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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염병’을 박멸하려면

장티푸스의 다른 이름 ‘염병’이 최순실 때문에 언론을 장악했다

2017.02.01(Wed) 16:50:30

별것도 아닌 놈이다. 일단 다리가 여섯 개인 것으로 보아 곤충인 것은 맞다. 그런데 곤충의 가장 큰 특징은 ‘머리-가슴-배’라는 몸구조인데 딱히 어디가 가슴이라고 해야 할지 모호할 정도로 가슴이 불분명하다. 날개는 없다. 납작하고 아주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숨을 쉬는 기문은 배 쪽에 있지 않고 등 쪽에 있다. 입은 찌르기 좋게 생겼다. 모양만 딱 봐도 어딘가에 딱 달라붙어서 남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생물이다. 그렇다. 이름만은 왠지 숭고해 보이는 그놈. 바로 ‘이’다.

 

이는 피만 빨아먹는 놈이다. 그 작은 놈이 빨아먹어야 얼마나 빨아먹겠는가? 사실 모든 기생충이 다 그렇다. 회충 한 마리가 우리 장 속에서 먹어야 얼마나 먹겠는가? 기껏해야 하루에 밥알 하나 정도 먹으면 그만이다. 파리가 먹어야 얼마나 먹겠다고 밥 먹을 때 파리를 쫓겠는가? 문제는 빨아먹는 게 아니라 남기는 것이다. 이와 파리는 균을 남긴다.

 

이가 피를 빨아 먹고 나면 병이 생긴다. 병의 종류도 불면증을 비롯하여 아주 다양한데 가장 심각한 것은 발진티푸스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에서만 250만 명이 발진티푸스로 죽었다.

 

미군이 DDT를 살포하는 모습. 2차 대전 이후 말라리아와 티푸스를 예방한다는 이유로 DDT 사용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사진=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이에 관해서는 좋은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햇볕 좋은 일요일이면 바닥에 달력을 깔고 그 위에 날 앉히시고서는 참빗으로 내 머리를 박박 빗어 주셨다. 이와 이의 알인 서캐가 투두둑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참 좋았다.

 

발진티푸스보다 더 무서운 티푸스가 있다. 장티푸스가 바로 그것. 장 속에 이가 살 리는 없다. 똥과 오줌에 오염된 물로 옮겨지는 수인성 전염병인데 살모넬라 타이피(Salmonella typhi)가 원인균이다. 감염 후 1~2주가 지나서야 고열과 복통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어린아이는 설사를 하는데 성인에게는 변비가 생긴다.

 

우리 몸에는 면역을 담당하는 대식세포(大食細胞)가 있다. 장티푸스균을 발견한 대식세포는 장티푸스균을 잡아먹는다. 그런데 장티푸스균은 대식세포 안에서도 산다. 그리고 대식세포와 함께 혈관을 여행하면서 온몸으로 퍼진다. 감염 후 3주가 되면 장에 구멍이 뚫리고 출혈이 일어난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한 달이 되도록 관리가 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치사율이 25퍼센트에 이른다.

 

장티푸스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나온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크게 유행했다. 1524년(중종 19년)에도 대유행이 있었다. 당시 궁궐 의녀였던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바로 그) 장금이도 궁궐에서 장티푸스 때문에 애 좀 썼을 것이다. 당시에는 ‘염병’이라고 불렀다. 전염병에서 앞에 붙은 ‘전’만 뗀 말이다.

 

다행히도 발진티푸스와 달리 장티푸스에는 백신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린 시절에 이미 백신을 맞았다. 그런데 소아마비 백신처럼 한 번 맞고 끝나는 게 아니다. 5년마다 재접종을 받아야 한다. “나는 재접종 받지 않고도 잘 살고 있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접종 받은 덕분에 형성된 안전구역에 비겁하게 무임승차 하신 것이다. 재접종 받지 않은 분들이 많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매년 200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한다. 2001년에는 무려 401명이 장티푸스를 앓았다.

 

장티푸스, 그러니까 염병 예방주사는 5월에 맞는다. 여름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겨울인 요즘 염병이 모든 언론을 장악했다. 지난 1월 26일 오전 11시 16분 염병이라는 말이 전국으로 생방송되었기 때문이다. 

 

특검 출석 요구에 여섯 차례나 응하지 않다가 체포영장이 집행된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1월 25일 특검 사무실에 출두하며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특검 사무실 앞에서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 씨가 외쳤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어린애와 손자까지 멸망시키겠다고. 그리고 박 대통령의 공동책임을 밝히라고 강요합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가 재판정에 선 친구를 보는 듯했다. 그 당당함이라니…. 친구의 외침에는 가슴이 떨렸지만, 최순실 씨의 외침에는 치가 떨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현장에 있던 청소 노동자가 맞서서 외치셨다. “염병하네(x3).”

 

 

티푸스는 막기 어려운 병이다. 발진티푸스를 막으려면 참빗질을 어지간히 해서는 안 된다. 단 한 마리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빗어야 한다. 어중간하게 하다 말면 이는 다시 머릿속에 금방 창궐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해서 이를 박멸해야 한다. 말 그대로 “이 잡듯이 뒤져야 한다.”

 

염병을 막으려면 온 국민이 5년에 한 번은 꼭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매년 5월쯤 보건소에 가면 공짜로 접종받을 수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염병도 마찬가지다. 원인균을 박멸해야 한다. 잊지 마시라. 5년에 한 번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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