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 인프라가 없어 전기차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용자가 거의 없어 충전소 확충이 어렵다.”
국내 전기차 보급이 더딘 이유를 찾다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논란에 빠지곤 한다. 다만 운전자 입장에선 충전기가 먼저 구비되어야 전기차를 살 수 있다. ‘비즈한국’이 서울시청 인근 7곳의 전기차 충전소를 찾아 실태를 점검해 보니, 서울에서 전기차를 사면 고생길이 훤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광화문 열린마당 공영주차장을 찾았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는 더 케이 트윈타워 바로 앞이다. 11월 30일 종로구가 자체적으로 설치한 곳으로, 전기차 4대를 충전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가장 최근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인만큼 초록색으로 칠한 바닥도 깨끗했고, 충전기도 새 것이었다.
# 전기차 자리에 일반차 주차…문의하자 “전화해서 빼달라 하라”
예상과 달리 전기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대신 중형 세단 말리부(Malibu)가 전기차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옆 일반 주차장 자리에도 빈 곳이 많았으나, 굳이 전기차 자리에 주차한 것으로 보아 용건이 있는 장소 가까이에 세우려고 한 것으로 보였다. 만약 4곳의 전기차 자리에 모두 내연기관 차량이 주차해 있다면 힘들게 충전소를 찾아오더라도 낭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
환경부 산하기관으로 전기차 충전소를 운영하는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장애인 주차 자리에 일반 차량이 주차하면 불법으로 과태료 부과 대상이지만, 전기차 자리는 그런 규정이 없다. 일반 차량이 주차를 하더라도 전화를 해서 비켜달라고 해야 한다. 시민의식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세종문화회관 옆의 세종로 공영주차장을 찾았다. 전기차 충전기는 1대 구비되어 있다. 주차장은 지하 3개층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전기차 충전기 위치에 대한 안내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엘리베이터 입구, 엘리베이터 내부, 각 층 엘리베이터 출구 등 어디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한 층마다 내려서 일일이 찾아보아야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시작부터 포기해야 했다. 주차장 한 층이 너무 넓었던 탓이다. 결국 엘리베이터 옆 주차장 운영 사무실을 방문해 충전기 위치를 문의해야 했다. 지하 4층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역시 지하 4층도 너무 넓었고 어떠한 안내 표지판도 없었다. 가까스로 충전기를 찾았다. 자리가 비어 있어 충전은 가능했다.
전기차 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주위에는 일반 차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접근성이 가장 떨어지는 최하층에 위치하다 보니 그렇다. 접근성이 좋으면 일반 차들이 선점할 우려도 있어 차라리 가장 발길이 안 닿는 곳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충전기 운영사인 한국환경공단은 “충전기 설치 시 부지 협조가 어렵다. 타 기관의 협조가 부족한 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 전기차 충전기 위치에 대한 어떤 안내도 볼 수 없어
세 번째로 종묘 공영주차장을 찾았다. 역시 주차장 입구부터 전기차 충전기에 대한 어떠한 안내판도 찾을 수 없었다. 이곳은 서측 지하 4개층, 동측 지하 4개층으로 이뤄져 있어 직접 돌아다니며 찾으려면 8개 층을 돌아봐야 했다. 찾기를 포기하고 관리사무실에 문의했다. 역시 접근성이 떨어지는 최하층에 위치해 있었다. 현장 상황은 직전 찾아간 세종로 공영주차장과 비슷했다.
네 번째로 찾은 곳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였다. DDP는 디자인이 중심이 된 장소답게 독특한 아이디어가 접목된 안내도가 곳곳에 잘 배치돼 있는 곳이다. 화장실이나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전기차 충전기에 대한 안내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주차장에 들어선 뒤 다행히 관리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앞서 방문한 광화문 열린마당은 종로구가, 세종로 및 종묘 공영주차장은 환경부가 충전기를 설치·운영하는 곳이다. DDP는 포스코ICT가 운영한다. DDP라서 그런지 전기차 자리는 공영주차장에 비해 깔끔했고, 충전기도 깨끗하게 잘 관리돼 있었다.
문제는 세 개의 전기차 자리 중 한 곳을 DDP 업무용 차량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DDP 로고가 부착된 해당 차량은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 순수전기차는 맞다. 그러나 충전 중은 아니었다. 한국환경공단 홈페이지는 전국 전기차 충전소 위치와 사용 현황을 안내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세 자리 모두 ‘사용가능’으로 나와 있었다. 만약 전기차 두 대가 충전 중인 상황에서 이곳에 충전을 하러 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DDP 업무용 차량이 충전 중이 아니라면 일반 주차장 자리에 있어야 한다.
다섯 번째로 찾은 곳은 한강진역 공영주차장. 경사면에 위치한 탓에 계단식으로 구성된 2개 층의 야외 주차장이었다. 이곳 역시 전기차 충전기에 대한 어떠한 안내도 없었다. 상부 주차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 하부 주차장에 가서야 충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충전기는 하나뿐이었지만, 황당하게도 바닥에 ‘EV 전기차’라고 쓰인 주차면은 6곳이나 됐다. 전기차 충전기를 확충할 계획으로 미리 도색을 해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경우 일반차들이 ‘전기차 자리는 유명무실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선진 시민의식을 기대하기 전에 선진 행정이 필요하다.
# 이마트 같은 상업시설조차 전기차 안내는 뒷전
여섯 번째는 이마트 마포공덕점이었다. 고객편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상업시설인 만큼 친절한 안내를 기대했으나, 주차장 입구 및 엘리베이터 안팎 어느 곳에서도 전기차에 대한 안내를 찾아보지 못했다. 공영주차장의 경우 충전기를 최하층에 두기 때문에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고 지하 7층부터 내려 주차장을 둘러봤으나 충전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지하 4~7층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지하 7, 6, 5층을 차례로 둘러본 결과, 지하 5층에 서 충전기를 발견했다. 엘리베이터 출구와 충전기 사이가 가로막혀 있어 주차장 반대편 끝까지 가야 충전기를 볼 수 있었다. 이곳의 충전기는 BMW가 운영하는 것이었다.
일곱 번째는 이마트 마포공덕점과 멀지 않은 마포유수지 공영주차장이었다. 서울 시내 위치한 지상주차장 치고는 꽤 넓은 편으로 많은 차들이 빽빽이 주차돼 있었다. 이 역시 주차장을 5분 넘게 헤맨 뒤에야 전기차 충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영주차장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듯 바닥에 칠해 놓은 초록색은 빛이 바랬고, 충전기도 낡아 보였다. 이곳 역시 충전기 대수보다 많은 전기차 주차면이 도색되어 있었다. 전기차 충전기를 여러 대 설치했다가 이용자가 거의 없다 보니 1대만 남기고 철거한 것으로 보였다.
이상 서울시청 인근 7곳의 전기차 충전소를 둘러본 결과, 가장 불편한 점은 충전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시청 반경 5km 이내에는 기자가 돌아본 7곳 외에 서대문구청 주차장, 그랜드 앰버서더 서울 호텔 주차장의 총 9곳이다. 전국적으로 많은 충전소가 위치해 있지만, 정작 서울시내 중심부에는 충전소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남대문 부근에서 일을 보더라도 세종문화회관 주차장에서 충전을 시작하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자동차를 사는 목적인 시간 절약, 편리함이 반감된다. 이런 상황에서 비싼 전기차를 사려면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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