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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쪽집게 과외에 허덕이는 신춘문예 지망생들

정형화된 심사방식에 찍어낸 듯한 출품작 넘쳐

2017.01.10(Tue) 16:19:00

“문예창작과 입시와 등단 과외합니다. 습작에 중점 두며 기성 작가의 작품을 읽고 토론합니다.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므로 수업의 질은 확실히 다를 겁니다.”

 

‘문인의 등용문’인 신춘문예는 당선작만큼이나 매년 치열한 경쟁률로 화제가 된다. 적게는 수백 대 일에서 많게는 1000 대 1이 넘을 정도다. 급기야 예비 문인을 대상으로 한 ‘신춘문예 대비 교육’은 대학 수업에서 족집게 과외까지 그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더불어 신춘문예가 만든 획일화된 교육이 개성 있는 작가의 성장을 막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작가 지망생들은 신춘문예 대비를 위해 기성작가가 진행하는 족집게 과외 수업을 듣기도 한다. 사진=엽서시 홈페이지 캡처

 

1925년부터 시행된 신춘문예는 현재 20여 곳의 신문사와 소수의 문예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출판 후 독자 평가로 작가가 되는 외국과 달리 한국과 일본에선 신춘문예가 작가로 인정받는 가장 보편적이며 확실한 방법으로 통한다. 시, 소설, 희곡 등 장르별로 단 한 명에게만 등단의 기회가 주어지다 보니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이 보통이다.

 

이렇다 보니 작가 지망생이 비교적 많은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과의 강의 중 일부는 아예 등단에 맞춰 커리큘럼이 구성되기도 한다. 심사위원별 선호 스타일, 언론사별 남녀 입상자 비율 등의 분석은 기본이다. 세밀하게는 ‘신문사 스타일’과 ‘문예지 스타일’을 나눠 신춘문예에 대비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문예지가 신문사보다 개성적인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이 아무개 씨(여·25)는 “대개 등단한 교수들이 언론사별 선호하는 스타일,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에 대해 강의한다”며 “작가 지망생들은 주로 유명한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여러 번 습작하는 방식을 통해 신춘문예에 대비한다”고 말했다. 

 

기성 작가에게 족집게 과외를 받는 경우도 많다. 예비 문인들을 위한 커뮤니티 사이트와 온라인 카페에는 등단한 작가들이 올린 과외 학생 모집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오프라인 소수정예 교습은 물론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첨삭과 상담 프로그램도 있다.

 

등단 대비용 과외는 소수정예의 특성을 살려 주로 각자 작성한 글 몇 편을 합평하고 첨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예창작과 입시생, 작가 지망생 사이에서 유명한 A 과외업체 관계자에게 비용을 묻자 “글쓰기 강의 중에서도 최고 난도로 진행되는 등단반은 주 2회 수업은 월 48만 원, 주 1회는 24만 원”이라며 “작품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다. 심사위원의 작품을 보면 대략적인 성향을 알 수 있다”고 답했다.

 

과외 비용이 부담스러운 작가 지망생은 기성 작가들이 진행하는 공개강의를 수강하기도 한다. 한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 강의를 들어본 강 아무개 씨(28)는 “소수정예 교습은 너무 비싸 (공개강의를) 신청하게 되었다. 꽤 유명한 기성 시인의 강의를 한 번에 두 시간씩 여덟 번 듣는데 20만 원 중반대여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등단용 교습’으로 인한 기술적 글쓰기의 확산이 경쟁력 있는 작가의 성장을 막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매년 비슷한 심사위원 구성, 언론사별 성향까지 더해지면서 신춘문예는 정형화된 작가만 찾아내는 낡은 제도가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많은 문학계 종사자들은 정형화된 패턴의 신춘문예 심사가 경쟁력 있는 작가 양성을 저해하는 원인이라고  비판한다. 한 대형 서점의 매대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박혜리 기자


앞서의 강 씨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미래파 시인이 아무리 인기를 끌어도 대부분의 심사위원이 여전히 나태주, 김춘수의 시처럼 빠르게 와 닿는 글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이러한 경향성을 파악한 지망생들은 ‘기성작가 베끼기’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매년 등단하는 작가 중 한두 명만 ‘살아남겠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비즈한국’이 작년과 재작년 주요 신문사 6곳(조선일보·한국일보·경향신문·동아일보·세계일보·서울신문)으로 등단한 문인들의 출판 경험을 조사해보니(공동저술 제외) 53명 중 7명에 해당하는 13% 정도만이 작품을 출간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등단한 문인 중 상당수가 자기 책 한 권 출판하지 못한 채 문단에서 멀어지고 있다.

 

문학계 종사들은 등단만 하면 글만 쓰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환상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랫동안 사기업에 근무한 한 시인은 “경제적으로 보탬이 안 되는 시인을 직업이라 할 수 없다”며 “두 번째 시집이 꽤 팔렸지만 돈이 안 된다. 거의 모든 작가가 나처럼 두 개 이상의 직업이 있는 이유”라고 토로했다. 

 

신춘문예가 더는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부 작가 준비생들은 신춘문예 대신 SNS와 블로그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알리기도 한다. SNS 상에서 유명해지며 여러 권의 책을 낸 ‘읽어보시집’의 최대호, ‘서울시’의 하상욱이 대표적인 사례다. 

 

작가지망생 박 아무개 씨(여·25)는 “저학년 때는 등단이 최대 목표였지만, 점점 기성 문단에 인정받는 게 목표인지 정말 시를 쓰고 싶은 건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며 “온라인 상에서 유명해진 글을 ‘가볍다’며 비하하기도 하지만 쓰임새가 다를 뿐 오히려 대중에게 가깝다는 장점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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