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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청년] "사람값 사람값…, 사람값이 너무 싼 게 문제야"

청년 공감 프로젝트 ‘날 선,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5) 사진 노동자 정나은

2017.04.26(Wed) 09:22:05

[비즈한국] 제19대 대선이 벼락같이 시작됐다. 정치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기존 선거 보도는 대선후보 위주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유권자는 보도의 주변으로 쫓겨나며,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청년, 특히 ​기성 매체와 기자의 범위 바깥에 있는 청년들은 더욱 그렇다. ‘비즈한국’은 ‘미스핏츠’ ‘밀레니얼 오브 서울’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날이 선 채로, 날 것 그대로’ 풀어본다. ​

 

만성 질환은 환자로 하여금 그게 질병인지도 모르게끔 만든다. 한국 사회엔 저임금 과노동이라는 만성 질환이 있다. 100의 일을 해도 50밖에 받지 못하는 청년이 있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기성세대가 있다. 사람값이 인정받는 사회는 언제 올까. 사람값을 인정받기 위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 탈조선을 꿈꾸는 청년, 정나은(가명·여·​25)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진=송유빈


# 공연계 3년이면 공연계에서 일한다 


―어, 오늘은 사진기가 없네. 사진기 항상 갖고 다니는 거 아니었어?

“아냐, 무거워서 어떻게 갖고 다녀. 촬영할 때만 갖고 다니지. 평소엔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 일할 때는 결혼식 스냅 사진을 찍거나 그랬는데 요즘엔 그냥 인디밴드들 앨범 사진 위주로 찍어.” 

 

―인디밴드? 그분들도 힘들 텐데 돈은 얼마나 받아?

“액수를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는데 많이 받진 않아. 그쪽에선 많이 못 줘서 미안해 하는데, 난 그쪽 상황을 아니까 받는 것도 좀 미안해. 그래도 좋아하는 밴드들 앨범 표지도 찍으니까 성공한 팬이라 괜찮아.”

 

―인디밴드는 어떻게 좋아하게 된 거야?

“생각해보니까 어릴 때 부모님 덕분에 록음악을 많이 들었던 게 영향이 큰 거 같아. 어릴 때 1970년대 펑크 음악을 많이 들었거든. 그래서 그런지 원래 나도 음악을 하고 싶었고, 학교 다닐 때 밴드하며 자연스럽게 밴드 음악을 좋아하게 됐어. 공연 보러 자주 다니다가 밴드 매니저랑 소속사 대표랑 페이스북 친구도 되고, 공연 기획팀에서 일도 하게 됐어. 팬으로 쫓아다니다가 일까지 하게 된 거야.” 

 

사진=송유빈


―음악하고 싶어서 밴드까지 하던 애가 어떻게 사진을 일로 삼았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고 해서 잡지 ‘매그넘’ 만든 사진기자 때문이야. 그 기자가 보도사진 찍는 다른 기자들을 데리고 ‘매그넘’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는데, 거기 실린 사진이 너무 멋있는 거야. 그 사람이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을 촬영했어. 우리나라였으면 여왕이나 참석한 귀빈 위주로 사진을 찍었을 텐데, 그 사람은 일반인들을 찍더라. 평범한 시민들이 졸고 있거나, 딴짓하고 있는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야. 처음엔 사진기자가 되고 싶었어. 근데 사진기자 업계가 성차별도 심하고, 대우도 안 좋아서 사실상 접었어. 아직도 보도사진은 좋아하는데, 직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아.” 

 

―보도사진 좋아한다길래, 최근에 시위현장도 찍었어? 

“응, 당연하지. 브렉시트(Brexit) 투표할 때 유럽여행 중이어서 그거 관련한 시위 사진도 찍어놨어. 세월호 촛불 집회 사진도 찍었고, 위안부 수요 집회 사진도 많이 찍었어. 외할아버지가 징용 및 징집 피해자라서 어릴 때부터 그쪽 문제는 관심이 많았거든. 수능 끝나고부터 자주 갔고 요즘에도 자주 가.”

 

# 100을 일해도, 50밖에 못 받는 게 당연한 세상


―사진 스튜디오에서도 일했잖아. 거기도 성차별이 많은가? 

“사진계도 성차별 문제 어마어마하지. 스튜디오에서 연차가 쌓이면 승진을 하는데 남자부터 승진을 해. 내가 일할 때 사장이 나한테 ‘다음엔 꼭 너 승진시켜줄게.’ 이러면서 하루에 촬영을 세 개씩 시켰어. 그렇게 몇 달 동안 승진만 바라보고 꾹 참고 일했는데 결국 나 말고 다른 남자애를 승진시켜주더라. 심지어 나보다 일도 덜 했는데 말이야.” 

 

―아, 승진하면 처우가 많이 나아지나.

“일단 승진하면 월급이 20만 원 올라가고, 나름 권한도 부여되고 일하는 거에 있어서 자유도도 올라가.” 

 

―그런 차별이 싫어서 독일에 공부하러 가는 거야? 

“공부든 뭐든 독일에서 하려고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람값 때문이야. 한국에서 사진 일을 한다고 치면, 100만큼 일을 해도 50밖에 받지 못해. 이거에 불만을 가지면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든지 ‘​​그러면 하지 말든가’​라는 말 밖에 안 돌아와.” 

 

“하는 일에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선, 특히나 사진이나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선 독일에 가는 게 맞는 것 같더라. 가는 데 비용이 들기는 하는데, 그래도 거기서 하는 게 정답이야.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에 관심이 많고 노동 정책도 엄격하게 시행하잖아. 하는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받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가는 거야.”

 

사진=송유빈


―대체 스튜디오에서 하는 일이 어땠길래?

“일단, 쉬는 날이 없어. 쉬는 날이더라도 휴대폰으로 문의 전화를 다 받아야 하니까 사실상 쉬는 날이 없고, 매일 출근하는 셈이야. 그렇게 한 달을 꽉 채워서 일해도 80만 원 밖에 받지 못해.” 

 

“개별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야.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 자체가 사진을 포함해서 문화에 돈을 쓰려고 하지 않아. 문화에 들어가는 노동을 무시하는 거야. ‘​​​그거 가지고 뭐 얼마나 줘야 하나? 뭐 그렇게 많이 받아?’​ 이러지. 사진 찍고, 보정하고 스트레스 받고 노동이 들어가는 데 신경도 안 써. 한국은 사람값이 싼데, 예술 문화의 사람값은 더 싸.” 

 

―생각해보니까 넌 문제가 많은 곳만 돌아다니는 거 같네. 사진에 음악에 안 좋은 곳만 골라 다니는 거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문화 계통에서 최저임금이나 노동법이 꼭 좀 지켜졌으면 좋겠어. 여기는 열정페이부터 구조적 문제까지 너무 총체적 난국이야.”

 

# 사람값 없는 곳에, 미래 없다

 

―촛불집회 가봤어?

“응. 박근혜 퇴진집회 갔었지. 초등학교 5학년이 하는 발언을 들었는데 좀 충격적이었어. 자기는 역사를 너무 좋아하고, 계속 공부하고 싶은데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쓰인 역사를 공부하는 게 무섭다는 거야. 진짜 말 잘하더라.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좀 바뀔 수 있겠다고 하는 희망을 얻었지.”

 

―대통령 바뀐다고 해서 우리 삶이 나아질까?

“응, 당연히 바뀌지. 특히 문화 및 예술계는 더 크게 바뀌어. 아무래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많이 하니까 대통령의 기조가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그게 아니더라도, 대통령이라는 게 행정부의 수반이잖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정책이 바뀌니까 우리 모두의 삶에 영향을 주는 거지.” 

 

“만약 대통령이 ‘​​​​사람값이 너무 싸니까 개선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밑의 사람들이 구체적인 안을 가져오고 국회랑 같이 법을 만들잖아. 대통령이 바뀌면 내 삶이 바뀌지.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나라가 망가질 수 있는 만큼, 나아질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 해서 바꾸고 싶은 건 뭐야?

“사람값. 사람값, 사람값. 내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값이 너무 싼 게 문제야. 예술 쪽에 있는 친구나,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나 전부 같은 이야기를 해. 출근하면 퇴근 없이 맨날 사무실에서 일만 해도 얼마 받지도 못해. 돈 쓰라고 정부가 막 계속 말을 하는데, 우리가 돈을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나? 쓸 돈이 없으니까 못 쓰는 거잖아. 일은 엄청 해도 돈을 안 주니까 못 쓰는 거지. 쓸 돈이 생기게끔 정책을 만들어야지 자꾸 돈을 쓰라는 정책을 만드는 건 뭐야.”

 

사진=송유빈


―그럼 너는 무슨 정책이 먼저 나와야 할 거 같아? 최저임금?

“하나만 얘기하긴 되게 힘든데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문화에 대한 교육이라고 봐. 문화계 노동자에 대한 저임금 착취가 가능한 이유는, 역으로 사람들이 문화계를 모르기 때문이야. 문화를 모르니까 그곳에 돈을 안 쓰고, 돈을 안 쓰니까 시장이 작고, 심지어 돈 쓴다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니까 저임금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지. 이러니까 회사로선 착취가 정당화되는 거야.”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 문제를 고칠 수 있을까?

“직업정치인으로 살다 보면 안 좋은 꼴을 보게 되니까 존경하는 사람은 대통령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나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심상정. 정의당을 좋아하진 않는데, 적어도 그 사람은 이상한 정책을 펼칠 일은 없을 거 같아. 가치관도 나랑 가장 비슷하고, 실수도 안 할 것 같은 사람이라 고를 것 같아.”

 

―어떤 세상이 오길 바라?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 수 있는 세상. 나도 인터뷰하면서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게 많아. 자기검열 때문인 거지. 이런 두려움 없이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 그래야 대화할 수 있고, 소통이 가능하잖아.”

 

“혐오 문제도 일종의 대화, 그러니까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선 소통이 필수인데 소통이 안 되니까 문제를 고치지 못하는 거지. 대통령만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불통인 거 같아. 각자 생각을 있는 대로 표현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화해야 많은 문제가 고쳐질 거 같아.”

인터뷰=구현모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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