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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힙합의 과격한 표현, 모욕일까 예술일까

래퍼들은 가사를 '연기'할 뿐, 부정적 어휘는 부정적 사회의 거울

2017.05.15(Mon) 13:20:24

[비즈한국]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는 힙합의 자기 과시적이고 성적인 표현이 나이가 찰 만큼 찬 본인에게는 불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흑인음악 팬들은 분노했습니다. 관심이 필요할 때 힙합 문화로 인기를 누리다 시간이 지나니 불편하고 저속한 문화라고 모욕하고 버린다는 거지요. 마일리 사이러스는 전성기 시절 흑인의 트워킹 춤 등을 흉내내며 인기를 누렸습니다. 결혼할 때가 되니 갑자기 흑인문화가 수준이 낮다며 타자화하니 분노할 만하지요. 하지만 일부 힙합 음악에 담긴 폭력성, 선정성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건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에미넴입니다. 에미넴은 심한 수위의 가사를 내뱉습니다. 당대 인기 있던 거의 모든 미국 여성 연예인을 모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한 예로, 에미넴은 머라이어 캐리가 자신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습니다. 머라이어 캐리가 이를 부정하고 에미넴을 거짓말쟁이로 몰자 디스 곡을 발표해 둘이 관계했던 소리를 녹음한 음원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지요.

 

에미넴의 ‘더 워닝(The Warning)’

 

When you was on my dick and give you something to smile about

너가 나랑 성관계를 하고 나를 웃게 했을 때


How many times you fly to my house, still trying to count

네가 내 집에 얼마나 많이 왔는지 셀 수도 없지


Better shut your lying mouth if you don’​t want Nick finding out

닉(당시 머라이어 캐리의 남편)이 알아차리기 전에 네 거짓말하는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거야.


You probably think cause it’​s been so long

너무 옛날 일이라 이제 증거가 없을거라 생각했나?


If I had something on you I woulda did it by now

‘내가 뭔가 증거를 가졌다면 이미 말했겠지’라고 말이야.


Oh on the contrary, Mary Poppins

그렇지 않아. 메리 포핀스(머라이어 캐리는 자신이 여성들의 바람직한 롤 모델이라며 자신을 디즈니 영화의 정숙한 주인공 ‘메리 포핀스’와 비교한 적이 있다).


I’​m mixing our studio session down

난 우리가 스튜디오에서 관계했던 음원 파일을 믹싱 중이야.


And sending it to mastering to make it loud

마스터링 해서 더 잘 들리게 만들 거야.

 

누가 봐도 그다지 건전한 가사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타블로이드용 가십거리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많은 이들에게 불편한 가사입니다. 이런 가사에 사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에미넴은 수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인간쓰레기’ 이상의 예술가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래퍼로서의 에미넴’이 ‘자연인으로서의 본인’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지요. 배우가 악역을 연기하듯, ‘에미넴’이라는 미국 연예계의 악역을 연기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본명이 아닌 예명을 씁니다. 악역과 본인을 넘나들면서 진중하고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도 발표했습니다.

 

예술과 실제 자신을 분리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유희열은 본인이 아닌 친구 이야기를 토대로 ‘좋은 사람’이라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유희열이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음악가와 음악은 분리되어 있으니까요.

 

힙합의 전설이 된 닥터 드레의 1집 앨범 ‘더 크로닉(The Chronic)’. 닥터 드레는 시종일관 갱스터로 자신을 포장한다. 실생활에서 그는 평생 음악에 미쳐서 사는 성실한 음악 기술자에 가깝다.


‘킵 잇 리얼(진실하게 행동한다)’​을 외치는 힙합 역사에도 이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에미넴을 발굴한 프로듀서 닥터 드레는 본인이 잘나가는 갱스터라고 으시댑니다. 여성과 놀아나고 마약을 하느라 바쁘다고 말하죠. 거짓말입니다. 그는 30년에 가까운 음악인생에서 음악작업을 쉰 적이 거의 없습니다. 우아하게 떠 있는 오리가 수면 아래서 물갈퀴를 미친 듯 움직이듯, 그는 양아치를 연기하는 성실한 음악인입니다.

 

릭 로스(Rick Ross)는 마피아 보스 이미지로 힙합계를 평정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과거에 교도관으로 일했습니다. 자신을 갱스터라고 지칭하는 사람이 갱스터 입장에서는 ‘경찰 똘마니’인 교도관이었던 거지요. 사람들은 그를 놀렸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그의 이미지가 허구라고 해도, 가상의 콘텐츠가 대중에게 짜릿한 쾌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 깡패가 아닌 황정민의 깡패 연기처럼 말이죠.

 

릭 로스와 스킬렉스가 함께한 퍼플 람보르기니(Purple Lamborghini). 릭 로스는 교도관 출신이다. 음악 속에서 그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사는 마피아 보스로 자신을 포장한다. 이제는 모두가 거짓임을 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음악을 듣는다. 그의 ‘롤플레잉’ 혹은 ‘연기’가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힙합의 모욕적인 표현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힙합 또한 예술입니다. 예술에서는 불편한 내용을 보여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성차별주의자의 목소리나 범죄자의 목소리를 빌 수도 있죠. 그보다 중요한 건 그 장면이 ‘어떤 의도로’ 또 ‘얼마나 잘’ 다듬어졌냐입니다.

 

영화를 예를 들어 볼까요. 소프트포르노나 예술영화나 똑같이 베드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베드신이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포르노입니다. 베드신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다면 예술영화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겠죠. 베드신 자체가 아니라 기술적 가치와 맥락이 중요한 겁니다.

 

여성 혐오적 표현, 폭력, 반인륜적 발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표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맥락과 기술적 완성도, 나아가 ‘의도’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에미넴의 ‘더 워닝’은 그다지 좋은 예술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자극적인 표현 대부분이 좋은 예술이라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지요. 수위 자체도 문제지만, 의도가 자극적이고 말초적 쾌감을 위해서인 경우가 많았던 게 문제입니다.

 

현재 힙합은 자기반성 중입니다. 닥터 드레는 과거 여성에게 모욕적인 가사를 쓴 일을 사과했습니다. 에미넴 또한 최근 래퍼 이기 아젤리아(Iggy Azalea)와의 성관계를 묘사한 모욕적인 가사를 공개했다 큰 곤욕을 치렀지요. 

 

그렇다면 힙합은 저열한 문화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 혐오 속성이 있는 힙합도 있습니다. 폭력, 섹스, 그리고 물질만능주의를 담고 있는 힙합도 있지요. 하지만 힙합이 그런 사상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힙합이 태어난 곳인 미국 사회가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힙합이 이미 존재한 사상에 영향을 받은 거지요. 인과 관계가 잘못된 겁니다.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포스터. 이 영화에는 힙합이 흔히 다루는 부정적인 주제가 모두 들어 있다. 성적 방종, 오만함, 자본 만능주의, 여성혐오 등이다. 하지만 누구도 마틴 스콜세지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런 역겨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과 영화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고, 예술적 완성도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힙합은 잘못된 미국 사회를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을까요? 최근 성공한 래퍼들은 점차 과거 힙합의 폭력적이고, 성적이고, 과시적인 면모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드레이크는 여자친구에 대한 자랑스러움, 실연의 우울함 등 힙합에서 잘 다루지 않던 부드러운 주제를 가감 없이 담아 힙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켄드릭 라마는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표현 없이 진중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평단과 마니아, 대중을 모두 사로잡으며 힙합 제왕의 자리에 올랐지요.

 

힙합이 잘못된 사상을 긍정적으로 바꾼 사례를 들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역대 최고 래퍼 중 하나인 제이지와 역대 최고 프로듀서 중 하나인 카니예 웨스트는 합작 앨범 ‘워치 더 스론(Watch The Throne)’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이 앨범의 수록곡 ‘​니거스 인 파리스(Nig*as in Paris)’​는 인종 차별적인 표현인 ‘​​니거(Nigga)’​​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부정적인 단어를 오히려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긍정적인 어감의 말로 바꿔버립니다.

 

제이지와 카니예 웨스트의 ‘​​니거즈 인 파리스(Ni**as In Paris)’​

 

What’s Gucci my nigga? What’s Louie my killa?

구찌가 뭐게 검둥이 친구? 루이뷔통은 뭐게 킬러 친구?


What’s drugs my deala? What’s that jacket, Margiela?

약은 뭐게 마약딜러? 그 자켓은 뭐게, 마르지엘라?


Doctors say I’m the illest cause I’m suffering from realness

의사들은 내가 가장 멋지다(ill)네, 진짜배기라는 병(ill)에 걸렸으니.


Got my niggas in Paris and they going gorillas, huh!

내 검둥이 친구들은 파리에 있고 그들은 고릴라처럼 즐기지 허!

 

부정적인 의미였던 ‘Nig*a’(검둥이)라는 단어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씁니다. 드러냄으로써 역설적으로 인종 컴플렉스를 극복해버리죠. 제이지와 카니예는 검둥이, 고릴라 등 흑인을 모욕할 때 쓰였던 단어에 ‘성공해서 파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호화급 파티를 즐기는 긍정적인 흑인’의 이미지를 덮어씌워 버립니다. 

 

여성을 모욕하는 단어인 ‘​암캐(bi*ch)​’​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록산 게이는 ‘래퍼 제이지의 랩에는 ‘비치’가 쉼표나 마침표보다도 더 자주 나온다’고 힙합 문화 속 여성혐오를 비판했는데요, 제이지는 카니예 웨스트와 함께​ ‘​워치 더 스론’​ 앨범의 또 다른 수록곡 ‘ 댓츠 마이 비치(That’s My B*tch)’에서 적극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려 노력합니다. 제이지의 ‘암캐’라면 아내인 비욘세를 뜻하는 걸 겁니다. 제이지가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실까요?

 

제이지와 카니예 웨스트의 댓츠 마이 비치(That’s My B*tch)

 

Go harder than a nigga for a nigga, go figure

그녀의 사랑은 사나이의 우정보다 더 의리있지


Told me “keep my own money”​ if we ever did split up

내게 말했어. 우리가 만약 헤어지게 되면 ‘내 돈은 다 니꺼지’


How can somethin’ so gangsta be so pretty in pictures?

완전 갱스터같이 간지나는 그녀가 어쩜 이렇게 이쁠수가 있지?


With jeans and a blazer and some Louboutin slippers

청바지, 블레이저, 루부탱 슬리퍼까지


Uh, Picasso was alive he woulda made her

어, 피카소가 살아있었다면 그녀를 모델로 작품을 만들었을 텐데


That’s right nigga Mona Lisa can’​t fade her

그래. 모나리자도 그녀에겐 안돼


I mean Marilyn Monroe, she’s quite nice

마릴린먼로. 뭐 괜찮지. 나쁘다는 건 아닌데


But why all the pretty icons always all white

근데 왜 모든 미의 상징은 백인인 건데


Put some colored girls in the MoMA

뉴욕현대미술관에 유색인종 여성도 좀 넣으라고 말해

 

이 곡도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 백인이 ‘검둥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게 힙합의 룰인데요. 마찬가지로 남성이 ‘암캐’라는 표현을 하는 건 긍정적인 의미로 바꾸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도 남녀 차별적 행위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최소한 이 곡에서는 왜 화자가 ‘암캐’라는 모욕적인, 그럼에도 미국 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를 썼는지 납득이 갑니다. 부정적인 단어로 충격을 주고, 이를 뒤집어서 전복의 쾌감을 주기 위해서지요. 좋지 않은 단어를 썼지만, 그 의도가 명확합니다. 의도가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볼 수 있겠지요.

 

제이지와 카니예 웨스트의 합작 앨범 ‘​워치 ​더 스론(Watch The Throne)’. 힙합 역사상 최고 수준의 래퍼와 프로듀서가 협업하여 힙합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쾌감을 가져다 준 명반이다.


이런 게 바로 바람직한 예술 표현수위에 대한 논의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표현이 얼마나 충격적인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 극단적인 표현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실제로 어떤 효과를 냈는지를 이야기하는 거지요. 

 

이를 위해서는 예술가와 그들의 음악, 그리고 팬들도 성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자극적인 표현을 넘어서는 깊이 있는 음악을 만들어야겠지요. 청자도 단순히 하나의 표현에 신경 쓰기보다 맥락을 느끼며 감상하면 좋을 테고요. 어두운 사회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그러면서도 예술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보여주는 힙합 속의 거친 표현들이었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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