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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청년] "첫날부터 퇴사하고 싶었고 지금도 퇴사하고 싶어"

청년 공감 프로젝트 ‘날 선,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12·끝) 중소기업 사무직 이서영

2017.05.24(Wed) 17:20:24

​[비즈한국] 벼락같이 시작된 19대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시대’가 열렸다. 그간 정치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그러나 대선후보 위주라는 한계를 가진 선거 보도 탓에 유권자는 보도의 주변으로 쫓겨나며,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청년, 특히 ​기성 매체와 기자의 범위 바깥에 있는 청년들은 더욱 그랬다. 청년들은 아직 할 말이 많다. ‘비즈한국’은 대선 전후 ‘미스핏츠’ ‘밀레니얼 오브 서울’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날이 선 채로, 날 것 그대로’ 풀어봤다. 아쉽지만 이번 인터뷰를 끝으로 ‘날;청년’은​ 막을 내린다. 

 

눈을 돌려 중소기업에서 성취감을 느끼라거나 실업이 청년들의 눈높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중소기업이 가족으로 운영되거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처우를 한다. 회사문화는 구식이며, 처우 역시 나쁘다. 

 

이런 현실에서 무작정 중소기업에 가라고 하는 것은 청년들을 지옥불구덩이 속에 밀어버리는 일이다. 대부분의 성취감은 일과 월급에서 나온다. 부하직원의 부모를 운운하고, 인사하지 않는다고 ‘고나리질’하는 중소기업에서 성취감을 느낄 사람 따위 없다. 중소기업 직원이자 열정페이의 상징인 뮤지컬 분야에 발 담그고 있는 이서영을 만나보자.

 

사진=송유빈


개같이 일하고, 쥐만큼 번다

―인천에 사는 거로 아는데, 멀리 오게 해서 미안하고 고맙다(인터뷰 장소는 혜화였다).

“명동에서 연극 보고 온 거라 괜찮았어.”

 

―자기 전공이라 바빠도 일부러 챙겨보는 건가? 아무튼, 최근에 취업했다고 들었는데 요즘 뭐하고 살아? 

“나름 규칙적으로 살고 있지. 출근하니까 생활이 정시에 시작해서 정시에 끝나고, 쉬는 시간도 정해져 있으니까 규칙적일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쉬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지는 않아. 영화 보거나 책 보는 사람도 있다는데 사실 그거 전부 체력소모야. 그거 하기엔 너무 피곤해. 그냥 잠이나 자야지, 뭐. 진짜 잠만 자. 취미생활 할 여유도 없어지더라.”

 

―그래도 나처럼 자유로운 영혼보다는 안정적인 게 나은 거 같아. 취업하기 전에는 뭐 하고 살았어?

“지금보다 더 나이 들면 맘 편하게 놀기 힘들 거 같아서 집에서 그냥 놀았어.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계속 누워 있다가 좋아하는 영화 개봉하면 조조로 보고 그랬지. 왜 조조로 봤냐면 돈이 없으니까? 근데 우리 집이 극장이랑 멀어서 조조 영화 보려면 새벽에 나가야 하거든. 그래서 조조 영화 볼 때는 밤새고 조조로 영화 보고 다시 집에 와서 자고 그랬어.”

 

―야, 너무 극단적으로 바뀌네. 180도가 아니라 540도로 바뀌네. 그럼 최근에 다니는 회사에선 무슨 일 해?

“작은 화장품 회사의 행정 사무직이야. 아침에 출근하면 컴퓨터 켜고 온종일 키보드 두드리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일의 반복이지. 일한 지는 5개월 정도 됐고,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야. 회사가 작아서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올해는 식약처에서 감사하는 해라서 진짜 바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만들어진 제품이랑 관련된 보고서 준비하고, 실적 보고서도 준비하고, 온갖 기록물 다 정리하고 있어.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데 돈을 최저임금 수준밖에 안 준다는 게 함정이네.”

 

―거기는 왜 갔어? 원래 화장품에 관심 있었어?

“솔직히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지. 그런데 일할 회사가 없을 거 같기도 했고, 집이 머니까 주거비랑 교통비가 월급보다 더 많이 나올 거 같더라.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회사 위주로 일을 찾다가 걸린 거야. 다른 선택지는 없었지.”

 

―사수는 딱히 안 도와주고? 야, 그러면 너 혼자 회사 먹여 살리는 거네.

“그러니까 빨리 퇴사하고 싶더라. 사실 첫날부터 퇴사하고 싶었고 지금도 퇴사하고 싶어.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니고, 돈 벌려고 하는 일이니까 일에 애정이 붙지 않고, 애정이 안 붙으니까 내 일 같지도 않아. 진짜 노예다, 노예. 일은 일대로 많이 하는데 월급은 쥐꼬리만큼밖에 못 받고, 상사들은 부모 운운하면서 ‘인사 안 하냐’ 그딴 소리나 해. 왜 그리 꼰대들인지 미스터리야. 회사에선 어린 애들 위주로 일할 사람을 뽑는데, 이거 일 시키고 막말하기 만만해서 그런 거 같아. 얼른 퇴사하고 싶다.”

 

멋있다고 하지 말자. 당연하다고 하자.

 

―그렇게 바쁜데 촛불집회는 언제 갔대?

“100만 명 모였을 때 한 번 갔어. 2시간 걸려서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빨리 올 수밖에 없었어.”

 

―거의 보지도 못했겠네?

“그건 그런데, 진짜 강렬했어. 그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줄 몰랐거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니! 짜릿했는데, ‘​왜 이제야…’​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랬어. 복잡 미묘했다고 할게.”

 

사진=송유빈


―짜릿하다는 게 뿌듯한 건가?

“그 광경 자체는 짜릿할 수밖에 없지. 100만 명이 모인 거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모인 거에 꼭 뿌듯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 자기 의견을 나타내고 그런 자리에 참여하는 일이 멋있지만,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잖아.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보단 그걸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로 생각하면 좋겠어. 우리가 숨 쉬는 일에 뿌듯해하나? 어떤 나라든지 국민이라면 당연히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

 

―오… 정당 가입하고 운동까지 해본 사람 같은데?

“아냐. 그런 건 아니야. 오히려 되게 회의적인 유권자야. 까놓고 말해서 내가 원하는 후보가 당선된다고 내 삶이 달라질까? 아니올시다.”

 

―그렇게 말해놓고, 갑자기 왜?

“정권이 바뀌면 정부가 바뀌고 세상이 조금은 바뀌겠지. 그래도 내 본질이 바뀌지 않으니까 딱히 바뀌는 게 없을 거 같아. 그리고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도 바뀌어야 하는 건데 그게 아니잖아.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는 데에는 회의적이야.”

 

―그럼 너는 대통령이 바뀌어도 아무것도 안 바뀐다는 거야?

“아니, 바뀌긴 바뀌지. 물론 지금이 독재시대도 아니고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확 바뀌진 않는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묘하게 작은 변화도 변화잖아. 바뀌지.”

 

―그럼 저번 총선엔 무슨 기준으로 투표했고, 이번엔 어떻게 했어?

“지난 총선에는 진짜 그냥 공약만 보고 뽑았어. 몇 선 의원인지도 봤고. 당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어. 이번 대선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전부 뭉뚱그려 이야기하니까 고르기 어렵더라. 공약이 너무 이상적이고 붕 떠 있고 추상적이었어. 설사 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시행될 정책은 안 보이더라. 아, 근데 최근 10년 동안 망가진 게 많아서 고치기만 해도 힘들긴 하겠다. 아, 아니다. 못 고치겠네!”

 

돈 좀 달라고 노조 만들자고 하면, 나 나쁜 건가?

 

―원래 연극이나 뮤지컬 쪽에서 극작가 되려고 공부했다며?

“응, 그렇지. 지금은 휴학했어.”

 

―거긴 뭐 어때? 별 불만 없어?

“연극판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운이랑 인맥이 진짜 중요하거든. 이쪽 분야는 교수들이 보통 현장 무대에서 일도 하니까, 자기 제자들부터 이끌어주려고 하고 몇몇 교수들은 자기 제자는 자기들이 책임지려고 하는 성향도 있어. 가뜩이나 시장이 작아서 새로운 작품이 올라가지 않고, 있는 작품만 돌아가니까 이런 인맥이 더 중요하지.”

 

―일할 때 돈은 잘 줘?

“제대로 돈 받는 사람 거의 없어. 지금 올라가는 뮤지컬이랑 연극 태반이 적자니까 임금 체불도 개 많을 수밖에 없지. 내내 일하고 150만 원도 못 받는데 그것도 안 주는 셈이야. 스태프랑 배우 가리지 않고 다 겪어. 무대에 올라가는 작은 조연배우들 그러니까 앙상블 배우들은 아예 받지도 못해. 웬만큼 유명한 배우나 스태프 아니면 그냥 다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돼.”

 

―거참, 개판이구만. 내 생각보다 더 개판이네. 미국은 작가 노조도 있고 그런데 여기는 없나?

“우리나라는 만든다고 듣긴 했는데,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어. 흐지부지된 거로 알고 있는데(현재, 방송작가들은 ‘방송작가 유니언’을 구성했으나 연극과 뮤지컬 등과 관련된 노조는 발견하지 못했다). 여하튼, 진짜 한국에 노조 필요해. 우리나라는 노동력을 너무 쉽게 보는 거 같지 않아? 이거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노동조합 말고는 답도 없어.”

 

사진=송유빈


좋았던 과거보다 좋을 미래를 위해 추억팔이는 이제 그만

 

―그러면 너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해? 노조가 없는 거?

“그런 작은 거 말고, 큰 거부터 이야기할게. 1박 2일 복불복 하는 거 봤지? 거기서 연기자들이 ‘나만 아니면 돼~’​ 이렇게 말하거든. 근데 그게 진짜 우리나라 현주소야. 한국인들 머릿속에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박혀 있어.”

 

―그게 뭐야?

“어떤 사건을 이야기했을 때 ‘​내가 안 겪어서 모르겠어’​​ 혹은 ‘​근데 뭐 내 일 아니니까’​​라고 말하고 넘어가는 게 너무 많아. 실제로 나도 옛날엔 ‘​내 일 아니니까 뭐…’​​ 하고 넘어간 적이 많았어. 근데 세월호 때부터 바뀌었어. 비슷한 사건이 터지더라도 보호받지 못하겠다 싶고, 내가 저 피해자가 될 수 있겠다 싶더라고. 나도 간사한 마음이긴 한데,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공감 능력을 좀 더 키웠으면 좋겠어.”

 

―망상에 가까워도 되니까, 바라는 정책은 있어?

“일단 최저임금 1만 원. 그리고 주 4일 근무를 하거나, 하루 노동시간이 7시간 넘지 않았으면 좋겠어. 독일처럼 학생들이 돈 걱정 안 하고 학교 다니면 좋겠고, 기왕이면 60세 미만인 사람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했으면 좋겠어. 뭐 그리 늙은 사람이 하려고 하는지 짜증나.”​

 

“​평균수명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사실 오늘내일 하는 사람이잖아. 막말로 중간에 가버릴 수도 있잖아. 왜 그런 사람들이 해. 젊은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퇴임 후에 자기가 만든 정책 속에 살아봐야 해. 그러니까 정책의 대상이 되거나 자기가 만든 세상을 살아봐야지. 그래야 책임감 좀 느끼지.”

 

―그러면 늙은 후보만 아니면 되는 거야? 바랐던 후보는?

“페미니스트인 후보. 후보 스스로가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고, 공약도 페미니스트다우면 좋겠고, 말만 아니라 실제로 소수자를 배려하는 공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마지막으로, 어떤 세상이 오길 바라?

“추억팔이 없는 세상. 옛날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흔한 CJ 영화가 안 나오게끔 미래지향적인 세상 좀 왔으면 좋겠어. 옛날엔 좋았지 이딴 생각 안 하게 말이야. 시간은 흐르는데 왜 그렇게 과거에 집착 하냐. 과거에 작작 집착하게, 좋은 과거보다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 좀 와라.”

 

※ 이번 12번째 인터뷰를 끝으로 ‘날;청년’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인터뷰=구현모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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