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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사자성어] 올해는 역지사지, 반면교사의 한 해가 되기를

군주민수처럼 어렵지 않은, 직접 뽑아본 지난해 사자성어

2017.01.06(Fri) 09:38:18

‘교수신문’은 매해 연말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2016년에는 군주민수(君舟民水)가 꼽혔다.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백성은 물에, 임금은 배에 비유한 것이다. 이전 해의 사자성어로는 엄이도종, 거세개탁, 도행역시, 지록위마, 혼용무도 등이 꼽혔다.

 


교수님들이 발표하는 사자성어는 내게 낯설 때가 많았다. 그들이 새로운 사자성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지 의심했다가, 원래 있던 것임을 알고 놀라기 일쑤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사자성어를 꼽을 수는 없었을까? 언론사 입사 시험 준비 당시 ‘상식’이라는 범주에는 ‘교수신문’​의 사자성어도 포함됐다. 그것을 외우며 얼굴 모를 교수님들을 원망했다.

 

그래서 제안한다. 우리도 작년의 사자성어를 뽑아보자! 좀 더 친숙하고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것들로다가. 일단 내가 후보를 추려봤다. 님들이 읽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꼽아 댓글 남겨 달라. 그 중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것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등극시키는 것은 어떨까? 민주적으로다가.

 

1. 점입가경(어떤 사건이나 얘기가 그 내용을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재미가 있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비리에 최순실이 연관돼있다는 ‘한겨레’ 보도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서막을 열었다. 그 뒤 최순실이 어디까지 국정에 개입했는지, 자고 일어나면 새롭고도 놀라운 사실들이 연일 보도됐다. 점입가경이었다.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자극적인 사건들은 순수한 재미만 남기지는 않았다. 국민들의 분통도 터뜨렸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지만 분통 터져 뜨거워진 시민들은 토요일마다 광장에 나갔다. 집회의 참여자 수는 매번 새로운 기록을 경신했다.

 

2. 화룡점정(무슨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번 촛불집회의 화룡점정은 ‘탄핵안 가결’이었나 보다. 그 뒤 집회의 위세가 꺾였다.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인데 아득하게 느껴진다. 한겨울 밤의 꿈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섰는데도, 일상에서 뭔가 뚜렷하게 개선된 것은 없다. 정부의 무능과 부패가 드러난 상황에서도 가스비,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 등 공과금은 예정대로 인상됐으며, 여전히 임금은 쥐꼬리만하고, 보증금 및 임대료는 계속 목을 조여 오고 있다.

 

며칠 전에는 ‘2016년 여성혐오’의 화룡점정도 있었다. 12월 29일, 행정자치부에서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라면서 가임기 여성 분포 지도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어떤 남초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X지몬GO’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 단어를 목격하고 직관적으로 불쾌해졌지만, 생각해보니 이것은 프로젝트의 의도와 태도를 꿰뚫은 별칭이었다.

 

‘포켓몬Go’는 지도 서비스를 통해 특정 포켓몬 서식지 정보를 제공하고 플레이어는 그곳에 찾아가 포켓몬을 포획하는 ‘퀘스트’를 수행한다. 가임기 여성지도 사이트 사용자들은 어떤 퀘스트를 부여받았다고 인식할까. 행정자치부는 지도를 앱으로 만들어 배포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사용자가 지도를 보고 가임기 여성이 많은 곳으로 가 포획하여 임신시키는 퀘스트를 달성하기를 바랐던 걸까. 강간을 장려하고 낙태를 금지시켜서라도 신생아의 머릿수를 높이고 싶다는 의지일지도…. 여성을 생식기 또는 아이 낳는 기계로 바라보는 여성혐오적 태도와 통계나 숫자로 눙치며 개별 인간의 구체적 삶의 문제들은 지워버리는 관료주의가 탄생시킨 작품이다. 이러려고 광장에 나갔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3. 적반하장(도둑질한 놈이 오히려 매를 들고 주인에게 달려든다)

 

당장 태어나는 사람 수가 늘어나면 장땡인가. 그렇게 태어난 생명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사회는 제대로 분담하지 않는다. 보육 및 교육 복지는 미비하고, 한국인들은 자기계발 비용을 개인의 몫으로 너무 많이 짊어진다. 실컷 교육받고 빚을 져놨는데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도 한 사람의 몫을 수행하기 버거워 무수히 자살을 떠올리고,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 타이틀은 10년째 빛나고 있다. 자살이 아니라도 단명할 기회는 많다. 유행성 질병, 스트레스 및 과로로 인한 성인병, 부실 공사, 선박 사고, 국가적 재난 등등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몰라 스릴 있다.

 

이런 나라에서 자식을 낳으라니? 행정부 하는 짓이 딱 적반하장이다. ‘자식 낳고 싶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 놓고 국민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어떤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쓰일 수 있었던 예산을 ‘가임기 여성 지도’ 같은 서비스에 허비했다는 사실이다. 설마 많이 낳고 많이 죽는, 그 빠른 순환이 ‘다이나믹 코리아’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걸까? 소오름….

 

이상 2016년 사자성어 후보로 점입가경, 화룡점정, 적반하장을 제안했다.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분은 새로운 사자성어를 제안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 역시 썩 긍정적인 뉘앙스는 아닐 것이라 짐작한다.

 

2017년의 사자성어는 좀 더 안정되고 포근한 시국이 반영된 것을 꼽을 수 있길 바라본다. 역지사지(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는 태도. 태생적 조건과 삶의 배경 달라 잘 모를 때엔 편견을 지우고 당사자의 증언과 고백을 듣는 ‘배우려는’ 태도)라든지, 반면교사(싫은 짓 하는 사람과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폭력을 재생산 하지 않음)이라든지, 강강약약(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정의로운 태도)이라든지…. 

 

무엇보다 2017년에는 모두가 인간 취급 받으며, 좀 더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즐거운 순간을 많이 수확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심전심일 거라 생각한다.​ 

최서윤 ‘​잉여’​ 편집장(a.k.a 잉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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