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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전직 아이돌 현직 뮤지션 저스틴 비버

‘백인 소년’ 버전 어셔에서 어셔를 넘다

2017.01.25(Wed) 23:34:56

올해 초에 발표될 그래미상 수상 후보자가 발표되었습니다. 특히 저스틴 비버의 약진이 눈에 띕니다. ‘올해의 팝 솔로 노래’와 ‘올해의 팝 솔로 앨범’은 물론 최고의 영광인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에 모두 후보로 올랐습니다.

 

진중한 모습의 새로운 저스틴 비버를 상징하는 포크 곡 ‘Love Yourself’. 에드 시런과 함께 만들어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저스틴 비버의 ‘Love Yourself’


한때 모두가 비버를 미워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돌로서 거대한 성공을 이룬 시절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여자같이 생긴 백인 남자아이가 흑인 알앤비를 합니다. 게다가 그의 고객은 흑인음악을 좋아하지만 흑인의 음악을 듣는 걸 반대하는 엄마를 둔 백인 소녀들이었습니다. 저스틴 비버는 ‘엄마가 안심하고 들려줄 수 있는 검열판 힙합 알앤비 아이돌’로 크게 성공합니다.

 

재미있게도 그의 멘토는 최고의 흑인 스타 어셔였습니다. 그는 마이클 잭슨 이후 대중음악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흑인 가수인데요. 2000년대에 어셔는 힙합과 알앤비를 기반으로 팝음악을 점령합니다. 하지만 그는 흑인문화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백인들에게 자신의 음악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침 캐나다 백인 소년 저스틴 비버를 비버의 매니저 스쿠터 브라운이 소개합니다. 비버는 당시 유투브에서 어셔보다 부드러운 알앤비 음악을 하는 네요(Ne-yo)의 음악을 불러 명성을 쌓고 있었는데요, 어셔는 비버에게서 자신이 얻지 못하는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어셔는 스쿠터 브라운과 함께 5 대 5의 지분을 가지고 비버를 위한 회사를 차립니다. 그렇게 12세의 캐나다 가수 지망생 비버는 어셔의 후계자가 됩니다.

 

초창기 비버를 상징하는 히트곡 ‘Baby’. 어셔에 히트곡 스타일을 답습하면서도 엄마들에 취향에 맞춘 검열을 거친 곡이다.

 

꾸준히 활동하던 저스틴 비버는 2010년, 그의 초창기 최고 히트곡 ‘Baby’를 발표하며 성공합니다. 빌보드 5위까지 오른 이 곡은 그야말로 아이돌 음악에 대명사가 되지요. 이 곡은 한마디로 ‘백인에게 불편한 흑인음악적인 부분을 거세한 어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힙합을 가미한 알앤비 음악. 남부 힙합 랩버 루다크리스의 피쳐링 등 어셔 스타일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어셔와는 달리 성적인 부분은 사라진, 순수한 첫사랑의 분위기의 노래이지요. 가수도 흑인 청년 어셔가 아닌 백인 미소년 비버고요. 그야말로 ‘삭제판, 청소년판’ 어셔였던 셈입니다.

 

‘백인 소년’ 버젼의 어셔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사진=비버의 1집


저스틴 비버는 청소년 어셔 전략으로 승승장구 합니다. 모두의 인기를 얻지는 못합니다. 대신 소녀 팬들에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냅니다. 이를 통해, 음원 순위로 최고가 되기보다는 굿즈(상품)와 투어를 통한 수익으로 최대치의 수익을 뽑아냅니다. 한국의 보이그룹과 비슷한 전략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저스틴 비버는 한국처럼 기획사에 철저한 콘트롤을 받지 않았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자유분방했던 거지요.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지나치게 일찍 스타가 된 비버는 수많은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기자에게 욕설을 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모욕하기도 합니다. 안네 프랑크의 집에 가서 ‘그녀가 내 팬이면 좋았을 텐데’라는 어이없는 내용을 방명록에 쓰기도 하지요. 

 

심지어 브라질에서는 성매매 업소를 출입하는 사진이 공개되기까지 했습니다. 그 외에도 비버는 흑인 비하 발언, 아시안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 비하 발언, 교통 사고 혐의, 감기약을 마약으로 남용한 혐의 등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고를 쳤습니다.

 

비버는 흑인보다 ‘위험하지 않아서’ 성공했던 백인 아이돌 가수였습니다. 이미지가 망가지자 인기도 타격이 옵니다. 비버는 배우 셀레나 고메즈와 공개 연애를 했는데요, 이 관계가 공개된 과정에서,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구설수에 오르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성적인 이슈를 많이 몰고 다니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안전한 아이돌 가수’는 사라진 셈이죠.

 

무엇보다 논란을 거치며 절대 다수의 대중은 비버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소녀 팬의 지지를 한몸에 받던 아이돌 스타가 온 국민이 미워하는 사람이 됩니다. 한국으로 치면 ‘유승준’이나 ‘MC 몽’ 등의 가수로 전락한 셈입니다. 그렇게 저스틴 비버는 서서히 무너지는 듯 보였습니다.

 

기회가 찾아옵니다. 2015년에 미국의 EDM 음악가인 디플로우와 스킬렉스는 듀오로  ‘Skrillex and Diplo Present Jack Ü’라는 콜라보 앨범을 냈습니다. 이 앨범에서 디플로우와 스킬렉스는 외로움에 슬퍼하는 어두운 EDM 곡 ‘Where Are Ü Now’를 선보였는데요. 디플로우는 이 곡에 저스틴 비버를 기용하면 재미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비버를 다시금 주목받게 만든 히트곡  ‘Where Are Ü Now’

 

저스틴 비버는 모두가 아는 유명인입니다. 심지어 대다수가 싫어하지요. 그는 모두가 아는 셀레나 고메즈와의 실패한 연애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기를 잃고 외톨이가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디플로우와 스킬렉스는 비버가 자신의 우울한 일렉트로닉 음악에 노래를 불러주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밝고 강렬하기보다는, 느리고 섬세하며 우울한 새로운 느낌의 EDM 곡이었습니다.

 

비버 또한 절치부심하여 훌륭하게 곡을 소화했습니다. 우선 미숙하게 흑인 가수를 흉내내던 소년의 창법이 아닌, 자신만의 절제된 팔세토를 보여줬지요. 디플로우는 그의 보컬이 마음에 들어 비버의 애드립을 음성변조해 EDM 반주에 일부에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반주에서 반복되는 하이톤에 돌고래같은 소리가 비버의 보컬을 변주해서 만든 부분입니다. 비버의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함으로써 한층 따뜻한 느낌을 강조했습니다.

 

비버는 또한 직접 가사와 작곡에 참여했습니다.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떠나간 이전 애인을 위해 기도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곡에 적극적으로 반영했지요. 모두가 알고 있는 자신의 유명세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오히려 드러내 작품으로 활용한 겁니다.

 

‘Where Are Ü Now’는 비버가 참여한 곡 중 최초로 빌보드 1위를 합니다. 비버 또한 다시금 스타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캐릭터와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노래한 비버를 ‘뮤지션’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얕보고 놀려도 되는 아이돌 가수가 아닌 어른으로 인정받은 거지요.

 

저스틴 비버를 뮤지션으로 만들어준 앨범 ‘Purpose’


활로를 찾은 비버는 자신의 앨범에도 ‘Where Are Ü Now’에서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속죄하고, (모두가 아는) 옛 애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활용했지요. 음악도 마찬가지로 음울한 EDM에 팔세토 알앤비 보컬을 결합한 ‘Where Are Ü Now’를 그대로 확장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비버는 아델과 함께 팝음악을 양분하며 최고의 아티스트로 발돋움했습니다. 그래미는 이미 얻은 성공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뿐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곡이 시대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겁니다. 훌륭한 음악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시대성을 갖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컨데 비틀즈의 음악은 훌륭하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도 수많은 장르를 탄생시킨 음악이기도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도, 마돈나도, 프린스도 마찬가지지요. 모든 거장들은 시대의 흐름을 한번쯤 바꿔본 이들입니다.

 

Where Are Ü Now도 시대를 바꿨습니다. 강렬한 EDM이 아닌 어둡고 섬세한 EDM으로 시대가 바뀝니다. 여기에 북유럽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트로피컬 사운드의 적극적인 활용도 빼놓을 수 없지요. 마지막으로 이 모든 흐름에 흑인음악 기본의 섬세한 알앤비 보컬이 추가됩니다.

 

 

저스틴 비버의 새로운 스타일을 잘 보여준 노래 ‘What Do You Mean?’

 

흑인음악과 EDM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을 합친 이 방식은 저스틴 비버 이후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됩니다. 영국에서는 오랜기간 정체되어 있던 크레이그 데이빗이 저스틴 비버를 답습한 앨범으로 다시금 크게 성공했지요. 심지어 한국도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등의 곡이 저스틴 비버의 전략을 따라간 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실 팝 음악은 꽤나 오랜기간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아델이나 샘 스미스처럼 복고로 가는게 유행이였다는 건 그만큼 새로운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스틴 비버만 어셔의 아류가 아니였습니다. 대부분의 가수들이 힙합과 알앤비를 결합한 어셔에 머물러 있었지요. 지난 글에 소개했던 PBR&B라는 흐름이 있었습니다만 이 흐름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요.

 

여기서 Where Are Ü Now가 해답을 들고 나옵니다. 어둡고 음울한 EDM과 트로피컬 사운드, 그리고 인디 알앤비의 조합입니다. 어셔와 다른 새로운 음악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자 비로소 비버는 어셔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어셔의 인장을 지우자 진짜 어셔에 후계자로 인정받게 된 거지요.

 

후계자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선임을 뛰어 넘어야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전임자에 그림자를 벗어나야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요? 어셔를 뛰어넘음으로써 진짜 어셔의 후계자가 된 전직 아이돌 현직 뮤지션. 저스틴 비버였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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