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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뮤지컬 ‘해밀턴’의 흥행이 특별한 이유

가장 오래된 이야기, 가장 최신의 음악은 미국의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상징

2017.02.13(Mon) 11:06:03

과거 미국 뮤지컬들은 미국적인 색채가 짙었습니다. 클래시컬한 편곡. 대책 없이 밝고 긍정적인 메시지. 앵글로 색슨적인 가치관 등이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오클라호마’나 ‘뮤직맨’ 등 과거 뮤지컬이 그렇지요.

하지만 뮤지컬 또한 바뀌었습니다. 영화 뮤지컬은 ‘싱잉 인 더 레인’ 등의 전성기가 있었습니다(최초의 유성영화 또한 뮤지컬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영화가 유행하면서 뮤지컬은 암흑기를 겪습니다. ‘물랑루즈’와 ‘시카고’가 뮤지컬 영화를 부활시키기 전까지는 말이죠.​

 

현재 브로드웨이를 휩쓸고 있는 뮤지컬 ‘해밀턴’

 

 

공연 뮤지컬은 꾸준히 강세였지만 미국 뮤지컬의 힘은 약했습니다. 영국의 뮤지컬 거장 두 명이 오랜 기간 뮤지컬을 이끌었지요.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검증된 과거 명작에서 스토리를 가져옵니다. 대사보다는 장중하고 어두운 노래 위주로 진행합니다. 특유의 뮤지컬 스타일로 이들은 세계를 평정합니다. ‘오페라의 유령’, ‘에비타’,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 수 많은 유명 뮤지컬이 이들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21세기에 이르러, 드디어 미국인의 뮤지컬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시작은 ‘위키드’였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리메이크한 소설이 원작인 이 뮤지컬은 영화 사운드트랙 같은 화사한 음악과 하늘을 나는 마녀의 강렬한 이미지로 뮤지컬을 평정했지요.

그리고 ‘해밀턴’이 등장합니다. 원작이 없는 오리지날 뮤지컬입니다. 음악 또한 기존의 클래시컬한 음악이 아닌 힙합입니다. 미국 건국신화를 다루지만, 대부분 주연 배우가 유색인종입니다. 이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를 제패한 것은 물론, 공연의 아카데미상인 토니상까지 휩쓸며 뮤지컬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이 뮤지컬을 만든 린 미뉴엘 미란다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입니다. 최근 개봉한 디즈니 영화 ‘모아나’와 지난해 개봉한​ ‘​스타워즈’​ 신작에서 작곡을 담당했지요. 그의 출세작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뮤지컬 ‘해밀턴’입니다.

미란다는 우연히 미국 건국 공신인 ‘해밀턴’의 전기를 읽게 됩니다. 지폐에 나올 정도의 유명인이자, 최초의 재무장관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프랭클린 등에 비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미란다는 자수성가를 이루다 자신의 오만함과 과격함으로 인해 무너졌던 해밀턴의 드라마틱한 인생에 푹 빠졌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그의 인생을 뮤지컬로 제작했으리라는 생각에 뮤지컬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해밀턴의 생을 뮤지컬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란다는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 ‘해밀턴’의 초상화. 사진=위키피디아

 

뮤지컬을 준비 중이던 미란다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가 제작하고 있는 뮤지컬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백악관이 미란다를 ‘​시, 음악과 연설의 밤(Evening of Poetry, Music & the Spoken Word)’​이라는 연례 문화행사에 초대한 겁니다. 백악관이 흥미를 가진 이유가 있었습니다. 미국 건국신화를 다룬 이 뮤지컬이 ‘힙합’ 뮤지컬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미란다는 데뷔작 ‘인더하이츠’부터 라틴음악, 힙합 등 뮤지컬에서 잘 사용하지 않던 음악을 활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성악, 클래식, 록이 떠오르는 뮤지컬의 분위기를 일신했습니다. 

그는 왜 건국신화를 다룬 뮤지컬에 힙합을 전면적으로 활용한걸까요?

 

뮤지컬 ‘해밀턴’ 성공 후 나온 ‘더 해밀턴 믹스테이프(The Hamilton Mixtape)’. 뮤지컬 ‘해밀턴’의 노래를 힙합, 알앤비 뮤지션이 재해석했다. 사진=‘The Hamilton Mixtape’  앨범 표지

 

 

해밀턴​에게서 힙합 정신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해밀턴은 카리브해의 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사실상 고아로 자랐습니다. 전쟁통에 실력을 발휘해 미국 정부 이인자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오만함과 (사실로 밝혀진) 불륜 의혹, 주변의 질시 등에 휩싸여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미란다는 해밀턴에게서 힙합 영웅 투팍을 봤습니다. 


역사에는 종종 이런 영웅이 등장합니다. 순수하고 강인하지만, 오만함이란 약점에 의해 무너지는 영웅은 그리스 비극의 단골 소재기도 하지요. 그런 영웅을, 오만함, 자수성가, 자신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상징하는 힙합을 통해 표현하겠다는 시도가 새로웠습니다. 낡고, 재미없어 보이는 역사가 시대성을 얻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뮤지컬 제작자이자 주연, 미란다의 백악관 공연 영상.

 

미란다는 해밀턴을 쏜 라이벌인 ‘버’의 시점에서 쓴 랩을 ‘시, 음악과 연설의 밤'에서 공연했습니다. 자신이 해밀턴을 힙합음악으로 표현한 이유에 대한 담백한 설명과 함께 말이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원래 미란다는​ ‘해밀턴’​을 ‘믹스테이프’라는 무료 테이프 형식으로 발표하려 했었습니다. 초기 힙합 뮤지션들은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무료테이프를 배포하며 홍보했는데요. 이런 ‘힙합’의 형식을 빌려 미란다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상품성이 있는지 확인해보려 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영국 뮤지컬의 거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팀라이스가 ‘체스’로 시도해본 전통적인 뮤지컬 홍보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악관 공연으로 탄력을 받은 미란다는 믹스테이프를 건너뛰고 곧장 대본 검토와 워크샵을 거쳐 ‘해밀턴’을 공연에 올립니다.

 

뮤지컬 ‘해밀턴’의 오프라인 브로드웨이 공연 포스터.

 

‘해밀턴’은 기록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초기 공연 3개월 동안 전석이 매진됐습니다. 성공에 힘입어 3개월 만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합니다. 브로드웨이에서도 ‘해밀턴’은 승승장구했습니다. 1주 기준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8주 만에 330만 달러를 벌었고, 단 8번의 공연으로 300만 달러가 넘는 티켓 매출을 냈습니다. ‘아메리칸 사이코’, 그리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스쿨 오브 락’ 등 신작 뮤지컬을 모두 실패로 몰아넣을 정도의 거대한 성공입니다.

‘해밀턴’​은 비평가에게도 만장 일치에 지지를 얻었습니다. 토니상은 연극, 공연계의 그래미상,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데요. 지난해에는 토니상의 시작과 끝을 뮤지컬 ‘해밀턴’ 출연진이 장식했습니다. 그에 걸맞게 시상 성적도 압도적이였습니다. 최우수작품상-뮤지컬, 남우주연상-뮤지컬, 베스트스코어, 남녀조연상-뮤지컬, 감독상-뮤지컬, 각본상-뮤지컬, 베스트연출상, 베스트오케스트라, 베스트의상-뮤지컬, 베스트조명-뮤지컬을 얻었습니다. 사실상 뮤지컬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받았다고 할 정도지요.

 

 

‘토니상’ 수상식을 장식한 뮤지컬​ ‘해밀턴’​ 공연.

 

무엇이 ‘해밀턴’​을 특별하게 만든 걸까요? 우선 홍보를 들 수 있겠습니다. 미란다가 백악관에서 공연했을 때 해밀턴은 딱 한 곡 만 만들어진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하나인 오바마가 있는 백악관에서 공연했으니 그 효과는 굉장했겠지요. 덕분에​ ‘해밀턴’​은 빠르게 공연으로 현실화됩니다.

 

공연이 시작한 뒤에도​ ‘해밀턴’​은 뛰어난 마케팅을 보여줬습니다. 바로 ‘​Ham4ham(햄포햄)’​이라고 불리는 티켓 추첨행사입니다. 당일 추첨으로 무료 티켓을 뿌리는 이벤트인데요, 무료 티켓 이벤트는 대부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합니다.​ ‘해밀턴’​은 여기에 하나를 더했습니다. 추첨 행사 때 하는 짧은 공연입니다.​ 출연진은 물론, 스태프, 심지어 다른 뮤지컬 배우들까지 참여해서 즉흥적으로 날마다 다른 공연을 합니다. 이 공연은 뉴욕시에서 엄청난 화제를 부르며 뮤지컬 홍보에 기여했습니다.

 

홍보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시작을 다룹니다. 그것도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사람을 다루었지요. 이 자체도 역사성입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닙니다.

 

핵심은 현실과 과거의 만남입니다. 건국 이야기를  현재 젊은이들이 가장 즐기는 ​‘힙합’으로 표현하니 더 큰 역사성을 띄게 됩니다.  미국의 시작과 현재의 만남입니다. 유색인종 이민자들의 음악, 가난한 젊은이들의 음악인 힙합으로 미국의 건국 신화를 다룬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생기는 거지요. ‘너희들이 바로 미국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건국의 영웅들 또한 유색인종 배우가 연기합니다. 그들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뮤지컬 ‘해밀턴’은 형식을 통해 ‘지금의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뮤지컬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해밀턴’​ 캐스트와,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만남. 사진=위키피디아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지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선거기간에 이민자와 여성, 기타 소수자들을 모욕하면서 말이죠. 트럼프 정권의 부통령 펜스는​ ‘해밀턴’을 보러 갔습니다. 출연진과 관객은 그에게 야유했습니다. 트럼프 정권을 상징하는 주장은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다. 백인 남자들의 나라다’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두 주장의 대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시작’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가 결정되지요. 힙합을 통해, 소수자를 건국신화에 참여시킨, 뮤지컬​ ‘해밀턴’​이였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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