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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어들기에 관한 씁쓸한 고찰

제안과 동의에 관한 암묵적인 약속

2016.12.20(Tue) 23:49:15

난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소음과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보다, 차가 조금 막히는 것이 견디기 수월하다는 이유에서이다. 여러 나라에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운전할 일도 많다. 한국에서 운전할 때와 자연스레 비교를 하게 되는데 오늘은 끼어들기에 대한 생각이다. 

 


# 7월 4일 월요일 아침 서울 출근 길이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양재역에 있어서, 출근 동선은 분당-내곡 간 도로를 이용해 양재역 방향으로 간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분당-내곡 간 도로에서 빠져나와 현대자동차 앞쪽의 지하차도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내 앞에 있던 남색 BMW 앞으로 흰색 말리부가 끼어드는 것이 보였다. BMW와 그 앞차 간 거리는 거의 없었고, 지하차도를 지나는 중이어서 실질적으로 끼어들기가 금지된 곳이었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1. 지하차도로 들어가는 길은 총 세 개 차선, 실선.

2. 난 그중 3차선에 서 있었고, 내 앞엔 BMW 남색이 있었음.

3. 출근 시간이라 차들이 빽빽함. 차간 거리 거의 없음.

4. 지하차도의 정점을 찍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2차선에 있던 흰색 차가 3차선 쪽으로 붙으며 BMW와의 간격이 좁히더니 우측 깜빡이를 켬(사실 난 이 부분이 제일 맘에 안 든다. 왜 꼭 끼어들고 나서 깜빡이를 켜는 건가).

5. BMW는 클랙슨을 누름. 창문을 닫았는데도 클랙슨을 얼마나 꽉 누르고 있었는지, 지하차도 안에서 클랙슨 소리가 크게 울려서 귀가 너무 아팠음.

6. 흰색 차는 결국 끼어들기 성공.

 

5번의 ‘클랙슨을 누름’ 행위는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말리부에 대한 불만의 표현일 것이다. 

‘깜빡이만 켜면 다냐? 내가 널 끼워줄 생각이 없는데!’

 

# 지난 5월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깃허브(GitHub, 분산형 버전관리 프로그램인 깃을 호스팅해주는 곳)에 방문하기로 해서 운전을 하고 가는데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가 종종 나왔다. 네 방향 모두에서 차가 오고 있었고 횡단보도 없이 사람도 오가고 있었다. 조수석에 있던 미국 형이 말했다.

 


“이때는 일단 섰다가 가장 먼저 온 차가 먼저 가는 거야. 뒤에서도 오고 있으니깐 너무 오래 서 있지 말고 빨리 빠져줘야 해.”

 

깃허브 방문을 마치고 몇 블록 떨어진 데모 데이(스타트업들이 그동안 다듬어 온 서비스와 제품, 사업 모델을 투자자들 앞에서 선보여 평가받는 행사) 장소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좌회전해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에서 알려주는 거리를 잘 못 보고 맨 좌측으로 이동하질 못했다. 잽싸게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서 있다가 앞차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 뒤에 오는 차와의 간격이 좀 나는 것을 확인하곤 빠르게 좌측으로 끼어들었다. “헤헤, 미안~”하고 소리 내서 말하면서 비상등을 몇 번 깜빡여줬다. 미국형이 물었다. 

 

“비상등을 왜 켠 거야? 네 앞에 끼어들어서 미안하다는 뜻에서? 여기선 아무도 못 알아들을 걸?”

“그래? 여긴 비상등 안 켜?”

“응, 비상등은 정말 무슨 일 있을 때나 키거든. 아마 너 보고 뒤 차가 ‘쟤 무슨 일 있나?’ 했을지도 몰라(ㅋㅋ).”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땐 그 정도 얘기만 하고 끝났지만, 저녁때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곧 미국 형이 이전의 그 상황에 대해서 “사실은 아까 아슬아슬했어…”라는 얘길 했다. 말인즉슨, 끼어들고 싶다면 깜빡이를 켜고 잠시 기다린 뒤에 차가 속도를 낮춰 간격을 떨어뜨려 주면 끼어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곧 끼어들어도 된다는 신호다.

 

즉, 깜빡이를 켠다는 건 “나 껴도 되니?”라는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는 제안의 신호, 그걸 본 뒤 차가 속도를 줄인다는 건 “끼어들게나 친구”와 같은 동의로 볼 수 있다. 생각해보니 나도 한국에서 운전하면서 왜 끼어들고 나서 깜빡이를 켜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게 떠올랐다. 

 

다른 나라에서 겪은 이런 상황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대체로 이런 반응이 나온다. 

“사회적으로 그런 문화가 정착해야 하는데 말이야….”

 

물론 끼어들기 하나 가지고 일반화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운전 습관은 사고로 생명이 위험해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서로 잘 지켜야하는 암묵적인 약속이다. 운전습관에서조차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인 부분이 드러나는 것 같아 출근길이 조금 씁쓸해졌다.  

백미진 LG전자 애자일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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