 아파 보였다. 

 

그리고 그 청년은 치료 목적으로 사람들을 더 미치도록 아프게 만드는 아주 지독하고도 다양한 술기가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걸 실제로 모두 배웠다. 그중에는 내가 받았던 발가락 신경차단술과 내성발톱 절개 및 봉합술도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를 인류 보편적으로 아프게 만드는 술기를 행하기 전에 늘 이렇게 말한다. “이거 많이 아픕니다.” 하지만 발가락을 마취할 때는 이렇게 말한다. 

 

“이거 진짜 완전히 너무 아픈 겁니다. 아휴, 꼭 잘 참아주세요. 이거 정말 진짜 아파요.” 

 

그리고 유독 발가락에 주사를 놓을 때면 큰 죄책감이 들고, 끝내고 나면 환자의 인내심에 대견함마저 들어 격려의 말을 꺼내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마취해야 할 발가락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통증은 다른 통증보다도 훨씬 우월하게 아파 내가 유난히 보듬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이 고통은 당연히 날카롭게 아프다. 하지만 이곳에는 사지가 절단되거나, 관절이 빠지거나, 전신이 깨져 죽어가는 사람까지 온다. 그 고통은 누가 보더라도 지나치게 거대한 것이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굳이 아픔을 이해한다는 말을 과하게 덧붙이지 않는다. 

 

다만 이 발가락은 유일하게 내가 경험한 것이기에 나는 내 환자들에게 이렇게 생생하게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면 처절한 고통을 다루는 사람이, 막상 실존하는 고통의 너른 세계에서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사람인 셈이다.

 

나는 오늘도 출근해 환자 명단과 그들이 가진 질환을 열어 본다. 워낙 많이 지켜본 질환들이라 나는 그 명단에서도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평생 앓기만 해도 도저히 직접 다 겪을 수는 없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많이 경험하고 지식을 쌓은 의사도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지만, 더불어 자신의 삶을 오래 경험하고 예민하게 지켜본 의사도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유산으로 내원한 여자 환자에게 손을 얹고 조용히 자신의 아내가 작년에 유산했던 이야기를 꺼내던 선생님과, 요로결석을 앓은 후 유독 요로결석 환자들의 통증 조절을 챙기던 교수님처럼, 생이 길어질수록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의 가짓수가 늘어가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삶을 오래 보낸 의사에게 더욱 신뢰감을 느끼는 것은, 의학은 경험의 학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 개인의 삶도 많은 고통으로 풍성해진다는 것, 그래서 환자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일 테다. 

 

나는 아직 젊고 특별히 아픈 적도 없으며 주변 사람들도 건강하다. 그러나 이제 삶이 흘러갈수록 나는 더욱 실재하는 고통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점차 내 환자들에게, 전부가 아닌 일부라도, 조금 더 내가 겪은 일처럼 이해하거나 공감하며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나이가 들어가며 다양한 고통의 편린을 마주해도 좋다는 생각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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