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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나의 쇼핑카트가 나의 ‘클라스’를 말해준다

시티즌 오블리주, 내가 ‘갓뚜기’로 갈아탄 이유

2017.01.16(Mon) 10:21:31

작년부터 오뚜기 라면으로 갈아탔다. 신라면 대신 진라면을 사고, 진짬뽕도 참깨라면도 간간히 선택한다. 사실 나는 라면을 자주 먹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식품들도 오뚜기로 갈아탔다. 어떤 것이든 간에 오뚜기에서 나오는 상품이 있다면 가급적 그걸로 산다. 비슷한 상품군 중에선 이왕이면 오뚜기를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이건 나만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꽤 봤다. 이들이 오뚜기를 선택한 이유는 맛이 아니다.

 

요즘 농심에서 오뚜기로 라면을 갈아탄 사람들이 많다. 맛 때문이 아니다.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소비하는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각자의 취향이기도 하다. 아울러 각자가 가진 가치판단 기준도 반영되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남양유업 제품을 사지 않는다. 남양유업 갑질 사태가 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 잊지 않고 있다. 피죤도, 옥시도 여전히 안 산다.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는 게 솔직히 그 브랜드의 담당자들이나 직원들에겐 살짝 미안하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든 사회적 책임을 좀 더 잘 지는 기업이 있다면 언제든 선택할 것이다. 

 

물건 자체의 질에선 변별력이 없을 정도로 상향 평준화가 되었다. 이왕이면 좀 더 좋은 기업,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게 소비자 입장이다. 그깟 소비자 한 명이 선택하는 게 무슨 영향을 주겠나 싶겠지만, 이런 소비자가 수만 명, 수십만 명이 되면 기업은 타격을 받는다. 최근 이랜드가 사과문으로 안 되니 사죄문까지 썼지만 불매운동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예상컨대 꽤 오래 계속될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진짜 사과와 사과하는 척은 구분할 줄 알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과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해야 한다.

 

고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이 돌아가신 후 현재 회장이자 장남인 함영준 회장에게 상속된 주식이 3000억 원대인데, 상속액이 30억 원 이상인 경우 상속액의 50%가 세금으로 부과되니 상속세만 1500억 원대가 된다. 하지만 인위적 절세를 시도하지 않았다. 편법을 부리지도 않았다. 세금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분할 납부가 가능해서 수년에 걸쳐 나눠낸다고 해도 매년 수백억 원은 꽤 큰 돈이다. 세법이 정한 규정대로 내는 게 당연한데, 이게 한국 사회에선 특이한 일이 되어버렸다.

 

참고로, 한국 최고 기업의 상속자가 그룹 지배권을 확보하는 데 납부한 세금은 16억 원에 불과했다. 15조 원대의 재산을 상속받고 그룹 지배권까지 확보했지만, 한국 재벌 기업만의 독특한 재벌 지배구조로 인해 상속세를 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는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상황이지만 오히려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오뚜기는 매출이 2조 원에 살짝 못 미치는 회사다. 삼성그룹의 매출은 300조 원이 넘는다.

 

부자가 천국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얘기가 틀리는 일이 점점 많이 나와야 한다. 부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인성이자 가치관 때문이다. 돈이 사람을 탐욕적이고 사악하게 만들긴 하지만, 결국 돈을 이기는 것도 사람이다.

 

시민이라면, 소비자라면 누구나 도덕적, 사회적 의무를 생각해야 한다. 라면 하나를 선택할 때도 자신의 클라스를 잊지 말자.


고 함태호 명예회장은 생전에 315억 원을 복지법인에 기부하고, 24년간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용 79억 원을 지원해 4242명에게 새 생명을 줬다. 시식사원 18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오뚜기의 3000여 명 직원은 모두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 없는 회사가 바로 오뚜기다. 이런 오뚜기를 네티즌들은 ‘갓뚜기’라 칭송하고, 지지의 의미로 라면을 농심에서 오뚜기로 갈아타고 있다. 덕분에 오뚜기의 라면업계 시장점유율은 2014년 16%대에서 2015년 18%대를 넘더니 2016년엔 20%의 벽을 넘었다. 반대로 부동의 1위 농심은 2014년 62%대에서 작년에 50%대 중반대까지 떨어졌다. 이런 추세가 이어져 두 브랜드의 점유율 격차는 더 좁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건 전적으로 농심에서 오뚜기로 갈아탄 수많은 소비자들 때문이다. 

 

소비자는 물건 사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소비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물건을 사건, 어떤 취향과 선호를 가졌건 그건 각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소비는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그런 게 어쩌면 클라스가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인데, 사실 도덕적 의무는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클라스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도덕적 의무가 클라스가 되어 그들의 신분을 만들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블리스들만이 아니라 시민이라면 누구나 도덕적, 사회적 의무를 가져야 하니까 시티즌 오블리주(Citizen Oblige) 혹은 소비자 오블리주(Consumer Oblige)가 더 절실히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게 우리의 클라스다. 라면 하나를 선택할 때도 우리의 클라스를 잊지 말자.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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