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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요리직설’…“​셰프는 재능 아닌 근성이 만드는 것”

맛있다고 성공하는 것 아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대중이 인정해

2017.02.28(Tue) 23:20:28

[비즈한국] “소수에 서야 마음이 편해요. 제 인상 보세요. 편하지 않잖아요.(웃음)”

 

‘재능’ ‘스타’ ‘대박’과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들을 언급할 때마다 그는 일일이 부인한다. 음식과 요리는 평범한 삶의 일부라는 생각 때문이다.

 

최고의 식당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의 발길은 끊임없다.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쌓아올린 ‘박찬일만의 세계’가 되레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얼마 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돼지국밥집의 주방장이 된다. 2월 27일 그가 운영 중인 광화문 ‘몽로’에서 박찬일 셰프를 만났다. 

 

8년차 잡지사 기자였던 박찬일 셰프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요리를 배우러 이탈리아로 떠났다. 사진=임준선 기자

 

―사람 만나는 게 싫어 기자를 관뒀다고 들었다.

“글 쓰는 게 좋아 기자가 되었는데 사람 만나는 게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회사도 잘 안 가고 속 썩였다. 지금은 매체가 많고 경쟁이 치열해 기자가 기사 공급자처럼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글쓰기의 낭만이 존재했다. 기자와 문사의 구분이 모호했다. 소설가 염상섭, 김동인, 김훈 등이 편집장이고 기자였다. 내가 그 정도로 잘 썼단 얘기가 아니라 글 쓰는 게 좋았을 뿐, 저널리스트로서의 성격이 강하지 않았던 거 같다.”​

 

―1999년 잡지사를 그만둔 뒤, 이탈리아로 건너가 요리를 배웠다. 서른이 넘은 나이였고 첫 가게는 35세에 열었다. 칼 ​한 번 안 잡아본 사람이 어떤 확신이 있었던 건가. 

“​그때는 60살이 넘으면 인생을 정리한다고 생각했을 때다. ‘35세’의 개념이 달랐다. 안정된 직장이 있으면 전직은 상상도 안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IMF가 패러다임을 바꿔 놨다. 회사와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다. 그렇다고 ‘셰프’처럼 거창한 걸 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간 건 아니었다. ‘밥집 주인’이 되기 위해 길면 6개월 정도 있으면서 스파게티 몇 개 배울 생각이었다. 여성지 기자다 보니 요리 콘텐츠를 계속 접했고 요리사들을 만날 기회도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어느 정도 감이 있었던 거 같다.”​

 

―노력만큼 재능도 중요할 부분일 수 있다.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건가.

“​운동선수와 달리 요리사는 생활인이다. 서열을 매기고 기록을 갱신해야 하는 개념이 약하다. 우리나라 야구선수가 몇 명이나 되나. 재능이 없으면 프로는 되기 힘들다. 하지만 요리사는 직업군 중에 종사자 수가 10위 안에 들 정도로 많다. 재능이 없어도 같은 일을 반복하면 잘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재능은 냄새를 잘 맡는 거 정도다. 냄새 못 맡아도 요리는 잘할 수 있다.”​

 

―재능이 없었다면 ‘트라토니아 논나’, ‘뚜또베네’부터 지금 운영 중인 광화문 ‘몽로’, 서교동 ‘로칸다 몽로’까지 성공적으로 론칭시킬 수 있었을까. 

“​나이 들어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크게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맛있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손님이 끊이지 않은 가게가 분점을 내면 대부분은 잘 안 된다. 레시피는 전수해주면 비슷하게 할 수 있지만 그 집만의 개성은 이식이 안 된다. 나는 남들이 안 하는 걸 한다. 내가 만든 소창자 요리, 돼지고기 요리 등은 이전 양식집에선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먹어보니 괜찮고,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음식을 먹었다는 만족감을 충족시켰던 거 같다. 어렸을 때부터 성향이 아웃사이더였다. 나만의 세계를 쌓고 살았다. 소수파를 자처하다 보니 초등학교 때는 린치를 당한 적도 있다. 음식도 남들이 안 하는 걸 했을 뿐이다.”​

 

―양식당인데 ‘나물’, ‘된장’ 등 익숙한 재료들이 눈에 띈다. 

“​한식당은 원래 제철 재료로 요리한다. 값이 싸고 맛있기 때문이다. 서양음식에 꼭 서양재료를 써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다. 유명 요리사들은 타지에 가면 그곳에선 언제 뭐가 제일 맛있는가를 먼저 검토한다. 미슐랭 3스타 요리사가 도쿄에 가게를 낼 때 일본 재료를 기본으로 쓴다. 필요에 따라선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공수한 재료를 섞는다. 원칙을 세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리한다. 5월 미나리는 향도 좋고 아삭아삭해 맛있지 않나. 양식에 얹으면 맛이 풍부해진다. ‘로컬푸드’ 개념이 자연스러운 이탈리아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더욱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박 셰프는 ‘진정한 유기농은 이타적인 생각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좋은 재료와 건강한 삶을 생각하는 게 사치처럼 되어버린 측면이 있다.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들에게 배부른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비싼 유기농 제품을 사먹자는 얘기가 아니다. 정당하게 기른 재료, 건강하게 만든 음식을 정당한 값을 치르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는 얘기다. 그건 고시원에서 삼각김밥 먹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세상이다. 유기농은 단순히 농약을 치지 않는 게 아니라 농민과 땅 그리고 우리 모두를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강남에는 수입 유기농 매장이 있다고 들었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유기농의 본질에서 멀어진 모습이다. 차라리 농약을 친 것이라도 국산을 쓰는 게 옳다고 본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뉴욕 고급 식당의 유기농 양상추가 7000마일 떨어진 멕시코시티에서 불법체류자들이 정당한 돈을 받지 못한 채 땡볕에서 핀셋으로 벌레를 잡으면서 만들어졌음을 비판했다. 진정한 유기농은 인간 중심적 가치, 평등 추구를 담고 있는 이타적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셰프가 연예인 이상의 스타성을 가지게 된 시대다. 

“​스타 셰프 양성학과도 있다고 들었다. 최현석, 이연복 씨처럼 스타 셰프는 존재한다. 근데 그걸 어떻게 양성하나. 기술이 끝내주는 셰프를 양성하는 건 가능하다. 재능 있는 사람을 뽑아 오랫동안 교육시키면 된다. 그러나 스타 셰프는 TV가 우연히 만든 거다. 허황된 꿈만 심어줄 뿐이다.”​ 

 

 

―‘박찬일식 닭튀김’은 단연 인기 있는 메뉴다. 왜 이 메뉴에만 본인 이름을 붙였나.  

“​다른 곳에 없는 메뉴라는 점 정도지 별 뜻은 없다. 라이스페이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꼼수가 들어갔다. 유독 이 메뉴가 주목받는 이유는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미디어에 소개된 걸 먼저 먹어보고 크게 맛없지 않으니 맛있다고 올리고 또 그걸 누가 보고 온 거다. 우리나라는 미식이 발달하기 어려운 나라다. 미식은 용감해야 한다. 남이 먹은 것만 답습해서는 안된다. 또 다른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먹고 맛없으면 손해나는 기분이니까 모험하지 않는 거다.”​

 

―최근 논란인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다.

“​스트레스 받으신 분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세월호 진상을 규명하라는 문화 예술인 지지 서명을 한 것 밖에 없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다 보니 그들이 알아서 올린 거 같다. 나는 정치적으로 그런 탄압을 받으면 안되는 시민의 한 사람이다. 왜 자기네들 멋대로 그런 데에 올리나.”​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광화문 국밥’이라는 국밥집을 3월 중에 열 생각이다. 국밥을 자주 만들어 먹었는데 사람들이 한 번 팔아보라고 했다. 서울에 돼지국밥집이 별로 없다. 평범한 식당이 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맛있는 거 같이 나눠 먹자고 열었다. 바라는 건 안 죽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거다. 우리 나이 때는 편하고 즐거운 것을 억제해야 오래 산다. 술은 적당히 마시고, 기분 좋게 살고, 되도록 순한 음식 먹어야 한다. 또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국가의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을 거다. 안 그래도 살기 힘든데 대통령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박혜리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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