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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일기] 설날 부엌에서 내 미래를 보았다

남자는 거실, 여자는 부엌…불평등한 명절에 분노 게이지 급상승

2017.02.01(Wed) 13:48:47

시골 할머니 댁을 방문한 기쁨도 잠시, 설 명절은 곧 ‘노동절’​로 바뀌었다. 사진=픽사베이(CC0)


설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시골 할머니 댁에 갔다. 두 밤을 자고 셋째 날 집으로 올라올 계획이었다. 할머니 댁은 자동차로 네다섯 시간 정도 가야 하는 거리다. 답답해서 미칠 상태에 대한 대비를 확실히 하고 갔다. 가는 내내 지루함을 풀어줄 스마트폰과 이어폰은 필수. 집 근처 산책을 가도 꼭 챙기는 것이니 별다를 것은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간식거리였다. 곶감, 과일, 과자, 커피, 음료수, 물 등 운전하는 아빠만큼이나 옆과 뒤에서 지겨울 우리에게 당을 보충해 줄 소중한 것들이었다. 중간 중간 휴게소에 들러서 핫도그나 떡볶이 등을 사먹을 테니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요령이다. 길고 긴 귀성길, 고속도로 휴게소만큼 반가운 것이 없지.

 

다행히 고속도로는 예상만큼 막히지 않았고 우리는 수월하게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내려올 때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사과, 배, 쌀 등을 내리고, 짐과 함께 끙끙거리며 올라갔다. 너무 멀어 1년에 두 번 정도만 뵙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괜스레 찡했다. 

 

평소 별로 뵙지 못한 터라 엄청난 유대관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손녀라는 이유로 사랑스럽게 쳐다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쇠한 얼굴과 몸은 예기치 않은 서글픔을 쥐어주곤 한다. 나도 모르게 애교 많은 손녀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를 안았다. 평소에 안부 전화도 안 드리면서 막상 보면 울컥한 건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본 사촌오빠와 얼마 전 결혼한 새언니도 반가웠다. 

 

반가움도 잠시, 본격적인 ‘노동절’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인데, ‘새언니’라는 사람이 새 식구로 들어오니 뭔가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그건 바로 ‘여자들과 남자들의 분리’ 였다. 

 

아직 한 학기가 남아 진정한 취준생의 자격을 획득하지 못했기에 예상은 했지만, 아무도 내게 취업을 언제 할 것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 점은 다행이었으나, 나는 아찔하게도 나의 미래를 보았다. 여자로서 명절을 보낸다는 것. 내가 결혼을 하고 시집에 명절인사(인사만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니지만)를 가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다. 

 

글쎄, 시부모님이 완전 쿨한 분들이 아니라면, 혹은 내가 결혼하는 시점에 결혼과 가정에 대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엄마, 새언니가 했던 일들을 나도 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생각해 보았다.

 

엄마와 새언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사촌오빠, 나 그리고 곧 도착할 사촌언니네 세 가족을 먹일 양의 음식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돕는답시고 얼쩡거리자 엄마는 정신없다고 이따가 설거지나 하라고 나를 쫓아냈다. 아마도 새언니에게 어떻게 노동을 대물림 받는지(?) 전수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이상은


그렇게 엄마와 새언니는 네 시간 넘게 ​음식을 ​했다. 잡채, 불고기, 소고기 뭇국, 장조림과 갖가지 나물 무침이 척척 나왔다. 엄마가 아직 낫지 않은 감기 때문에 고생하는 걸 알기에 나는 앉아있을 수도 없어 계속 주위를 맴돌았으나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 중이었고, 사촌오빠는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남자들은 밥을 먹으라는 말이 있기 전까지는 밥상에 수저도 놓지 않았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았다. 우리 아빠는 장시간 운전하느라 피곤했을 테니 조수석에 앉았던 엄마가, 혹은 요리를 잘하는 엄마가 솜씨를 발휘한 거니까 어느 정도 분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촌오빠는 온 지 꽤 되어 이미 많이 휴식을 취했고, 새언니는 결혼 후 처음 맞는 명절인데다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아닌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댁에 와서 최선을 다해 적응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언니는 생리통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진통제를 먹고 이를 악물면서 엄마 옆에서 요리를 하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옆에서 도와주거나 긴장을 풀어주지는 못할망정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꿀잠을 자다니. 내 남편도 아니지만 정말 얄미웠다. 괜히 더 마음이 쓰여 새언니한테 말이라도 걸면 고마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뭐 하나 실수할까 엄마에게 묻고 또 묻는 모습을 보니 안스럽다가도 저게 내 미래 모습이구나 싶어서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나의 내적 분노는 밥을 먹을 때 폭발했다. 할머니 댁에는 4인용 식탁 하나 밖에 없어서 다섯 명만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었다. 추가로 작은 상을 하나 펴는데 아무리 좌식에 익숙한 한국인이어도 의자에 앉아 먹는 것이 쪼그려 앉아 먹는 것보다 편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제일 많이 힘든 일을 한 우리 엄마를 식탁에 앉히고 싶었으나, 아주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사촌오빠가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엄마, 새언니, 나는 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어야 했다. ​왜 ​네 시간 넘게 서서 저녁 준비를 한 여자들은 바닥에 앉고 지금까지 내내 쉰 남자들은 편한 식탁에 앉아야 하는 걸까? 예전부터 할머니 댁에 가면 남자들은 큰 식탁에서, 여자들은 작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어렸을 때는 아무 생각 없었던 것들이 이제야 하나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가슴 아픈 건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전혀 불쾌한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신 고개를 들어 자신이 한 음식이 입에 맞는지 확인할 뿐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렇다 치고 아빠, 그리고 사촌오빠의 배려가 없었다는 게 너무 싫었다. 

 

사진=이상은


엄마는 계속 약 먹고 골골댔는데. 차를 타고 오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니 다음 식사 때는 꼭 편히 앉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흘러갔기 때문에. 이게 전통이고, 명절인가 생각했다. 

 

늙으신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기도 했고, 평소에 아빠가 가부장적인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내가 지금 화를 내도 되는 상황인지 잘 가늠이 안됐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다. 나도 결혼을 하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음식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아주 시골에 사시는, 아주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니까 그렇겠지. 내가 결혼할 즈음, 시댁에서는 그러지 않을 거야. 그렇게 위안을 삼았지만, 문제가 밥 먹는 식탁 하나뿐 일까? 아주 당연하다는 듯 여자가 요리하고 남자는 앉아있는 것이 전통이고, 절차인 것처럼 나를 옥죄지는 않을까? 

 

가끔 장난으로 엄마에게 ‘나 시집살이 당하면 어쩌지?’​ 하면 엄마가 ‘​아유 요즘 누가 시집살이를 하니?’​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정말 사소한 작은 부분까지도 과연 ‘시집살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 취업도 안 했고,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은 부부관계’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 고민이 나의 것이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내가 함께 살 사람과 같이 해야 할 고민인데, 그 사람도 나처럼 한 번쯤 고민해본 이였으면 좋겠다. ‘설’이라는 명절이, 어쩌면 나에게는 취업보다 더 중요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필자는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 거둬갈 기업 관계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이상은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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