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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마지막 크리스마스’처럼 떠난 조지 마이클

숱한 인생의 굴곡 자초했던 마성의 음악 천재

2016.12.26(Mon) 21:53:04

영국 출신의 걸출한 팝 스타 조지 마이클이 크리스마스인 25일(현지시간) 옥스퍼드셔주의 자택에서 심부전으로 5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생전 히트곡 ‘Last Christmas’(1984) 처럼 이번 크리스마스는 조지 마이클에게 너무나 갑작스럽고 허무한 종말이었다. 영어 단어 ‘Last’ 는 ‘마지막’ 또는 ‘지난’ 이란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Last Christmas’  가사 내용은 지난 크리스마스의 애틋한 추억을 담고 있지만 조지 마이클에겐 이번 크리스마스가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더 들어맞는 것 같다.

 

서른에 미치지 못하는 연령대에선 “조지 마이클이 누구야”라는 반응이 적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라디오와 거리 곳곳에서 ‘Last Christmas’ 가 울려 퍼진다. 곡명은 몰라도 도입부에서 가슴 설레게 하는 신디사이저 연주와 감미로운 스캣(가사 없이 부르는 보컬)의 주인공이라면 “아, 그 사람”​ 하고 무릎을 탁 칠 것이다. 

 

조지 마이클이 향년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georgemichael.com

 

조지 마이클은 전성기 시절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함께 “흑백의 마이클이 팝 시장을 지배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보컬, 작곡, 프로듀싱 등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온갖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의 극히 일부만을 발휘한 채 생을 마감하면서 그를 아끼는 팬들에게나 팝 음악계에도 크나큰 상실감을 안겼다.

 

그리스계 키프로스 출신 이민자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지 마이클은 일찌감치 음악적 재능을 보이며 고교 동창인 앤드류 리즐리와 1981년 듀오 ‘왬(Wham!)’을 결성했다. 우리말로 의성어 ‘쾅!’이란 뜻의 이색적인 그룹 이름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에서 따온 것.

 

왬은 1983년 1집인 ‘Fantastic’을 발표하면서 영국 내 신성으로 자리매김하더니 1984년 2집 우리말로 ​크게 성공하다​는 뜻의 ‘Make It Big’으로 전 세계적인 초대형 사고를 친다.

 

전설의 시작은 ‘Wake Me Up Before You Go Go’였다. 우리말로 “네가 가기 전 나를 깨워 달라”는 뜻의 곡명은 잠꾸러기 앤드류 리즐리가 어머니한테 남긴 메모를 조지 마이클이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다. 이 노래 뮤직 비디오에서 두 사람은 민망할 정도로 짧은 반바지를 입고 나오는데, 준수한 외모에 늘씬한 체형의 두 사람이 불러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이 곡은 단번에 전 세계 팝 음악 팬들에게 파고들며 당당히 빌보드 1위를 차지한다. 

 

뒤이어 이 앨범에서 쏟아진 애잔한 테너 색소폰과 감미로운 보컬의 앙상블인 ‘Careless Whisper’와 펑키 풍의 ‘Everything She Wants’도 연달아 빌보드 1위를 기록했다. 네 번째 싱글이자 당시 국내 남성들에게 엉뚱한 뜻으로 음흉한 미소를 짓게 했던 ‘Freedom’도 차트 3위에 올랐다. 이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1984년 연말을 달구었던 싱글 ‘Last Christmas’가 나온 것도 이때였다. 가히 왬의 기호지세였다.

 

 

왬의 인기는 동서양의 장벽도 허물었다. 왬은 중국의 개방과 맞물려 최초로 중국에서 공연한 서방의 팝 가수였다. 그것도 중국 공산당 인민당대회에서 노래를 불러 공산당 간부들마저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빌보드 선정 1985년 연간 최고 인기 곡에서 ‘Careless Whisper’가 1위, ‘Wake Me Up Before You Go Go’가 3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보면 왬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방증한다. 왬의 파죽지세는 팝 역사상 최고로 성공한 듀오로 평가받던 ‘홀 앤 오츠’를 추월하는 것도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왬의 신화는 거기까지였다. 1986년 3집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을 냈지만 그 이전부터 조지 마이클은 솔로 활동을 준비하던지라 그해 6월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왬은 해체된다. 

 

보컬과 작곡 등 음악적 면을 도맡은 조지 마이클과 달리 앤드류 리즐리의 경우 비주얼과 스타일을 이끌었지만 음악적으로는 이렇다 할 역할이 없었기에 왬의 해체는 이미 출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팝 음악사에서 왬은 준수한 외모, 가창력, 댄스와 발라드 등 1990년대 맹위를 떨친 ‘뉴 키즈 온 더 블록(Nkotb)’ 등 보이 밴드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짧지만 굵직한 활동을 한 보이 밴드의 전형이 왬이었다. 

 

조지 마이클의 왬 시절 앨범 ‘Make It Big’과 최대 히트 솔로 앨범  ‘Faith’ 표지.

 

조지 마이클은 1986년 싱글 ‘A different corner’로 솔로 활동에서도 성공 조짐을 보이더니 1987년 첫 솔로 앨범 ‘Faith’로 공전의 히트를 친다. 이 앨범에선 타이틀 곡인 ‘Faith’외에도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 등 무려 4곡이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다. 특히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모은 ‘Kissing a fool’과 자극적인 가사를 담은 ‘I want your sex’까지 1988년 한 해에 모조리 히트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특히 ‘Faith’는 빌보드 선정 1988년 연간 최고 1위 곡이란 영예도 얻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록, 소울, 재즈, 댄스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대중에 어필했고 1990년에 출시한 두번째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 Vol.1’을 통해 더욱더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시도했다. 이 앨범에서도 ‘Praying for time’등 1위곡을 내놓았지만 소포모어 징크스로 전작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둔다. 

 

 

조지 마이클의 음악 인생에도 이때부터 시련이 닥쳐왔다. 문제는 일련의 시련들을 그가 자초한 측면이 많다는 점이다. 2집 솔로 앨범 부진에 조지 마이클은 음반사가 앨범을 ​제대로 ​홍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패 이유로 꼽고 1991년 거대 음반사인 소니 뮤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니 뮤직과 길고 긴 법정 공방과정에서 생긴 공백기로 신작을 내놓지 못한 그는 대중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갔다. 

 

소송이 마무리된 후 1996년에는 새 앨범 ‘Older’를 발표하면서 주목 받나 했더니 또 다른 사건에 휘말렸다. 1998년 로스앤젤레스(LA)의 한 공원에서 남자친구와 동성애를 하는 장면이 발각돼 어쩔 수 없이 커밍아웃을 해야 했다. 이전까지 다소 마초적인 이미지로 수많은 여성 팬들을 쥐락펴락했던 그로서는 ​이 사건으로 ​인기 급락을 체험해야 했다. 

 

사실 그의 성적 지향성은 예전부터 감지된 상태였지만 이 사건 전까지 드러나지는 않았었다. 그가 왬 시절인 1985년 세기의 미녀 배우 브룩 실즈의 일방적 구애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것도 이 사건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를 여왕의 푸들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미국과 영국에서 안티 팬들을 양산하기도 했다. 

 

음악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그의 창법은 한 마디로 ‘듣기엔 쉬우나, 부르기 어렵다(Esy to listen, Hard to sing)’로 표현된다. 그는 높은 피치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는 미성과 절정의 가창력을 보유한 동시에 미칠 듯한 그루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룹 퀸(Queen)의 불세출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처럼 조지 마이클의 보컬은 제대로 모방하기 힘든 마성의 그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은 한번 들으면 선율이 잊히지 않고 시대를 넘나드는 세련된 것이었다. 가수로서 작곡가로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변화를 시도한 음악인생이었지만 아직도 보여줄 게 너무나 많이 남은 그였다. 

 

왬 시절까지 포함하면 총 11개의 빌보드 싱글 1위 곡을 보유했지만, 인생의 굴곡 없이 꾸준히 활동했다면 어땠을까. 분명 팝 음악의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조지 마이클의 죽음이 더 아쉬워지는 이유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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