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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했을까?

군비경쟁을 통해 서양이 패권을 확립한 것처럼 '경쟁'이 브랜드를 만든다

2017.05.15(Mon) 14:10:05

[비즈한국] 예전 직장 시절, 해외 출장 갈 일이 종종 있었다. 쥐꼬리만 한 출장비를 아끼고 아껴, 그 나라에서 유명한 식당을 방문하거나 혹은 특색 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경험이었다. 요즘이야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서 맛집 예약하는 게 쉽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일단 나의 서투른 영어로 예약하기도 힘들었고, 또 격식 있는 식당의 경우에는 정장차림이 기본인데 그걸 모르고 평상복을 입고 갔다 문전박대 당한 경험도 있었다. 그렇지만 각 나라의 특색 있는 먹거리를 ‘흡입’하다 보면,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기분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기에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특히 유럽 여행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선사한다. 먼저 와인이나 위스키 등 수도 없이 다양한 주류가 식당이나 슈퍼에 즐비할 뿐만 아니라, 버터나 각종 과일의 종류는 그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또 식당 종업원에게 술이나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면, 각 상품의 특성을 얼마나 즐거운 표정으로 설명하던지. 지역별로 다양한 특색을 갖춘, 그리고 역사성을 갖춘 먹거리에 대해 메모하느라 정신 없었던 기억이 선하다.​

 

유럽 여행을 가면 지역별로 다양하고 역사성 있는 식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세계 5위의 수출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자동차나 휴대폰 등 핵심 제조업 제품에서는 세계 최고수준에 이른 제품이 적지 않다. 그러나 식료품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사과만 봐도 사과산지는 많지만, 모두 동일한 품종만 재배한다. 쌀도 지역별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각 쌀의 특색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물론 필자의 미각이 예민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맛집 탐방에 열을 올리는 지인들과의 식사 시간에 “나는 어떤 지역의 A품종 쌀이 제일 맛있어”라거나 혹은 “나는 그 의견에 공감할 수 없어, B품종 쌀이 최고야” 같은 논쟁을 벌인 기억이 없다.

 

마케팅 분야의 개념을 조금 차용하자면, 쌀은 저관여 제품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관여도’란 특정 제품과 상황에 관련된 관심의 수준을 뜻하는데, 그 수준에 따라서 제품을 ‘고(高)관여 제품’과 ‘저(低)관여 제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고관여 제품’은 가격과 중요도가 높아 구매를 잘못했을 때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정보를 모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 신중하게 고르는 제품을 의미한다. 집이나 자동차, 그리고 와인 등이 ‘고관여 제품’에 해당될 것이다. 반대로 ‘저관여 제품’은 질보다는 가격이 중요한 구입 포인트다. 어차피 질의 차이가 크지 않고 가격도 부담되지 않기에, 다른 곳보다 가격이 싼 제품이 시장을 제패한다. 

 

어떻게 해서 유럽산 식료품은 ‘고관여 제품’이 될 수 있었을까?

 

필자는 그 비결을 바로 ‘경쟁’에서 찾고자 한다. 어떤 특정 제품이 세상을 제패한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제품이 경쟁하고 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저마다 특색을 갖게 되고 마니아 집단을 거느린 ‘브랜드’로 성장한 것이다. 이런 경쟁의 환경은 세계사의 진로를 바꿔 놓은 바 있다. 

 

아래 그래프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나타내는데, 산업혁명을 전후해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서양의 1인당 소득은 끝없이 상승한 반면, 인도와 중국 등 동양의 거대국가는 오히려 1인당 소득이 감소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 많은 국가에서 소득이 급격히 증가했으나, 어떤 국가에서는 오히려 소득이 감소했기에, 회색 굵은 선이 두 갈래로 표시되었다. 출처: 그레고리 클라크,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2009)

 

왜 동양은 몰락하고,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해 ‘전쟁의 세계사’의 저자, 윌리엄 맥닐 교수는 바로 끝없는 ‘군비경쟁’이 서양의 패권을 확립했다고 지적한다. 1100년대부터 시작된 끝없는 전쟁으로 혁신과 모방을 장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제식훈련’이다.

 

근대의 일상적인 군사훈련 개발을 지휘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마우리츠(1567~1625년) 백작이었다. 마우리츠는 스페인군을 상대로 싸워 승리하기 위해, 로마 시대 등 고대 병법가들의 저작에서 전쟁기술에 관한 교훈을 끌어내려고 했다. (중략) 조직적인 훈련의 발달은 마우리츠의 최대 공헌이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화승총을 장전하고 발사하는 데 필요한 동작을 연습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창병들도 행군 중이나 전투 중에 창을 어떻게 드는지를 연습해야 했다. (중략) 

 

마우리츠는 화승총의 장전과 발사에 요구되는 상당히 복잡한 움직임을 42개의 구분동작으로 분석하고, 각 동작마다 이름을 붙였으며 그 동작을 하도록 명하는 적정한 구령을 정했다. (중략) 또한 마우리츠는 행진의 규칙을 정했다. 서로 발을 맞춤으로써 모든 부대원이 미리 정해진 형식에 따라 전후좌우로 이동하여 종대에서 횡대로, 다시 종대로 대형을 바꿀 수 있었다. 

 

마우리츠의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부대 행동은 ‘후진’이었다. 화승총병이 방진을 짜고 전투에 임했을 때, 맨 앞 열의 병사가 총을 쏜 후 자기가 속한 대열의 제일 뒤로 달려가서 재장전하는 동안 두 번째 열의 병사가 총을 쏘는 것이다. 연습을 거듭하고 방진을 적절하게 조정하면, 첫 번째 열의 병사들이 총을 쏘고 맨 뒤로 달려가 재장전했을 때쯤에는 처음에 그들 뒤에 있던 병사들이 이미 총을 쏘고 차례차례 뒤로 달려가 제일 후미에 붙게 되었다. (중략) 마치 군무와 같은 이 행동을 통해, 네덜란드군은 연속적인 일제사격이 가능해졌다. -본문 174~178쪽

 

유럽의 패권을 쥐고 있던 카를 5세의 스페인군에 맞서, 네덜란드가 독립을 쟁취한 것은 마우리츠 백작의 혁신적인 군 개혁 때문이었던 셈이다. 특히 대포와 높은 성벽으로 보호받던 스페인의 군사요충지마저 차례차례 무너지자, 전체 유럽은 네덜란드군의 성공 비결을 모방하는 데 필사적이 되었다. 네덜란드군이 총부리를 다른 나라로 돌리는 순간 스페인군의 비극이 자기의 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 때문에 유럽은 혁신과 모방을 장려할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군은 제식훈련 등의 혁신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16~17세기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전쟁을 그린 그림. 사진=ryukyu-bugei.com


네덜란드의 혁신을 제일 먼저 모방한 나라는 북방의 작은 나라, 스웨덴이었다.

 

(마우리츠 백작 아래에서 근무하던) 장교 한 사람이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 수하로 스카우트되며 스웨덴군에 새로운 훈련 방식이 도입되었다. 새로운 훈련 방법은 스웨덴군뿐만 아니라 효율을 높이고자 하는 다른 모든 유럽 국가의 육군으로 보급되었다. 제일 먼저 스웨덴과 프로이센 등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이 이 혁신을 받아들였고, 거기서 다시 프랑스군으로 전해졌으며 끝으로 스페인군에게 전해졌다.

 

스페인은 일찍이 30년 전쟁에서 맹위를 떨친 자국 군대의 전통(테르시오 방진)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다. 그러나 프랑스 육군이 스페인의 정예 군단을 쳐부순 로크루아 전투(1643년) 이후, 유럽의 식견 있는 군인들은 네덜란드식 훈련이 스페인의 테르시오 방진보다 분명 우월하다는 데 동의했다. -본문 186쪽

 

즉 누구도 오랜 기간 패권을 잡을 수 없었으며, 프랑스 등 한 나라가 우세를 점하는 순간 열위에 처한 국가들이 연합해 이를 저지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던 셈이다. 물론 유럽사람들이 특별히 혁신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전쟁이 매일처럼 벌어지는 상황에서, 신기술을 수용하는 데 조금만 게을리하면 ‘패망’이 기다리기에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달랐다.

 

튀르크인들은 오래전부터 유효성이 검증되어 온 이슬람의 후련과 부대배치법을 이교도가 개량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전장에서의 수많은 패배(1673~1699년, 1714~1718년)로 이교도의 우위가 입증된 후, 뒤늦게나마 유럽식으로 부대를 훈련시키려는 시도는 1730년 예니체리 군단의 반란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이 반란의 성공으로 이후 1세기 동안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결국 1826년이 되어서야 술탄은 예니체리 군단을 해체하고 훈련과 전술을 근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오스만튀르크 제국이라는 정치체 자체의 사기와 결속력이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된 다음이었다. 그 결과 군사 면에서 유럽의 성과를 따라잡으려 노력했지만 계속되는 패배 속에, 1918년 제국은 해체되고 말았다. -본문 186~187쪽

 

오스만튀르크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물론 한국의 식료품 산업이 모두 오스만튀르크 제국처럼 세상의 변화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다. 라면은 한때 일본의 아류 취급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혁신적인 신제품을 속속 출시하는 가운데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지난 3월에 한국의 대외 라면 수출액은 3420만 달러이며, 국내에서 생산되는 라면의 대략 25%를 수출한다. 뿐만 아니라 초코파이 등 과자류는 이미 ‘한류’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아류 취급을 받던 라면은 이제는 생산량의 4분의 1을 수출한다. 경쟁을 촉진하고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면 성공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사진=농심 홈페이지


“한국의 식료품 산업은 안돼” 같은 패배주의에 빠질 이유는 전혀 없다. 라면과 제과업계의 사례를 모방해, 경쟁을 촉진하고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면 충분히 성공의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 특히 인구감소에 따른 소비시장의 축소, 더 나아가 해외 메이저 식료품 업계의 시장 침투가 가속화되는 환경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장병들에게 했던 말 “무릇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를 떠올려, 적극적인 경쟁촉진 정책이 시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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