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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이 땅에 제일 먼저 봄꽃 소식을 전하는 풍도바람꽃

2017.03.13(Mon) 09:54:24

 


풍도바람꽃(미나리아재비과, 학명 Eranthis pungdoensis B.U.Oh

 

[비즈한국] 아직도 아침저녁 찬바람은 살 속을 파고드는데 절기는 어느새 입춘, 우수, 경칩을 지났다. 어둡고 긴 겨울이 지나가고 남쪽으로부터 곳곳에서 봄꽃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기다릴 수만은 없는 조급한 마음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봄꽃 맞이를 떠났다. 

 

인천에서 몇 시간 뱃길 따라 풍도(豊島)에 올라 이 땅에 제일 먼저 봄꽃 소식을 전하는 풍도바람꽃을 만났다. 텅 빈 것처럼 보이는 후망산 자락 숲 바닥을 자세히 보니 하얀 꽃, 노랑꽃이 곳곳에 피어나 있다. 하얀 풍도바람꽃과 노란 복수초가 함께 어울려 풍도는 이미 꽃동산이 되어 있었다.

 

야리야리한 꽃대에 큼지막한 하얀 꽃을 매달고 있었다. 산들거리는 봄바람 미풍에 쉬임없이 흔들대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햇볕에 반짝이는 새하얀 꽃빛이 곱기도 하다. 흰색이 이리도 화려한 색깔이었던가 싶도록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꽃이 없다시피 한 긴 겨울에 야지의 꽃을 보지 못했기에 꽃에 허기진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가냘픈 줄기에 피어나는 이른 봄 풀꽃치고는 꽃이 크고 곱다. 오랜 세월 묵혀둔 한 많은 사연을 한꺼번에 풀어낸 듯한 애틋함이 묻어나 보이기도 했다. 

 


육지에서는 이제야 봄이 시작되는 듯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는 중인데 왜 이곳 풍도에서만이 이토록 바람꽃이 일찍 피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청일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이곳 풍도, 려순만과 진주만의 기습 공격 때에도 그러했듯이 뒤통수 기습공격의 명수인 일본군은 청일전쟁 때에도 이곳 풍도 앞바다에서 청의 군함을 기습공격으로 격침하고 나서야 선전포고를 했던 역사적인 섬이다. 

 

졸지에 기습 격침을 당해 수장되어 버린 채 육지에 오르지 못한 원혼의 넋들이, 꽃으로 변해버린 아네모네의 슬픈 넋두리처럼 매년 봄이 되면 피어나는 것일까? 화사한 하얀 꽃 바탕에 서리는 푸른빛이 마냥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너도바람꽃, 변산바람꽃, 풍도바람꽃은 꽃이 피는 시기와 잎과 꽃의 모습이 서로 비슷하다. 이중 너도바람꽃은 일찍 알려졌지만, 변산바람꽃은 전북대 선병윤 교수에 의해 1993년에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풍도바람꽃은 2009년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오병운 교수에 의해 학계에 알려졌고, 2011년 1월 ‘풍도바람꽃’으로 정식 명명됐다. 

 

이 꽃들이 최근에 생겨난 것도 아닌데 이제야 학명이 붙여진 것은 서로 비슷한 형태이기에 모두 너도바람꽃으로 간주하다가 그 차이점을 세밀히 조사하여 새로운 종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변산바람꽃과 풍도바람꽃의 학명은 우리의 지명과 우리 학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우리나라 식물 중 몇 안 되는 식물이 되었다.

 

변산바람꽃은 첫 발견지가 변산반도이며 그 후 마이산, 지리산, 수리산 등 육지의 여러 산지에서 발견되었다. 산지의 햇볕이 잘 드는 습윤한 지역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꽃은 줄기 끝에 1개 달리며 꽃받침은 흰색으로 5장이며 둥글다. 

 


우리 눈에 하얀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잎이다. 진짜 꽃잎은 퇴화하여 꽃 안쪽에 수술과 함께 둥근 깔때기 모양의 것으로, 초록색 또는 노란색을 띤다. 

 

주로 육지의 산지에서 발견되는 변산바람꽃은 너도바람꽃보다 개화기가 빠르며 포엽이 선형으로 갈라지고 꽃잎이 깔때기 모양에 초록색 또는 노란색을 띠는 점이 서로 다르다. 

 

풍도바람꽃은 다른 지역의 변산바람꽃보다 꽃잎이 좀 더 넓은 U자형 깔때기 모양이고 크기가 대략 0.5mm 정도 크다는 점을 들어 ‘풍도바람꽃’이라는 신종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풍도에서 자라는 것이 변산바람꽃보다 약간 큰 것처럼 보이지만 종(種)을 따로 구분해야 할 정도의 생태 차이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풍도바람꽃

 

바람 따라 

풍문 따라 

뱃길 따라

찾아온 풍도(豊島)에

풍도바람꽃 소롯이 피었다.

 

외딴 섬 동토(凍土)에 아득한 봄소식

긴 겨울 허기진 나그네의 꽃소식

기다림에 지친 이른 봄날,

바람꽃의 꽃망울

나그네의 눈망울

풍도(豊島)에 엎드려 마주치자마자

번쩍 타오르는 불꽃,

온 천지에 봄 불이 번져 나간다.

 

인적 드문 섬마을의 고단한 삶

청·일간 풍도 해전(海戰)의 슬픈 역사

복잡다단한 육지의 탄핵 시국

모두 모두 잊었다.

 

오직

망울망울 터뜨리는

새하얀 바람꽃 무더기 따라

가슴에 봄 불만 지피고 왔다.

 

(2017. 3. 10 풍도에서)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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