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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17 3대 트렌드#3] 반도체 전성시대

수십 년을 애태웠던 가전과 컴퓨터의 만남이 반도체 기술을 등에 업고 이제 눈앞에

2017.01.12(Thu) 16:17:41

CES는 가전 기기와 관련된 기술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행사다. 과거의 흐름을 보면 전력 효율이 높은 기기들이나 디자인 중심의 가전, 그리고 더 크고 선명한 TV 등이 중심이 됐지만 이제는 누구도 가전 그 자체에 주목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첨단 기술이 더해져서 가정에 새로운 경험을 줄 것이냐가 중심에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반도체 기술이다. 지난 몇 년간 이 전시회를 가득 채웠던 스마트TV나 사물인터넷부터 최근의 웨어러블 기기, 자율주행 자동차, 드론, 음성인식 등의 기술을 뜯어보면 기존에 있던 어떤 제품에 자그마한 컴퓨터를 덧붙이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삼성전자의 패밀리 허브 2.0. 온전한 하나의 컴퓨터를 냉장고에 넣었다. 삼성전자는 가족의 중심이 거실에서 주방으로 옮겨가는 것에 주목해 냉장고에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사진=최호섭 제공


 

# 가전과 컴퓨팅의 만남

 

사실 컴퓨터는 가전 영역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거실에, 혹은 책상 위에 있지만 가전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별도의 분야로 꼽혀 왔다. 가정에서도 결국 ‘쓰는 사람만 쓰는’ 기기로 오랫동안 머물렀고, 그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물론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동안 거실용 홈시어터 PC를 비롯해, 홈 서버, 홈 네트워크 시스템 등이 가전쇼에 얼굴을 내밀었고 시장에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은 어떨까? CES 2017에 나온 제품이나 기술들 중에 컴퓨팅 기술이 쓰이지 않은 것이 있을까? 스마트폰 케이스나 선 정리를 돕는 케이블 타이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결국 그 동안 컴퓨팅과 가전이 결합되지 못했던 이유는 형태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CES에서 지난해에 이어 냉장고에 21.5인치 디스플레이를 넣은 ‘패밀리 허브 2.0’을 발표했다. 이 냉장고에는 타이젠 운영체제가 들어갔고,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메모, 캘린더를 비롯해 음악, TV 등 콘텐츠 재생도 이뤄진다. 음성을 통해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다른 가전제품을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커다란 태블릿, 혹은 또 하나의 컴퓨터 역할을 냉장고에 접목한 것이다.

 

이 냉장고를 기술적으로 뜯어보면 기존 냉장고에 프로세서와 메모리, 그리고 디스플레이 등의 반도체가 더해진 셈이다. 이전의 커다란 데스크톱 PC를 쓰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냉장고 문의 디자인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이 있기에 OS를 설치하고, 응용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ARM 부스에 전시된 사물인터넷 기기들. 시계부터 아마존 에코, 전구, 스위치 등에 ARM 기반의 컴퓨터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서로 통신하고 제어할 수 있다. 사진=최호섭 제공


자율주행 차량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와 아우디는 CES 현장에서 손바닥만한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연을 했다. 이 컴퓨터 안에는 통합 프로세서가 들어있는데, 8코어 CPU(중앙처리장치)와 512코어의 GPU(그래픽 프로세서)가 실시간으로 도로를 학습하고, 차선이나 주변의 차량, 보행자 등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목적지까지 스스로 주행한다. 실제로 시연됐던 아우디Q7에는 이 프로세서를 두 개 넣은 PX-2 메인보드가 쓰였다. 트렁크에 덜렁 놓인 이 컴퓨터는 그 자체로 꽤 놀랍다.

 

애초 구글이 자율 주행 자동차를 실험하던 2012년만 해도 자율 주행 차량에는 서버에 들어가는 프로세서가 수십 개 필요했다. 센서를 통해 들어오는 데이터는 폭발적으로 많았고, 아차 하는 사고는 1초 안에 일어난다. 엄청나게 빠른 컴퓨터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반도체 기술의 발전은 그 컴퓨터를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로 줄였고, 전력 소비도 30W 대로 낮췄다. 그래도 안전하게 도로를 잘 달린다. 더 발전해야 할 여지는 있지만 부피가 그만큼 줄었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차량에 더 높은 성능의 컴퓨터를 실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도 통한다.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자동차용 PX-2 메인보드. 아우디와 엔비디아는 이 컴퓨터와 카메라로 자율 주행 자동차를 움직인다. 사진=최호섭 제공


 

#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근본 기술

 

결국 모든 가전의 변화는 반도체 기술로 통하게 마련이다. CES에서도 인텔과 엔비디아, 퀄컴은 전시장 초입에 큼직하게 자리를 잡고 세상의 모든 기술에 반도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반도체 회사들을 중심으로 한 파트너십도 여럿 공개됐다. 엔비디아는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의 기조연설을 통해 아우디와 파트너십을 더 다졌고, 보쉬, ZF, 바이두 등의 기업들과 손을 잡은 차량용 반도체 플랫폼을 공개했다. 인텔도 BMW와 손잡고 자율주행 차량을 위한 개방형 표준을 만들었다. 가전 영역에 컴퓨터가 접목되면서 반도체 업계의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스마트 지팡이다. 움직임을 인식해 넘어졌다거나 사고를 당하는 상황을 알아챈다. 지팡이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작은 반도체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최호섭 제공


이는 반도체 업계의 입장에서도 기회다. 반도체를 집어삼키던 PC 시장이 성숙기에 이르렀고,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산업이 되자 반도체 업계는 고민에 빠졌다. 그 걱정을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컴퓨팅이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지만 다시금 스마트폰도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업계는 다시 가전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반도체 업계도 오랫동안 가전 시장을 노려왔다. 스마트홈을 통한 가전 진입을 원했지만 사실상 쉽지 않았다. 시장이 준비되지 않았고, 반도체 기술도 큼직한 컴퓨터의 옷을 벗어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장도, 기술도 준비되면서 거꾸로 가전 업계가 더 높은 반도체 기술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CES에서는 기술의 미래, 방향성을 주로 제시했기 때문에 컴퓨터의 형태가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기술이 실제로 가정에 들어오는 예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몇몇 제품들은 ‘예전에 나왔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 기술을 실제 가전제품에 집어넣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수십 년을 애태웠던 가전과 컴퓨터의 만남이 반도체 기술을 등에 업고 이제 눈앞에 왔다. 반도체의 또 다른 전성시대는 가전제품의 변화를 등에 업고 있다. 잘 와 닿지 않는다면 주식 시장을 살피면 된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인텔, 엔비디아의 최근 주가 변화는 지난 1년간 그 흐름을 정확히 읽어냈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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