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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어차피 대상은 백인? ‘화이트 그래미’ 논란

흑인 음악 인정하기 싫은 ‘올드 화이트’ 정서로 권위 퇴색돼

2017.03.01(Wed) 15:07:45

[비즈한국] 올해 그래미상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아델의 해였습니다. 아델은 5개 부분 후보에 올라 모두 수상했습니다. 그중에는 분야별 상이 아닌 ‘본상’으로 불리는 전체 부분이 3개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그리고 올해의 레코드입니다. 본상이 4개고, 그중 1개가 신인에게만 주어지는 ‘올해의 신인상’임을 고려하면 올해는 아델이 사실상 모든 본상을 받은 셈입니다.

 

그래미 트로피.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그녀의 수상 소감은 뜻밖에 겸손했습니다. 겸손하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사실상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올해의 음반’ 상을 받으며 자신이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는 비욘세고, 올해 최고의 앨범은 그녀의 신작 ‘레모네이드(LEMONADE)’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비욘세 또한 아델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델의 그래미 수상 소감 연설. 본인보다 비욘세를 오히려 더 인정하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다. 유튜브 댓글란은 인종차별은 없었다며 비욘세를 폄하하는 댓글로 가득하다. 트럼프 시대의 한 단면이다.

 

아델의 이번 앨범 ‘25’이 과연 올해 최고의 앨범인지에는 의문이 많습니다. 레트로 소울이라는 본인의 특기를 동어 반복한 앨범이기 때문이지요. 이전 앨범보다 더욱 과거로 회귀한 음악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싱글 ‘헬로(Hello)’가 기록적인 판매량을 올린 것과 별개로 올해 가장 훌륭한 음반이냐는 의심이 든다는 거지요.

 

아델의 ‘25’ 앨범 커버


아델이 극찬한 비욘세의 앨범 ‘레모네이드’는 어떨까요? 이 앨범은 비욘세의 최고작이라 할 만합니다. 비욘세는 원래 철저한 자기관리로 본인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성적으로도 온건한 메시지만 드러냈습니다. 덕분에 백인이 가장 좋아하는 흑인 아티스트였죠.

 

비욘세의 ‘LEMONADE’ 앨범 커버. 이 앨범은 비욘세의 남편 제이지가 운영하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Tidal’에 독점 공개되었다.


‘레모네이드’는 지금까지의 비욘세와 달랐습니다. 이전의 음악과 달리 거침없이 흑인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페미니즘과 흑인 인권운동의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트레이본 마틴 살인사건, 2014년 퍼거슨 사태, 블랙 리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등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거침없는 목소리를 불편하게 쏟아낸 음악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크레이지 인 러브(Crazy In Love)’ 같은 흥겨운 댄스 음악을 구사하던 팝 디바가 사회적 목소리를 전달하는 아티스트가 된 겁니다.

 

비욘세의 ‘포메이션(Formation)’. 흑인 인권 운동을 담은 도발적인 메시지로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음악도 새로웠습니다. 레드 제플린의 ‘웬 더 리비 브릭스(When the Levee Breaks)’부터 스윙 재즈, 포크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샘플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신 아방가르드 알앤비와 트랩 음악의 조류도 놓치지 않았지요. 과거 흑인음악과 최신의 흑인음악을 접목해 가장 세련된 흑인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다수 평론가의 평점을 종합해서 보여주는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아델의 ‘25’는 100점 만점에 75점을 맞았습니다. 좋은 점수입니다. 비욘세의 ‘레모네이드’는 92점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만점에 가까운 점수지요. 자신의 과거 성공을 ‘더 보수적으로’ 반복한 아델의 이번 앨범이 과연 10년, 아니 5년 뒤에도 화제가 될 음악일지 생각해보면 이번 그래미의 선택에 의심이 가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아델의 ‘헬로(Hello)’는 부정할 수 없이 작년에 가장 히트한 팝 싱글이다. 대중성만으로는 올해 가장 중요한 싱글이 분명하다.

 

그래미는 흑인음악을 무시한다는 의심을 꾸준히 받아왔습니다. 한 예로, 21세기 가장 중요한 힙합 아티스트인 카니예 웨스트는 그래미 본상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카니예 웨스트의 ‘마이 뷰티풀 다크 트위스티드 드림(My Beautiful Dark Twisted Dream)’을 21세기 가장 중요한 앨범으로 뽑고 싶은데요. 이 음악은 가장 영향력 있는 랩 앨범이자 록 앨범, 나아가 퓨전음악 앨범이었습니다. 음악 제작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쳐 한국 대형기획사에까지 영향을 줬을 정도로 중요한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94점이었습니다. 

 

카니예 웨스트의 앨범​ ‘마이 뷰티풀 다크 트위스티드 드림(My Beautiful Dark Twisted Dream)’에 수록된 곡 ‘몬스터(Monster)’. 니키 미나즈(Nicki Minaj)의 역대 여성 래퍼 사상 최고의 랩이 담겨있다. 아델도 좋아해 TV 쇼에서 니키 미나즈의 파트를 암기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이 앨범은 아델의 ‘21’에 밀려 본상 수상에 실패했습니다. ‘21’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76점이었습니다. 아델식 레트로 소울이 정점에 달했던 앨범이지만 ‘MBDTD’만큼 완성도가 높았던 음악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생깁니다. 

 

작년에도 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도 소개했던(관련기사 ‘컨트롤 비트 주세요’ 켄드릭 라마 이야기) 켄드릭 라마의 최고작 ‘투핌 어 버터플라이(To Pimp A Butterfly)’ 또한 그래미 본상 수상에 실패했습니다. 메타 크리틱에 따르면 이 앨범 점수는 무려 96점입니다. 이제까지 발매된 랩 앨범 중 역대 최고 점수지요. 하지만 이 앨범은 컨트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댄스 팝 가수로 변신해서 낸 음악 ‘1989’에 밀려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에는 실패했습니다. ‘1989’의 평균 점수는 76점이었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배드 블러드(Bad Blood)’. ‘올해의 앨범’ 상을 두고 그래미에서 경쟁했던 켄드릭 라마가 랩으로 참여했다.

 

물론 아델은 적당히 트렌디하고 적당히 레트로한 무난한 앨범을 잘 만듭니다. 컨트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댄스 가수로의 변신이 놀라울 수도 있습니다. 하나하나는 그럴 만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꾸준히 반복된다면 의심이 갈 수밖에 없지요.

 

왜 이런 문제가 있을까요? 그래미를 주최하는 레코딩 협회(Recording Academy)의 회장 닐 포트너(Neil Portnow)는 인종논란을 부정했습니다. 그는 그래미 상은 음악협회의 1만 4000여 명의 회원들이 84개의 평가항목을 통해 앨범을 정하기 때문에 편견 문제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한 그는 아델이 받지 못한 본상인 ‘올해의 신인’에 흑인이자 래퍼인 찬스 더 랩퍼(Chance the Rapper)가 선택된 게 인종 편견이 없다는 증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적어도 그래미는 ‘소수의 백인 노인들의 야합’으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음악계 현업 종사자 ​1만 4000명의 투표로 이뤄지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다수의 ‘시스템적인 차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 백인과 흑인음악이 나누어진 장르 음악이 아닌 본상의 경우 시스템적 차별이 두드러집니다. 찬스 더 랩퍼는 99년 이후 18년 만에 ‘올해의 신인’ 상을 받은 흑인 아티스트입니다. 최근 18년은 힙합이 팝 음악을 지배하던 시절이였습니다. 음악학자 존 빌라노바(John Vilanova)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흑인 아티스트는 총 17명이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 중 수상한 앨범은 ‘과거 음악’인 재즈를 구사하는 아티스트인 허비 행콕이 ‘과거 음악’인 ‘백인 포크 가수’ 조니 미첼의 음악을 커버한 앨범뿐이었습니다.

 

노라 존스와 허비 행콕이 함께 리메이크한 조니 미첼의 음악. 물론 훌륭한 프로젝트지만 새로운 음악이라기보다는 과거로 회귀하는 음악에 가깝다. 이 곡이 포함된 앨범은 2008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 상을 받는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흑인음악을 차별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레코딩 협회의 멤버들의 음악 취향이 보수화되었습니다. 백인음악의 혁신은 멈췄습니다. 그들에게 흑인음악은 불편하지요. 결국 무난하고 평범한 팝 음악의 손을 들어줍니다.

 

힙합이 세계를 제패하던 지난 20년간 그래미는 ‘80년대 음악으로 회귀한’ U2나 ‘재즈에 팝과 컨트리를 섞은’ 노라 존스 등 과거 지향적인 음악가를 우대했습니다. 특히 음악 혁신과는 큰 관심 없이 과거지향적인 대중적 록음악을 만들었던 U2에 상을 몰아줍니다. ‘적당히’ 진보적인 정치 메시지에 ‘적당히’ 불편하지 않은 록음악을 하는 U2가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언젠가부터 그래미의 취향은 힙합이 이끄는 음악의 혁신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루해지고, 과거지향적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백인 대중의 취향이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들의 의견도 소중한 의견이지요. 어쩌면 음악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백인들의 시야를 고려하는 게 ‘그래미의 색깔’일지 모릅니다. 

 

백인 음악에서조차 그래미라는 상이 가진 권위 자체가 허상입니다. 21세기에 보수화된 그래미가 힙합 대신 21세기에 얼굴로 택한 아티스트가 U2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덕분에 U2는 그래미에서 22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비틀스조차 그래미상은 10개밖에 받지 못했는데 말이죠. 누구도 U2가 비틀스보다 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음악의 역사를 그래미가 써주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U2의 ‘버티고(Vertigo)’. 매우 비판적으로 썼지만, 필자가 아주 좋아하는 밴드다. 언젠가는 다룰 예정이다.

 

음악가들도 이 사실을 잘 아는 듯합니다. 그래미 수상자들은 끊임없이 흑인음악에 존경을 보여줍니다. 아델은 비욘세의 앨범이 올해 최고의 앨범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카니예 웨스트의 ‘MBDTD’의 수록곡 ‘몬스터’를 좋아해, TV 쇼에서 이 곡의 니키 미나즈(Nicki Minaj)의 랩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테일러 스위프트 또한 자신이 올해의 앨범 경쟁에서 이긴 켄드릭 라마를 좋아해 자신의 곡에 피처링을 부탁해 곡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흑인음악 아티스트 등도 그래미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나름의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만 해도 드레이크, 카니예 웨스트, 그리고 저스틴 비버 등의 흑인음악 아티스트들이 그래미 시상식에 불참했습니다. 심지어 프랭크 오션은 일부러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후보에 오르는 일조차 거부했지요. 그래미의 영향력과 대표성을 부정하는 일종의 ‘보이콧’입니다.

 

한국 예능 ‘택시’를 연상시키는 TV 쇼에 출연한 아델이 카니예 웨스트의 곡 ‘몬스터(Monster)’에서의 니키 미나즈의 랩을 보여주는 영상.

 

상을 주면 언제나 논란이 생깁니다. 칸 영화제에서도 당대 최고의 영화라기에는 의문이 드는 영화 ‘미션’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 등 논쟁적인 수상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최고의 영예라는 노벨상마저도 논란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의 명예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죠.

 

저처럼 그래미 수상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할 일은 뭘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미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는 건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그래미가 무시한,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음악을 끊임없이 알리는 일이겠지요. 점차 혁신과 보수가 갈라지기 시작한 미국 음악업계, 나아가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해프닝. ‘화이트 그래미’ 논란이었습니다.

 

※필자 김은우는 모바일 교육 미디어 앱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입니다. 미국에서 교직을 이수했습니다. 원래는 록 덕후였으나 미국에서 소수 인종으로 살아본 후 흑인음악 덕후로 개종했습니다. 현재는 학부모에게 교육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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