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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인터뷰① "재벌은 전 국민 위한 경영을 해야 한다"

"공공일자리 늘리기는 민간 투자의 마중물…최저임금은 생산성과 함께 논의돼야"

2017.06.22(Thu) 13:06:21

[비즈한국]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많은 국민들이 ‘살림살이’가 나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살림살이는 곧 경제의 문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국외자의 시선으로 한국의 나아갈 길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경제학자다. 그로부터 한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와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장 교수와 전화로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이 상당해 2회로 나눠 싣는다. 다음은 일문일답.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비즈한국’ 인터뷰에서 신정부 출범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산적한 경제현안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쏟아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1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9%를 기록하며 긍정적 신호를 주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경기 회복을 체감하고 있지 못하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체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1960~1970년대엔 연 8~10%씩 고도성장을 하다가 1990년대 초 2년간 성장률이 5%대에 그친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경제위기 아니냐고도 했다. 당시 ‘이코노미스트’가 ‘이게 경제위기면 영국은 매년 위기이고 싶다’​고도 했는데, 나이 든 세대는 고도성장에 익숙해져 3% 성장으론 체감을 못 하는 것일 수 있다.”​

 

“​둘째는 성장의 과실이 공정하게 분배되느냐의 문제다. 경제가 성장해도 상류층으로 소득이 집중되다 보니 많은 국민들이 ‘내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경제적 양극화를 해결해야 할 텐데, 해법이 있을까.

 

“외환위기 이후 경제자유화가 확대되기 전까지는 복지지출이 거의 없었음에도 소득의 평등이 어느 정도 유지됐다. 그 이유는 경제적 약자를 나름 국가가 보호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입을 억제해 농업을 보호하지 않았나. 바나나만 해도 예전엔 부자들만 먹는다고 할 정도로 비쌌다. 그런데 베트남, 태국에선 바나나가 엄청나게 쌌다. 바나나가 원래 비싼 게 아니라 수입을 억제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규제들을 통해 소상공인들이 보호될 수 있었다.”​

 

“​지금은 기업의 상층부들이 미국식으로 성과급을 수십억 원씩 다 받지 않나. 과거엔 재벌기업 최고경영자도 2억~3억 원을 받으면 많이 받는 것이었다. 요즘엔 연봉으로 70억~80억 원을 받기도 한다.”​

 

“​과거 억제된 체제가 외환위기 이후 자유화가 도입되면서 금융시장에서부터 엄청난 소득이 나왔다. 반면 농민, 소상공인에 대한 보호는 약화됐다. 상대적으로 취약하던 노동자에 대한 보호는 그나마 있던 것도 약화됐다. 비정규직의 증가 등 격차를 용인하는 체제가 됐다.”​

 

“​이런 경제양극화의 해결방법으로 우선은 골목상권 부정경쟁을 죈다든지, 옛날식으로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결국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을 확대해야 한다. 결국 소득재분배밖에 없다. 노동권을 강화해 비정규직, 저임금직도 받을 만큼 받아야 한다. 옛날식 구멍가게를 유지하는 게 답은 아니지만, 다른 체제로 가려면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은 보호를 해줘야 한다.”​

 

“​장기적으론 시장 불평등을 용인하되 재분배를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한다. OECD 통계를 보면 유럽의 많은 선진국들은 세금을 걷고 복지지출을 하기 전에는 미국만큼 불평등지수가 높았다. 시장의 자유도는 미국과 유사하지만 소득재분배를 통해 훨씬 더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언했다. 이에 대해 자영업자, 중소기업은 경영난이 가중된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한국 경제에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저임금은 장기적으로는 없어져야 한다.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이유는 결국 다 같이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것 아닌가. 저임금으로는 경쟁하려야 할 수가 없다. 임금을 반으로 깎아도 중국과 경쟁이 안 된다.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맞는 방향이다.”

 

“​임금을 올리면 도산하는 업체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다만 방향성은 확실히 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 원’ 구호가 아니어도 임금은 계속 올라간다는 사실을 기업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임금이 높아져도 생산성이 높아지면 문제가 없다. 독일의 임금이 한국보다 몇 배 높지만 차만 잘 팔지 않나. 장기적으로 임금과 생산성은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만 생산성이 낮아서 지금 수준의 최저임금이 아니면 못 버티는 소상공인들은 사회적으로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는 대량구매를 하므로 가격협상권이 있지 않나. 그렇다면 골목상인들도 조합을 만들어 공동구매로 구매단가를 내릴 수 있게 사회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그렇게 가격경쟁력을 갖추면 국민들도 굳이 먼 거리의 대형마트를 기름값, 시간 써가며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주 5일 근무제 도입 때도 ‘회사 망한다’고 다들 얘기했지만, 망하지 않았다. 사회가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프랜차이즈도 가맹점은 망해 가는데 반대로 본사는 돈을 번다면 그 이익을 나눠야 한다. 이런 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은 생산성, 분배, 도입속도 등을 통합한 패키지로 논의해야 한다.” 

 

지난 5월 11일 오전 노동당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최저임금 1만 원 즉각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문재인 정부는 13조 원 추가경정예산으로 공공부문 일자리부터 늘리기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민간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까.

 

“공공부문의 일자리 늘리기는 여러 효과가 있다. 첫째로 청년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비효율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 둘째로 공공부문에서 일자리가 창출되면 소득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수요가 증가하면 민간의 투자와 고용이 늘어난다. 일종의 마중물 같은 것이다. 셋째로 공공부문의 복지서비스 강화로 연결된다. 지금 일자리가 필요한 복지수요가 엄청나게 많다. 공공도서관이나 공공체육시설을 지으려면 인력이 필요하다.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기 위한 공공서비스도 인력이 부족하다.”​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세금을 늘리면 기업 이윤에 도움이 안 되니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젊은 직장인들이 출산·​육아 문제에 너무 많은 힘을 뺏기는데, 이를 사회가 해결해주면 생산성 높은 노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적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민간부문에 비해선 굉장히 작은 영역이므로 결국은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려야만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이를 위한 새로운 산업정책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당장엔 공공부문에서 먼저 고용을 늘리면 여러 효과가 생길 수 있다.”

 

―민간 일자리를 창출하기엔 기업들의 성장동력이 부족하지 않나. 기업들이 활력을 가지려면 어떤 것이 가장 시급한 방안인가.

 

“성장동력이 부족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기업들이 신산업 개발을 안 했다. 지금 주축산업 중 반도체 빼고 다 1970년대에 시작된 것들이고 이마저도 대부분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다. 이젠 반도체, 자동차도 안심하지 못할 정도다. 성장동력을 안 키운 원인은 경영자의 무능일 수도 있지만 기업마다 조금씩 다르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가 산업정책을 등한시한 부분이 있다.”​ 

 

“​예전에는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기술자를 양성하고 이공계에 병역특례를 준다든가 했는데, 그런 게 많이 약화됐다. 신산업이나 첨단기술은 기초과학에서 시작되는데, 정부가 더 많이 투자하고 육성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기초과학은 돈 안 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재산업이나 청정에너지 분야는 프로젝트를 구축해 자금을 대고 인력을 양성하면서 쫙 따라가야 하는데 기업은 이러한 장기 비전을 제공할 만한 역량이 없다.”​ 

 

“​둘째로, 금융시장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거의 무방비로 외국자본이 들어왔는데, 대부분 단기투자다. 이들은 주주로서 장기 비전보다는 단기 이익을 기업에 요구한다. 자사주를 매입한다든지 하는 것은 과거 기업에는 없던 것들인데, 지금은 주주들이 괴롭히니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금융 자유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미국·영국에 비하면 한국은 금융의 자유도가 낮은 편이긴 하지만. 지금 미국·영국 기업들은 이윤의 90% 가까이를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쓰느라 투자할 여력이 없다. 한국도 그렇게 될 우려가 있다. 원래 금융의 역할은 기업에 돈을 대는 것인데, 지금은 기업이 금융에 돈을 대고 있다. 이런 것에 제동을 걸어 기업이 장기로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을 사라져야 할 적폐로 규정하고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 지배구조의 이상적인 모델은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재벌 지배구조는 회사법 차원에서만 접근하면 안 된다. 주주 관계로 한정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회사는 특정 가문의 것도 아니고, 주주의 것만도 아니다. 과거에는 해외 자본이 국내 기업을 못 사도록 막아줬다. 보호무역을 통해 국민들이 질이 낮아도 국산품을 사서 기업들을 도와줬다. 다시 말해, 우리 기업들은 혼자 큰 것이 아니고, 국민들이 키워준 것들이다.”​

 

“​지금 재벌 지배구조에 관한 논쟁은 창립자 가문과 외부주주들 사이의 세력다툼에 관한 것이고, 거기에서 국민들은 빠져있다. ​또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때를 보면 국민연금이 핵심 키를 가질 정도로 큰 주주다. 그만큼 국민들이 많이 갖고 있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재벌은 창업자와 소액주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국민을 위한 경영을 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라고 하면 박근혜 정부처럼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하게 될 우려도 있지 않나.

 

“그건 민주주의가 안 돼서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One dollar, one vote’라는 영어표현에서 따옴)’, 즉 시장에 맡기면 돈 많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가기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자유시장으로 알고 있는 싱가포르, 홍콩 등은 정부가 토지를 직접 소유하고 국민을 위해 필요한 데 사용하고 있다. 세금을 걷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일하는 것이 민주정부의 역할이다. 시장에 다 맡기고 5년에 한 번 직접선거를 한다고 해서 민주정부가 아니다.”

 

장하준 교수 인터뷰② "5년 내 효과 보려면 복지 강화가 답"으로 이어집니다.

우종국 기자 xy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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