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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인공지능이 인류를 뛰어넘은 세상

의료·교육서 활약하는 왓슨, 이세돌과 커제를 누른 알파고

2017.05.25(Thu) 09:25:07

[비즈한국] 그날은 발렌타인데이였지만 애인이 없는 사람들도 외롭지 않았다. 그들에겐 텔레비전이 있었기 때문. 미국과 유럽의 외로운 젊은이들은 텔레비전 앞에 모여 초콜릿 대신 팝콘을 먹으면서 퀴즈 게임을 봤다. 브레드 루터와 켄 제닝스라는 미국의 퀴즈 챔피언이 IBM의 왓슨(Watson) 컴퓨터와 맞붙은 것. 켄 제닝스는 미국에서 74주 연승의 기록을 세운 퀴즈의 달인이다. 컴퓨터 왓슨은 퀴즈의 정답을 가려내기 위해 구문을 분석해 단어의 품사와 뜻을 파악하고, 의미를 분석한 뒤, 정답을 추론해 내고 답안을 작성했다. 결국 사람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퀴즈를 푼 것.

 

2017년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때는 2011년이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나갔지만, 인간 대 컴퓨터의 퀴즈대회에 세계인이 주목했다. 작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회에 우리는 열광했지만, 정작 유럽과 미국인들은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다. 3일 동안 계속된 대회에서 루터와 컴퓨터 왓슨은 325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지만 역대 최고 챔피언인 제닝스는 2000달러를 거둬들이는 데 그쳐 왓슨에게 완패했다.

 

이 퀴즈대회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경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이벤트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세상 사람들은 IBM이 도대체 왜 엄청난 돈을 쓰면서 전 세계적인 이벤트를 벌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컴퓨터 성능을 자랑하면서 컴퓨터 시장의 점유율을 조금 높이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뉴욕타임스’가 왓슨이 교육과 의료 분야에 투입되면서 수십만 명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경고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4월 24일 서울 여의도 IFC몰에서 열린 IBM 창립 50주년 인공지능 ‘왓슨’ 시연행사에서 시민들이 왓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과 3년 후 IBM은 왓슨으로 1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알파고는 바둑밖에 못 두지만 왓슨은 교육과 의료에 직접 배치되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의사들에게 진단과 치료법을 조언해주면서 수입을 낸 것이다. 미국 바깥에서는 싱가포르,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가 서둘러 도입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왓슨은 활동 중이다. 2016년 11월 인천의 길병원이 왓슨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단 두 달 동안 85명의 암환자를 진료했다. 요즘은 일주일에 20건 이상 진료를 한다.​

 

인천의 가천대 길병원, 부산대병원에 이어 2017년 3월에는 대전의 건양대병원도 왓슨을 도입했다. 아직 모든 질병을 진단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암에만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름도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 oncology: 종양학)’다. 

 

왓슨과 의사의 처방이 엇갈리는 경우 환자는 어떻게 반응할까? 한 여성의 가슴에서 지름 4.2센티미터의 암덩어리가 발견되었다. 당연히 암덩어리와 함께 해당 유방을 절제했다. 이것은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재발 방지 치료법을 논의할 때 문제가 생겼다. 인간 의사는 항암제를 권했다. 그런데 닥터 왓슨은 방사선 치료를 권했다. 인간 의사와 인공지능 의사의 처방이 달랐던 것이다. 이제 선택은 환자가 해야 한다. 환자는 인간 대신 왓슨의 권고를 따랐다. 환자들은 이미 인간 의사보다 인공지능 의사를 더 신뢰하고 있다.

 

왓슨은 대학에도 진출했다. 2016년 1월 미국 조지아텍의 컴퓨터학과 애쇽 고엘(Ashock Goel)은 인공지능 관련 수업을 개설하면서 아홉 명의 조교를 고용하여 학생들의 상담에 응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조교에게 물어본 질문은 무려 1만 가지. 이 가운데 한 여성 조교가 40퍼센트에 가까운 질문을 처리했다.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20대 백인 여성으로 알려진 질 왓슨(Jill Watson)이 바로 그 주인공.

 

그런데 2016년 5월 질 왓슨이 인공지능 왓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질 왓슨은 처음에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학습을 거듭하면서 정확도가 높아졌다. 나중에는 정확도가 97퍼센트 이상이 될 때만 대답했다.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만큼 잘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미 인간보다 더 잘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5월 23일 열린 커제와 알파고의 첫 대국 장면. 세 번 진행되는 대국 중 첫 대국은 알파고의 완승으로 끝났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고는 바둑밖에 두지 못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알파고의 능력을 경험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율자동차가 나온다고 해서 겁먹거나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왓슨은 더 큰 위협(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언어. 왓슨은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등을 학습했다. 2016년 5월 16일 IBM의 연구원은 “한국어는 컴퓨터가 배우기에 가장 어려운 언어지만 왓슨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단 7개월 후인 12월 26일 왓슨이 한국말 공부를 끝냈다고 발표했다. 얼마 안 있으면 우리는 콜센터에 아무 때고 전화하면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는 왓슨과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지난 5월 24일에는 세계바둑랭킹 1위 커제가 알파고에게 완패했다. 커제는 인간의 위대함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알파고는 이미 신선의 경지에 올랐다. 인공지능은 인류를 뛰어넘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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