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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일기] 탄핵이 취준생에게 미치는 영향

개인의 꿈만이 아니라 모두의 꿈을 이루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졌다

2017.03.13(Mon) 16:57:25

[비즈한국] 탄핵이 취준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 한 나라 대통령이 파면 당했는데 그 나라 국민과 상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취준생에게 탄핵이란? 글쎄, 지금 당장 눈에 띄는 건 없다. 내가 지망하는 직장의 어떤 사람이 너무 기쁘거나 슬픈 나머지 사표를 내고 새 삶을 찾아 떠나 공석이 생긴다면 모를까, 아직 잘 모르겠다.

 

이날 아침에는 유난히 눈이 빨리 떠졌다. 사진=JTBC 화면 캡처


하지만. 이정미 헌법재판관도 ‘그러나’를 외치지 않았던가. 그의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가 끝났을 때부터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2016년부터 2017년으로 넘어오면서 내게 새로운 개념이 생겼다. 의심과 확인. 내가 몸 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새삼 느끼고, 한 시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 나날들이었다. 

 

취준생인 나와 탄핵의 관계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일을 하며 살아갈 세상을 내가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하는 것, 이는 받고 싶은 연봉만큼이나 중요하니까. ‘탄핵’, 이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단어는 내 꿈의 ‘방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다.

 

존경하는 한 PD님은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이뤄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항상 그 말을 생각한다. 내가 되고 싶은 라디오PD라는 직업은 결과가 아니라 수단이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 놓인 모노레일 같은 것. 직업이 꿈이 될 수 없다. 그 직업을 가지고 난 다음에는? 나는 죽는 순간에서야 내 꿈을 놓고 싶다. 그 꿈은 나를 향한 것뿐 아니라 이 세상 하나의 결이 되었으면 한다.

 

일생 동안 추구할 꿈은 ‘오글거리는 세상 만들기’다. 사람들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 몇몇은 웃음을 터뜨리며 어떤 의미냐고 묻곤 한다. 일정 기간 친분을 쌓은 사람들은 꿈을 응원해준다(고 믿으려고 한다). 처음 꿈을 소개할 때 덧붙이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쿨(cool)하다 못해 추워져(chill) 버렸고, 작은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아야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진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오글거린다고 무시한다. 하지만 쿨하고 시크해지기 위해 잠시 숨겨온 것이지, 우리의 유치함은 우리 안에 있다고 믿는다. 오글거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더 서로를 이해하길, 그래서 진짜 행복하게 살았으면. 

 

귀엽고 따뜻한 것이 좋다.


자소서 ‘향후 포부’란에 항상 쓰는 내용은 이렇다. 라디오PD를 하고 싶은 이유는 오글거리는 세상을 만들고 싶고, 그 방법으로 라디오라는 매체가 좋아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라디오는 성인이 돼서도, 아니 자라서부터는 더욱 나를 위로하는 소중한 존재였기에 막연히 좋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았으면 했다. 

 

그 좋은 오글거리는 꿈에 대해서 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냐. 꿈의 한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친 사람들에게 주려는 감정적 위로가 ‘개인’에게 그칠까봐 두려웠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서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너의 희망이 되었으면 해, 이런 말들을 하고 싶었던 거, 맞다. 그런데 탄핵과 얽힌 일련의 사건, 사고들, 옳고 그름을 뭉개버리는 행동들, 갈등들…. 

 

나의 꿈과 노력이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각박한 삶들을 위로한들, 그들과 함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아직 자신이 없다. 

 

해가 질 때마다 내일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서글 퍼지는 것은 왜일까.


탄핵 선고일, 나의 가족은 삼계탕집에 갔다. 소설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 쪽 다리가 없는 사내가 음식점에 들어와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인절미와 쑥떡을 파는 듯 했다. 우리는 미안함과 난처함에 열심히 밥만 먹었다. 목발을 짚은 그는 테이블마다 돌면서 양해를 구했고, 곤란한 눈치를 보이면 다음에 뵙겠다며 물러났다. 

 

불편한 몸으로 깊게도 고개를 숙이던. 말을 걸어서 미안하고 자기 나쁜 사람 아니라고, 아무도 묻지 않은 변명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손님들에게, 행복하시고, 하는 일 다 잘 되시라고 인사한 뒤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창문을 보니 그는 땀 범벅이 된 얼굴로 멈칫한 뒤, 우렁찬 목소리로 “떡 사세요”라고 외치며 거리로 향했다.

 

당혹스러울 만큼 성실하고 힘찬 사내의 이미지, 식사를 방해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던 모습, 대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으려나. 약한 사람들을 더 약하게 만드는 세상,  진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천지인데.

 

※필자는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 거둬갈 기업 관계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 

이상은 취업준비생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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