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988년 국정감사가 있은 후 박근혜(전 대통령)는 국감의 지적에 정곡을 찔렸는지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 전체의 사표를 제출케 하고, 6~7대 트럭분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과 서류 등을 싣고 학교 당국도 모르게 야반도주하듯 영남대학교를 떠난 후 오늘날까지 아무런 반성이나 사죄가 없었습니다.”
2007년 6월 26일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설립자인 고 최준 씨의 장손인 최염 씨가 한나라당 당사 로비 기자회견장에서 한 말이다. 최 씨가 언급한 ‘6~7대 트럭분의 박정희 유품과 서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 박근혜·근령·지만 남매가 청와대에서 가지고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과 대통령기록물을 의미한다.
이영도 전 숭모회장도 최 씨의 폭로가 사실임을 인정한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장충동 집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과 대통령기록물을 보관할 수 없어 한국문화재단 창고에 보관해뒀다가 영남대학교 박물관으로 보냈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감사 후 유물을 트럭에 싣고 서울 어딘가로 옮겼다. 그 장소가 바로 최태민 씨 소유의 창고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과 대통령기록물을 직접 나른 트럭운전사와 인터뷰한 방송 관계자는 “부산 거주자인 트럭운전사가 서울 지리를 잘 몰라 유품이 서울 어디로 옮겨졌는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신사동쯤일 거라고 했다”며 “트럭운전사가 8000점이 넘는 유품을 옮겼다고 증언했다. 지금은 트럭운전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전했다.
2007년 8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공포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과 대통령기록물 487점을 국가에, 유품 6000여 점을 박정희기념사업회(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 기증했다.
‘비즈한국’은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에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기증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이 몇 점인지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은 2007년 구미시청 선산출장소에 5670점의 유품을 관리 위탁한 사실만 밝혔다. 국가에 기증된 박정희 전 대통령 유품과 대통령기록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2008년 이관됐다.
문제는 구미시청 선산출장소 3층에 위치한 박정희유물보관소의 유품 관리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박정희유물보관소 관계자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을 보존하기 위해 매일 항온항습 장치를 가동하고 있으며, 6개월마다 한 번씩 훈정소독 작업도 실시한다.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구미시청 선산출장소가 협소하다보니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재질에 따라 분리 보관하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줘야 한다”며 “항온항습 장치를 가동해도 재질의 습성상 일부 유품은 금방 부식되고 말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할 당시 공직자윤리법이 제정되지 않아 국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을 관리할 권한이 없다”면서 “구미시청 선산출장소에서 보다 체계적인 관리 하에 유품을 관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비즈한국’의 공식 인터뷰 요청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구미시청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으로부터 위탁받아 관리 중인 유품 내역 공개도 요청해 봤으나, 구미시청 역시 비공개 입장을 밝혔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과 국가에 기증되지 않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은 2000점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최순실 일가가 일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외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박지만 EG 회장도 일부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까지 확인된 내용은 없다.
박근령 전 이사장이 소유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은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한 개인 목장 창고에 일부 보관돼 있다. 기자가 직접 보관 창고를 방문해 봤으나, 대다수가 박스에 포장돼 있어 그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만 확인할 수 있었다.
목장주는 “박근령 전 이사장과는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이”라며 “개인적인 부탁으로 이 물건들을 10년 넘게 무상으로 보관해주고 있다. 박스 안의 내용물을 한 번도 들여다 본 적이 없어 어떤 물건이 담겨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박근령 전 이사장은 “내가 소유한 아버지 유품은 거의 없다. 목장 창고에는 청와대를 나온 이후 사용했던 물건들이 대다수”라며 “1980년대 VIP(박근혜 전 대통령)가 청와대를 나오면서 역사학자 몇 분을 모시고 아버지의 유품 목록을 작성했던 기억이 있다. VIP만이 유품 목록을 가지고 있고 나는 아버지 유품이 정확히 몇 점인지는 모른다. 영화 ‘효자동이발사’의 실제 주인공과 소송 중일 때 법원에 증거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아버지 유품이 한 곳에서 보관되지 않고, 상당수 훼손 및 파손되거나 도난당해 아쉬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 씨와 그의 언니 최순득 씨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을 일부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최순실 씨가 육영수 여사의 유품인 여우목도리와 귀금속 귀고리를 주변인들에게 비밀리에 팔려고 했다.
이 보도에는 최순실 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을 팔려 했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지 않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이 최태민 씨의 창고에 보관되기도 해 최순실 씨가 일부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순득 씨의 남편 장석칠 씨와 절친한 A 씨는 최순득 씨의 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을 직접 본 적이 있다고 ‘비즈한국’에 전한 바 있다. A 씨가 목격했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인 시절 착용했던 군복과 대통령 재임 당시 소지했던 장검이다.
A 씨는 “군복과 장검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그보다 많은 유품을 최순실 일가가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며 “국가의 자산이나 다름없는 유품을 국정농단의 주역 일가가 소유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을 국가가 강제로 몰수할 수는 없다. 공직자윤리법과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에 제정됐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은 1981년 12월 제정, 1983년 1월 시행됐으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2007년 8월 공포, 2010년 8월 시행됐다. 따라서 대한민국 1~10대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서면서 국내외에서 받은 값비싼 선물과 청와대 물품을 들고 나갈 수 있었다.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을 대통령기록관에서 관리 및 보관하고 싶지만, 기증이나 위탁받지 않고는 쉽지 않다”며 “대통령기록관 내부적으로 허술하게 관리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에 대한 방안을 강구해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그동안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은 미국 존슨 대통령에게 받은 백동 백마상과 서독 뤼프케 대통령에게 받은 망원경이 달린 엽총 등을 비롯해 금제 대통령 문장, 티파니 은제 탁자 등이다. 케네디·닉슨·포드·카터 미국대통령, 팔레비 이란 국왕, 티유 베트남 대통령, 장졔스 자유중국 총통, 홀리오크 뉴질랜드 수상, 타놈 태국 수상, 라만 말레이시아 수상,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 등이다.
유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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