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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항생제 내성균을 만들지 않으려면

내성은 약을 오래 먹어서가 아니라 근절되기 전에 투약을 중단해서 생기는 것

2017.01.18(Wed) 09:32:21

약국에서 조제한 약봉지에서 약을 골라 먹고 나머지는 버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가장 많이 골라내는 약은 위장약과 소염진통제. 위장약은 증상과 상관없이 약을 먹을 때 위장에 부담이 되지 말라고 함께 처방된다. 위장약을 골라내는 것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소염진통제는 왜 버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원인과 상관없이 염증이 생기면 아프고 괴롭다. 그래서 염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약을 먹는 것 아닌가?

 

항생제를 많이 먹으면 내성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항생제도 만만치 않게 버려진다. 항생제는 원인균을 죽이기 위한 공격적인 약이다. 비싼 약이다. 증상을 줄이는 약도 골라 버리고 원인을 치료하는 약도 골라 버리려면 왜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조제하는가! 자기 맘대로 할 거면 이 세상에 전문가가 왜 필요한가 말이다.

 

약을 골라서 버리는 사람들은 주로 엄마들이다. 엄마들도 항생제가 비싸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도 항생제를 골라서 버리는 것은 항생제는 되도록이면 먹지 않는 게 좋다고 여기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주사 한 방 놔주세요

 

항생제라는 단어는 우리 머릿속에서 부작용, 남용, 내성 같은 단어와 자연스럽게 짝을 짓는다. 이런 연관이 생긴 데는 1970~80년대에 아이들을 키운 엄마들의 책임이 크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금세 “선생님 주사 한 방 센 걸로 놔주세요.”라고 요구했다. 그러면 의사 선생님은 커다란 유리 주사기로 내 엉덩이를 찔렀다.

 

엄마가 요구했던 ‘주사’는 ‘항생제’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 병원에 왜 갔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맞은 주사에 항생제가 들어있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감기, 독감, 콧물감기 같은 것으로 갔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 감기, 독감 따위에는 항생제 주사를 놓지 않는다고? 그렇다. 의사가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 주사를 놓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감기에 항생제 주사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항생제는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항생제가 일부 곰팡이와 원생생물을 공격할 수도 있지만 바이러스를 공격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감기, 독감, 콧물감기를 일으키는 원인은 모두 바이러스다. 따라서 감기에 걸린 아들이 빨리 낫도록 “주사 한 방 놔주세요”라고 엄마가 아무리 떼를 썼다고 해도 의사 선생님이 항생제 주사를 놔주었을 리가 없다.

 

만약에 감기를 앓고 있는 아이에게 의사가 항생제 주사를 놨다면 그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라 정말 나쁜 놈이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입했을 때 우리 몸에 공생하고 있는 박테리아 가운데 일부는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항생제는 박테리아 전사들을 공격한다. 아군의 등 뒤에 대고 총을 쏘는 격이다.

 

감기 환자에게 놓는 주사는 항생제가 아니라 바이러스제이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변종이 2만 가지도 넘는다. 따라서 감기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약은 있을 수가 없다. 이미 1950년대에 감기약 개발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감기로 병원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일까? 나는 요즘은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않지만, 독일에 살 때는 감기에 걸리면 반드시 병원에 갔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독일 의사들이 내린 처방은 이랬다. “5일 동안 침대에 머물러야 함. 직장에 나가지 말 것.” 학교와 직장을 합법적으로 쉬기 위한 처방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이다. 감기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우리 몸이 알아서 한다.

 

항생제, 처방받은 대로 끝까지 다 먹자

 

요즘 엄마들은 우리 엄마와는 정반대다. 우리 엄마가 아무 병에나 항생제 주사를 요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요즘 엄마들은 의사 선생님이 처방한 약에서 항생제롤 골라서 버린다. 왜? 항생제는 나쁜 것이니까. 항생제는 우리 몸에 사는 좋은 균을 죽이니까, 항생제를 오래 먹으면 내성이 생겨서 나중에 병에 걸렸을 때 항생제로 치료할 방법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다 보니 의사 선생님 처방 따위는 무시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투약한다. 엄마의 사랑이니까 이해해 줘야 할까? 이런 엄마는 감기에 항생제 주사 놓는 의사보다 더 나쁘다.

 

“환자들은 항생제가 내성을 키우므로 적게 먹어야 한다고 잘못 알고 있다. 이는 매스컴에서 항생제를 너무 ‘공포의 대상’으로 몰아간 탓도 있다. 내성을 걱정한다면, 균이 죽을 때까지 모두 복용해야 맞는 건데 말이다.” 이것은 약학이라고는 배워본 적도 없는 생화학과 출신인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방송에서 약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시민에게 과학적이면서 알기 쉽게 제공하고 있는 약사 정재훈 선생님 말씀이다.

 

항생제는 나쁜 게 아니다. 그리고 내성은 약을 오래 먹어서가 아니라 근절되기 전에 투약을 중단해서 생긴다. 그러니 처방받은 항생제는 끝까지 먹어야 한다.


일단 항생제는 나쁜 게 아니다. 나쁜 것이면 왜 의사 선생님들이 처방하시겠는가? 항생제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말라리아, 결핵, 폐렴, 콜레라, 이질뿐만 아니라 가벼운 피부염으로도 죽는 사람 천지일 것이다. 폐렴에 한두 번 걸려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옛날 같으면 죽을 고비를 몇 번은 넘긴 셈이다.

 

결핵 환자에게 의사 선생님이 항생제를 6개월 처방했다면 6개월을 먹어야 한다. 몇 달 되지 않았는데 다 나은 것 같아도 그것은 나은 게 아니다. 항생제 때문에 결핵균의 활성도가 일시적으로 억제되어 증상만 사라진 것이지 결핵균이 완전히 사멸된 것이 아니다. 공격이 멈추면 결핵균은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서 더 강해진다. 내성이란 약을 오래 먹어서가 아니라 근절되기 전에 투약을 중단해서 생기는 것이다.

 

매일 정신 사나운 기사가 쏟아져서 그렇지 요즘 우리 마음에는 희망이 가득하다. 작년 10월만 해도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이 움틀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는가? 우리는 지금 사회의 환부에 항생제를 투약하고 있다. 증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투약을 중단하면 금방 망한다. 뿌리를 뽑을 때까지 항생제를 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내성균이 생기지 않는다. 끝까지 악랄하게 먹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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