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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안전자산의 저주, 일본경제를 옭아매다

세계경제가 나빠지면서 안정적인 엔화 환율 급등해 디플레로 빠져들어

2017.02.27(Mon) 17:25:32

[비즈한국] 지난 시간까지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1990년대 일본경제가 무너지고 장기불황을 겪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버블 형성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버블의 형성보다 이후의 대책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 사고에 이를 비유해 보자면, 자동차 사고가 안 나게 미리 안전 운전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러나 운 나쁘게 사고가 났다면 재빨리 대피한 뒤 경찰이나 보험회사에 신고하고,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비상등을 켜고 삼각대를 세우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일본은 교통사고 신고도 안하고 부상자를 병원에 수송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하다 추가적인 교통사고를 경험한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경제를 덮친 ‘안전자산의 저주’

 

1990년대 중반 일본경제를 덮친 ‘사고’는 바로 ‘안전자산의 저주’였다. 여기서 안전자산이란 경제가 어려워지고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이른바 ‘위험자산’의 가격이 급락할 것 같은 상황이 될 때 선호되는 자산이다. 다시 말해, 2008년처럼 세계경제가 불황에 처할 때 가격이 상승하는 금이나 은이 곧 안전자산이라 할 수 있다. 

 

세계경제가 어려워지면 금이나 은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져 가격이 오른다. 사진=비즈한국DB


아래 그래프의 붉은 선은 미국 BB등급 회사채의 가산금리, 파란 선은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을 보여준다. 회사채 가산금리가 상승할 때마다 달러에 대한 엔화환율이 급락(엔고)하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0년 정보통신 거품 붕괴,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이다. 금융시장이 붕괴될 위험에 처할 때마다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거의 30% 이상 떨어지며, 이는 다시 일본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참고로 BB등급 회사채란, 무디스나 S&P 같은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들이 ‘투자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평가한 기업들이 발생한 회사채를 의미한다. 그리고 가산금리란 같은 만기를 가진 국채와의 금리차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BB등급 회사채 금리가 8%인데 국채금리가 3%라면 이 회사채의 가산금리는 5%포인트가 될 것이다. ​

 

사람들은 왜 이렇게 위험한 채권에 투자하는 걸까?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투기등급 회사채를 다른 말로 고수익 채권(high yield bond)라고 부르는 이유에서 드러나듯, 8% 혹은 9%에 이르는 높은 이자율은 투자자들을 유혹한다. 그런데 이 고수익 채권에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경기 침체에 약하다는 것이다. ​

 

미국 BB등급 회사채 가산금리와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 추이. 음영으로 표시된 부분은 경기침체 국면을 나타낸다. 출처: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준

 

신용평가사들이 ‘투자부적격’이라는 딱지를 붙였다는 것은 이 회사들의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을 시사하며, 이 회사들은 조금만 경기가 나빠져도 쉽게 쓰러질 팔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기가 조금만 나빠지는 징후가 보여도 고수익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일거에 이 채권을 시장에 던지게 된다. 사람들이 갑자기 채권을 매도하면, 이 채권의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시장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채권가격이 하락할 때 시장금리가 상승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도 이 채권을 가지려 하지 않으니,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 팔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황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미국 BB등급 회사채 금리는 급등하며, 동일 만기 국채금리와의 ‘가산금리’도 벌어질 수밖에 없다. ​

 

불황에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화제를 돌려보자. 회사채 가산금리가 급등하는 등 경기가 나빠질 때 엔고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일본이 보유한 해외 순자산이 너무 많다.* 

 

일본 해외 순자산 추이. 해외 순자산이란, 일본 정부와 금융기관 그리고 기업과 가계가 보유한 해외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을 말한다. 출처: 세계은행


최근 미국 국채를 보유한 세계 1위 국가에 등극한 것처럼, 일본사람들은 해외 자산을 123조엔(1달러에 대해 119엔으로 교환된다고 가정하면, 1조 189억 달러)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불황’으로 인해 투자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질 때마다 일본으로 투자자금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엔화의 강세(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 하락)가 벌어지게 된다. ​

 

또 다른 원인은 바로 장기간에 걸친 물가 안정에 있다. 일본은 197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는 내내 물가가 안정된 나라였다. 문제는 이렇게 물가가 안정되면, 이 나라의 통화가 일종의 ‘안전자산’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물가가 100% 올랐을 때, 일본의 물가가 50%밖에 안 올랐다면, 그리고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고정되어 있다면? 일본의 경쟁력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경쟁력이 상승한 나라는 시장 점유율도 높아질 것이며 경상수지도 대규모 흑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투자자들은 돈도 많고 화폐가치도 안정된 엔화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계속 하락하게 된다. 


일본이 보유한 해외 순자산이 많고 물가도 안정되면서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부각돼 계속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안전자산으로의 엔, 경기회복을 가로막다!

 

특히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독일 마르크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이후, 물가가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통화는 일본과 스위스 등 몇 나라 남지 않아 ‘안전자산’으로서의 일본 엔화의 위상은 2012년까지 나날이 높아졌다. 

 

문제는 이런 안전자산의 위상이 일본 경제에 아주 큰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환율이 상승해서, 기업들의 경쟁력도 개선되고 더 나아가 수입물가도 상승하는 게 경제에 좋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일본 엔화의 지위가 점점 올라가면서, 정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시기가 2000년이었다. 정보통신 거품이 붕괴되며 세계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145에서 105까지 떨어지자 일본경제는 1990년대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경험하고 말았다. 엔화강세가 불러온 수출경쟁력의 부진 및 수입물가 하락은 강력한 디플레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달러에 대한 엔화환율과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 출처: 세인트루이스 연준​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1990년 이후 일본이 장기불황에 접어든 이유는 세 가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자산시장에 형성된 거대한 ‘거품’이었고, 두 번째 원인은 일본은행의 잘못된 정책 대응, 마지막으로는 일본 엔화가 ‘안전자산’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일본은 이제 영영 회복될 수 없을까?

 

*조선비즈(2015.4.16), “일본, 중국 제치고 미국 채권 최다 보유국 등극”.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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