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구속사건의 전말에서 이어집니다.)
최후진술서
피고인 최후진술서를 통해 본 정두언 무죄 사건의 전모
○변양호 사건과 완전 판박이
○여타 정치자금 사건과 다른 점
① 돈을 돌려준 사실이 확인됨
② 임석을 회피하고, 이상득 씨에게 패스함
○1심 판결의 지나친 편파성
○임석의 당초 진술 번복
○임석을 이상득 씨에게 소개한 것이 공범이 되다
○검찰의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재판정
○3천만 원 수수 건의 공소시효 조작
○검찰 측 증인도 부인한 1억 수수
○마무리: 변양호 신드롬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판사님,
그동안 이 바쁘신 와중에서도 저의 재판을 자상하고 공정하게 진행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로서는 할 말은 태산같이 많으나, 재판장님의 깊고도 넓으신 지혜와 명철을 믿고 가급적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변호사들께서 하신 변론과 다소 중복되는 면이 있더라도 법에 문외한인 저는 법적인 논리가 아니라 세상의 상식적인 논리로 말씀드리고자 하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겨울 중 가장 추웠던 날인 1월 24일 현역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법정구속이 되어 지금까지 5개월 넘게 서울구치소에서 구금되어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구치소에서 오십년이 넘는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며 참으로 소중한 성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거의 숨도 못 쉴 정도였습니다만, 차츰 시간이 가면서 제가 믿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많은 죄를 짓고 살았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저의 인생의 주인인양 교만에 빠져 산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제게 특별히 세상의 밑바닥에서 새롭게 단련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변양호 사건과 완전 판박이
그러던 중에 최근에 옛 재경부 고위관료였던 변양호 씨가 쓴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259일간의 구속기간을 포함하여 무려 4년 4개월간의 법정싸움 끝에 2가지 사건에 대해 모두 무죄를 받아내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신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쓴 책입니다. 변양호 씨는 저의 고교 및 대학교 학과선배라는 인연도 있지만, 책을 읽다보니 바로 제 경우와 흡사한 점이 너무 많아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어느 회계법인 대표가 대기업으로부터 수십억의 로비자금을 받아 자신의 가족들 계좌에 입금시켜놓고는 그 용처를 꾸며대면서 무려 6명의 고위관리들이 무고하게 구속되고 재판을 받으며 고통을 당한 사건으로서, 물론 대검 중수부에서 맡았던 사건입니다. 모두 6명 중 5명은 무죄를 받았으나,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만이 유죄를 받았습니다. 그는 당초 검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실을 인정해주면 불구속으로 해줄테니 법정에 가서 싸우라’는 검찰의 제안을 순진하게 받아들였다고 훗날 법정에서 주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저도 공무원출신이라 잘 압니다만, 공직사회에서 착하고 깨끗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연원영 씨는 선고 후 복역 중에 간암이 발생하여 형집행정지상태에서 작고하셨습니다. 결국 화병으로 돌아가신 것이겠지요.
변양호 씨는 그의 책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나라 검찰제도와 관행의 문제점에 대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대목은 우리나라는 검찰이 기소독점권 뿐만 아니라 기소재량권까지 가지고 있어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센티브구조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릴 필요는 없으리라 봅니다. 그리하여 이런 구조 때문에 피조사자의 ‘진술의 임의성’이 항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변양호 씨는 저와 유사하게 3차례에 걸쳐서 돈을 받았다고 기소되었고, 돈을 받았다는 액수도 비슷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김모 씨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또 저와 같이 그 진술도 오락가락하여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중수부 과장과 수사검사는 이 사건의 부장과 과장이 되어 있습니다. 우연치고는 굉장한 우연이지요.
저는, 부끄럽습니다만, 이명박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라는 소리를 듣다가 형님불출마선언을 주도한 이후로 지난 정부의 사찰대상 1호로서 늘 감시와 내사의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고분고분했다면 저는 이명박정부에서 누구 못지않게 영화를 누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당 내 소장개혁파의 리더라는 소리를 들으며 이명박정부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특히 검찰개혁에도 앞장을 섰습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 및 공직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개혁을 끝까지 주장한 최후의 3인방 중에서 한명은 과거의 불미스러운 일이 석연치 않게 갑자기 언론에 기사로 나오면서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고, 정태근 전의원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다 낙선함으로써 19대 국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유일하게 저 혼자였습니다. 그동안 검찰은 ‘눈엣가시’인 저를 단골표적으로 삼고, 웬만한 기업인이 구속되면 저와의 관련성 여부를 추궁하곤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정치를 하면서 몸가짐을 바로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벌써 어떻게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저축은행사건이 터지고 이상득 씨가 조사를 받으면서 솔로몬 임석회장을 그에게 소개시켜 준 저를 드디어 엮어넣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검 중수부가 그동안 비난 받아 왔던 전형적인 표적수사, 물 타기 수사, 짜 맞추기 수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타 정치자금 사건과 다른 점
① 돈을 돌려준 사실이 확인됨
② 임석을 회피하고, 이상득 씨에게 패스함
제가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해 달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정치적인 의도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제 사건에 대한 수사자체가 부실수사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솔로몬 임석 때문에 사법처리 되었거나 사법처리중인 사건이 여러 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사건이 여타 사건과 뚜렷하게 다른 사항이 두 가지 있습니다. 이 점 재판장님께서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첫째, 저는 2008년 1월 말 유정한정식집에서 임석으로부터 받은 홍삼세트가 돈인 것을 알자 총리실 후배인 이OO을 통하여 돈을 돌려준 사실이 확인된 바가 있습니다. 또 저를 통하여 이명박 후보를 돕겠다는 임석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그를 이상득 부의장에게 소개시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즉, 임석과 관련된 다른 사건과 달리 확실하게 거절한 행위와 함께 일종의 회피한 행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둘째, 제 사건은 임석의 진술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증거도 없으며, 심지어는 임석의 부하직원 등 그 어떠한 관계자의 관련 진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검찰은 조사 중에 주OO, 이OO, 박OO, 이△△ 등 임석의 비자금과 관련된 부하직원들에게 정두언에게 돈이 전달된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으나 모두가 모른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1심 재판에서 이렇게 주장을 하자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서실 과장이었던 고OO이 돈을 준비해가면서 정두언과 만나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진술했다’며 저희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OO이 진술한 그 사건은 2008년 1월말 유정에서 임석과 만난 후 돈을 돌려준 사건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고OO이 알았던 것입니다. 만약 제게 돈을 주었다는 다른 3건도 사실이었다면 고OO의 경우처럼 누군가는 반드시 알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저에게 돈을 갖다 준 것을 안다고 진술한 사람이 없습니다. 즉, 1심 재판부는 저에게 유리한 사실을 가지고 오히려 불리한 판단 근거로 삼은 것입니다.
1심 판결의 지나친 편파성
어쨌든 저희들은 당시 궁박한 처지에 빠진 임석 단 한 사람의 진술만을 토대로 꾸며짐으로써 부실하기 짝이 없는 기소내용에 대해 1심에서 조목조목 반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1심 재판부가 만든 100페이지가 넘는 판결문을 분석해 본 결과 저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저희가 검찰의 주장중에 모순이나 불일치나 의문이 있다고 지적한 사항들에 대하여 1심 판결문은 무려 27군데에 걸쳐서 3가지 유형으로 검찰의 주장을 옹호합니다. ①5년 전 일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착각을 일으켰다거나, ②일부 세부사항에 대하여 진술변경이 있으나 전체 공소사실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거나, ③시간의 경과와 부정확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식으로 검찰의 주장을 옹호하며 지극히 편향된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오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판사들’이라는 제목의 주요 일간지 칼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재판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전 안산시장의 뇌물수수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이 ‘검찰의 주장 중 모순이나, 불일치나, 의문이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고, 피고인에 대하여는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며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재판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한 예를 들면서 ‘열 도둑 놓쳐도 억울한 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칼럼을 통해 제가 1심 판결문을 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저의 심정이 비단 내 자기편의적 사고의 소산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임석의 당초 진술 번복
제 사건의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임석의 진술이 본 2심 공판에서 상당 부분 바뀌고 있습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바뀐 것이라기보다는 사실대로 밝히고 있는 것이며, 그것도 핵심사항에 대해서는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주변사항만 눈치를 보며 진실을 밝히고 있어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로서는 임석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저도 막상 난생 처음 수감생활을 해보니 ‘형을 1년만 줄여주면 친구라도 팔며, 5년만 줄여주면 마누라라도 팔겠다.’는 감방의 속설이 실감이 납니다. 이제야 1심이 끝나고 추가 고발건도 있는 임석의 입장에서는 저 정도라도 진실을 밝히려고 애를 쓰는 것이 참으로 보기에 안쓰러웠습니다. 임석은 이 2심 법정에서 과거에 검찰과 1심에서 그렇게 진술할 수밖에 없었고, 또 진술을 바꾸는 이유로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① 그 당시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진술 한 것 같다.
② 사실 검찰에서 그런 증언을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관성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제가 그렇게 진술했다.
③ 제가 얘기하는 취지나 의도와는 다르게 진술된 부분들을 수정하고 그러기엔 저의 힘이 너무 미약했다.
④ 물론 제가 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다. 근데 제가 다른 차원으로 얘기하면 더 어떤 그런 부분에 대한 것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제가 수정을 요구하고 원하는 대로 작성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⑤ 공무원이라는 게 징계를 받고 그러면 장래에 씻을 수 없기 때문에 제3의 피해자는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서 총리실 이OO 실장이 하는 얘기에 맞는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⑥ 제가 죄책감도 느꼈기 때문에 이번 2심이 마지막 재판이고 해서 추정 내지 정확치 않은 진술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말씀드려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게 제 본분인 것 같아 말씀 드리는 것이다.
정말 어렵게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이 정도면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누구든 알 수 있는 게 아닙니까? 결국 검찰의 의도에 맞춰서 진술을 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임석은 왜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두려워하면서도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나마 그리고 일부나마 진실을 밝히려고 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지난 주 6월 20일 오전 재판에는 당시 중수부 2과장께서 지금은 CJ그룹 수사를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이 법정에 직접 나오셨습니다. 그 분을 보는 순간 제 마음이 철렁했는데, 임석은 오죽했겠습니까? 그 분이 왜 직접 나오셨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증인신문 날인 지난 6월 27일에 임석은 그 이전보다 많이 위축된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재판장님!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대검 중수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왜 하필 중수부가 제일 먼저 폐지되었겠습니까? 그만큼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저는 제가 폐지를 주장한 중수부 열차의 막차를 타고 있는 마지막 승객인 셈입니다.
이제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가급적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당초에 이번사건을 신문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이상득 씨를 수사 중인데 곧 저와 민주당 박OO의원도 수사할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해서 저는 언젠가 임석을 알게 되었는데, 2007년 대선기간 중에 그를 이상득 씨에게 소개시켜 준 사실 밖에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수사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제 수행 비서였던 김OO이 지방에 가 있다가 저의 이OO 보좌관에게 전화를 하여 ‘의원님은 걱정 안 하셔도 된다. 2008년 초에 3,0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그러면 그렇지’하고 있던 차에 대검 중수부에서 7월 4일이나 5일에 출두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궁금도 하고, 언론에서 하도 떠드니까 하루라도 빨리 결백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에 7월 4일에 출두하였습니다. 그리고 검찰조사 도중에 저의 혐의를 알게 되자 저는 ‘나는 뭔가 했더니, 그런 거였어요? 그렇다면 안심이 되네요.’라고 말했고, 검찰조서에도 그런 취지의 진술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겨우 그런 거였냐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결국은 유죄가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임석을 이상득 씨에게 소개한 것이 공범이 되다
먼저, 3억 공모부분입니다.
저는 임석을 이상득 씨에게 소개시켜 준 일이 죄가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습니다. 앞서 제가 이 일에 대하여 일종의 회피행위였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런 표현을 쓰게 된 배경을 잠깐 설명 드리겠습니다. 당시 캠프 외부에는 제가 캠프의 핵심실세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제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후보를 돕겠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저는 적당히 처리하거나, 이 정도면 중요한 인사다 싶으면 종교단체 등 외부직능 조직의 인사들을 주로 챙기고 계시던 원로분들에게 소개를 시켜주곤 했었습니다. 저는 당시 캠프 내부의 전략 및 기획과 관련된 일만 전담하고, 캠프 외부의 일들은 대부분 원로분들이 챙기셨습니다. 이를테면, 당시 정OO의원이 직능본부장을 맡았지만, 국내의 대부분 직능단체장들은 정OO의원보다는 이상득 씨를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상득 씨는 주로 종교단체를 비롯해서 직능관련 일을 도맡다시피 하셨던 게 사실입니다. 임석도 그런 과정에서 이상득 씨에게 소개시켜준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저의 전 직장인 총리실 후배를 통하여 알게 된 임석이 언젠가인지 이명박 후보를 돕고 싶다고 하기에 저는 통상적으로 그랬듯이 말을 자르고 이상득 씨를 소개시켜주면 어떠냐라고 했더니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러고 말았습니다. 검찰조서를 보면 임석이 제게 ‘이명박 후보를 돕고 싶다고 했다’고만 진술되어 있습니다. 검찰은 애초부터 저를 공범으로 몰고자 했기 때문에 검찰조서에 얼마든지 경제적 도움이니, 재정적 도움이니 하는 표현들을 기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표현이 기재되지 않은 이유는 실제로 임석 자체도 제게 그렇게만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임석이 그렇게 얘기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가 그 이상의 얘기를 할 여지를 주지 않고 이상득 씨를 소개시켜주겠다며 말을 잘랐기 때문입니다. 그 후, 저는 그 일을 차일피일 미루었으며, 아마 임석으로부터 몇 차례 더 채근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대화는 ‘이상득 씨 언제 소개시켜 줄 거예요?’, ‘미안해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하는 정도 이상이 전혀 필요치 않았습니다. 굳이 경제적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나올 여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이 법정에서도 임석은 당초 경제적인 취지의 얘기 정도도 없었다고 하다가, 나중에 계속 추궁을 당하자 얼결에 그렇다고 시인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구나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사건에서 김OO 씨는 김찬경으로부터 ‘피고인 이상득에게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도 만남을 주선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OO 씨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점 또한 고려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적법하게 하는데 왜 부담스럽게 생각했느냐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공무원 생활을 20년 넘게 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또 적법하게 하더라도 정치인들은 괴로움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친한 척 팔고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귀찮은 상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적법하게 처리해도 제가 믿는 사람이 아니면 저는 기본적으로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임석은 제가 그를 잘 모르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던 저는 소개시켜준 총리실 후배의 체면도 있고, 또 저렇게까지 하는데, 한나라당이 취약한 호남 출신인 임석이 대형 저축은행 회장이기 때문에 대선에 뭔가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에 임석을 국회부의장실에서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이상득 씨를 만나려면 직접 사전약속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행 비서인 김OO에게 ‘부의장님 언제 뵐 수 있는지 알아 봐라’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날도 임석을 바로 부의장실에서 만났기 때문에 사전에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임석에게 시간, 장소를 알려준 것도 당연히 김OO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임석회장이 돈을 준비해 해오는 것을 알면서도 소개시켜주려 했다면, 감히 약속장소를 국회부의장실로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임석은 평소에 어떤 식으로 하는지는 몰라도 ‘그날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일단 돈을 준비해가자’고 생각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검찰은 ‘이명박후보를 돕고 싶다’는 임석의 발언취지를 재정적인 도움으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저는 1심법정에서 ‘정확하게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지만, 임석 입장에서 여러 가지 도움이라는 게 있을 수 있고, 설령 그 말을 재정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치더라도 특별당비, 후원금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돈을 받으면 문제가 없는 것이며, 저는 어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이상득 씨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한 것이다’라고 진술 했듯이 당시 제가 임석의 발언 취지를 반드시 재정적인 도움으로 이해했다고 단정 할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제 진술은 기억에 의한 진술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지금의 생각을 얘기한 것이지, 그때 상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검사나 변호인이나 판사님께서 물어보면 ‘그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대답을 한 것이지 제가 그것을 시인한 기억은 없습니다. 이를테면 이OO은 1심 법정에서 ‘임석한테 경선 전에 돈을 주는 게 낫겠다.’라고 얘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재정적인 도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두언 의원이 훌륭하고 임석도 훌륭하기 때문에 알고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소개 시켜주었습니다.’라고 얘기하는데 저는 이렇게 얘기 하는 게 더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럴 수도 있겠으면 ‘그럴 수 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대답한 것이지 시인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설령 임석이 당시에 경제적인 도움이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손 치더라도, 제가 듣기를 원하지 않는 얘기를 할지 모르니 제 귀를 막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유를 들어 ‘결국 공모의 정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당시 대선의 핵심적인 지위에 있던 저는 지금과 같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① 가급적 아무도 만나지 말아야 하고, ② 누굴 만나더라도 가급적 아무 얘기도 듣지 말아야 하고, ③ 나아가 무슨 얘기, 특히 경제적 운운의 얘기를 들으면 절대로 아무도 소개시켜주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거라는 게 결국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사람장사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제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자면, 저는 임석으로부터 이명박후보를 돕고 싶다는 얘기 이상을 듣지 않았으며, 그런 상태에서 이상득 씨를 소개시켜준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하늘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검찰의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
최초의 검찰조서를 보면 검찰은 3억 부분에 대해서 저를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서 당초에 3가지 장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①임석이 사전에 돈 얘기를 했다. ②임석이 있는데서 이상득이 정두언한테 권OO에게 돈을 전하라고 했다. ③돈을 정두언 차에 실을 때 정두언이 있었다.
그런데 ③번은 나중에 김OO 진술을 들어보면 너무 신빙성이 없는 얘기입니다. 제 카니발은 뒤 트렁크에 그런 것을 실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임석이 대질신문 때 ‘그때 정두언의 인기척이 있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카니발은 뒤에 트렁크 문을 열면 제 머리가 딱 보입니다. 너무 말이 안 되니까 ①, ②번의 신빙성에까지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아서인지 나중에 검찰은 ‘임석이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물러섰습니다. ①번 사전에 돈 얘기가 없었다는 것은 임석이 이 법정에서 어렵게나마 이미 진술 했고, ②번 이상득 씨가 임석 앞에서 제게 권OO에게 돈을 전하라고 했다는 얘기는 현역 정치인들이 들으면 모두 소가 웃을 소리라고 할 정도로 정치권의 상식으로는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입니다. 임석은 2011년 말에 제게 이상득 부의장이 권OO에게 전화하는 걸 들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권OO 얘기를 하길래 어떻게 권OO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이상득 부의장님이 권OO한테 전화하는 것을 제가 들었거든요’라고 저한테 분명히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의 변호인이 임석한테 물어보니까 임석은 이 법정에서 ‘당시 이런 말씀을 전혀 안 드렸는데 제가 그런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제가 정의원님께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시인하기도 했습니다. 제 추측은 임석이 처음 검찰진술에서 저에게 얘기한대로 진술을 했는데, 완전하게 저를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서 제가 있는 자리에서 얘기를 한 것으로 조작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③번 돈을 차에 실은 경위와 관련해서 수행비서 김OO이 임OO로부터 임석이 뭘 주면 권OO 의원에게 전하라는 지시 내지 부탁을 받았다는 사항은 이미 김OO, 임OO 등의 증인신문을 통해서 보셨습니다. 임OO는 1심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면 될 것을 굳이 김OO을 잘 모른다며 ‘도둑이 제 발 저린’ 식으로 얘기를 했다가, 나중에 김OO의 결혼식 때 낸 그녀의 축의금 봉투가 나오는 바람에 거짓말한 것이 들통이 났습니다. 사실 임OO는 제가 잘 압니다. 김OO을 몹시 예뻐했습니다. 그렇게 동생처럼 예뻐하던 김OO을 ‘김OO인가, 김△△인가’라는 식으로 진술을 하길래 저는 굉장히 놀랬습니다. 임OO는 본인이 떳떳하지 못하니까 거짓말까지 해가며 과잉부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재판정
재판과정에서 제가 참으로 답답했던 부분 중의 하나는 검찰이나 상피고인 변호인들이 임석에게 ‘돈 전달된 것을 왜 확인하지 않았느냐’, 김OO에게 ‘정두언이나 임OO 등에게 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질문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상득 부의장이 권OO에게 돈을 지원하려면 당연히 당사자끼리 통화를 하지요. 그러면 심부름하는 사람은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무엇을 보고하고 확인하겠습니까. 만약에 배달사고가 나면 권OO이 왜 안 오냐고 해서 금방 들통이 날 텐데 그걸 굳이 보고하고 확인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동대가 있다고 하는데 김OO이 전달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A4 박스입니다. 아마 A4 박스는 여의도 사무실에 하루에도 수십 통씩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 그게 기동대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더구나 김OO이가 저에게든 누구에게든 제가 이러이러 해서 저러저러 했습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왜냐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불안해집니다. ‘이 친구 봐라. 왜 이렇게 아는 척을 하지? 이 친구 좀 이상한데…’ 라고 의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언행으로 인하여 인간적인 신뢰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김OO이 이상득 부의장실과 당시 대선의 실질적인 회계책임자였던 김XX 씨와의 사이에서 수차례 돈 심부름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돈 심부름을 김OO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의 사실 확인서는 1심에 제출한 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김OO이 그런 심부름을 한 것을 1심 재판 중에 처음 알았습니다. 만약 그 당시 김OO이 저한테 일일이 그 사실을 보고해서 제가 알았다면 저는 당장 중단시켰을 것입니다.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는 친구에게 그런 일을 시키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2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옆에 있었던 유일무이한 현역 정치인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시내 48개 지구당 위원장들 중에 이명박 후보를 돕는 위원장은 저 혼자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전부 저한테 말했습니다. 이명박이 지는 선거인데 왜 거기 가서 돕냐며 저희 집사람까지 말렸습니다. 그런데 결국 저희가 이겼습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도 이명박 후보를 돕는 현역 국회의원은 2006년 말까지 유일하게 저 혼자였습니다. 이상득 씨도 드러내놓고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 당시까지만 해도 이상득 씨는 저의 후원회장이자 아버지요, 큰형님 같은 존재였습니다. 한마디로 이명박 대통령 후보, 이상득 씨, 저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김OO은 인사성이 밝고 성격이 좋아서 당시 대선캠프에서 인기가 최고였습니다. 전부 ‘OO아, OO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상득 부의장실 보좌진들과는 당연히 한 식구처럼 지냈을 때입니다. 그것은 부의장실 식구들이 더 잘 알 것입니다. 김OO이 그런 심부름을 하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는 게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저는 전략기획 총괄팀장이었기 때문에 캠프 아니면 당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지 차를 탈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상득 씨가 얘기한 것처럼 김OO은 기사가 아니라 캠프 요원으로 여기저기 심부름 다니고 사람들이 부르면 가고 그랬지, 저를 운전 할 일은 퇴근할 때 집에 바래다주는 정도였습니다. 그런 현실은 잘 모르니까 참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제가 소개시켜준 사람으로 인하여 이상득 씨가 지금 고통을 받고 계시는 점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 분도 구경도 못해본 돈 때문에 이런 고충을 겪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득 씨가 무죄가 되려면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상피고인 변호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제가 파렴치한이 되어야 합니다.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이 안되는 게 제가 처음부터 임석에게 ‘너 도대체 왜 그러냐’ 물었을 때 돈 얘기를 하면 그냥 제가 받으면 되지, 복잡하게 일을 만들어 가로채겠습니까. 변호인들도 저를 그렇게 생각해서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도 답답하니까 그렇게 얘기를 한 것일 겁니다. 제가 파렴치한이 되던가 아니면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저부터 시작해서 김OO, 임석, 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거짓말을 하려면 서로 맞춰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실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까 유세지원단 얘기가 나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예비등록을 했기 때문에 이미 선거는 공식적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유세지원단도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도 피고인이니까 말은 못하고 답답하게 앉아있는 것입니다. 사실 전혀 다릅니다. 제가 너무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공식 선거 운동 기간 이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며, 엉뚱한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천만 원 수수 건의 공소시효 조작
다음으로 나머지 개인부분 3건에 대해서는 워낙 사실무근의 실체가 없는 사안들이기 때문에 간략하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3000만 원 선물세트 부분은 임석과 제가 만난 횟수, 만난 시기, 같이 만난 사람, 선물세트를 전달한 시기 및 방법 등 어느 한 가지도 분명한 게 없이 오락가락 합니다. 심지어 임석은 이 법정에서 둘만 만났을 때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합니다. 완전히 헷갈립니다. 저는 선물세트를 건네준 시기에 관한 검찰의 조사내용이 제 사건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임석에 대한 검찰의 3회 진술조서를 보면, 검사가 법인카드 내역을 보여주며 2007년 9.12, 7.3, 6.26, 6.18이 있는데 어느 거냐고 묻자, 임석은 한나라당 후보가 확정되기 전에 돈을 준 것은 명확하게 기억이 난다고 하며 2007. 9. 12은 아닌 것 같다고 진술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남은 게 7.3, 6.26, 6.18이 남지 않습니까. 법인카드만 썼다고 하더라도 현금을 쓰거나 다른 카드를 쓰거나 다른 사람이 낸 경우를 다 제쳐놓고 7.3, 6.26, 6.18이 남는데, 이 조사를 한 날짜가 2012. 6. 23입니다. 이미 시효가 지난 것입니다. 조사는 했으나 쓸모없는 물건이 나온 것이지요. 그날 전후로 아마 검찰 내부에서는 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상상이 됩니다. 그리고는 검찰은 2012. 7. 2에 총리실 이OO을 불러 조사를 하면서 경선 후에 만났다는 그의 진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코자 합니다. 임석은 이 법정에서 이OO의 징계문제 등을 걱정해서 그의 진술에 동의해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지금 공소시효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검찰이 이처럼 짜 맞추기 수사를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임석이 왜 이OO의 신상문제에 대해 걱정을 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잠깐 설명드리겠습니다. 임석과 이OO은 오래된 절친 사이입니다. 이OO은 제가 동생처럼 아끼던 제 전 직장인 총리실의 후배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이 터지고 난 직후 이OO의 태도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OO으로부터 먼저 ‘형, 큰일 났어. 어떻게 됐어?’라고 걱정하는 전화가 와야되겠지요. 그런데 연락은커녕 제 연락조차 안 받는 것입니다. 연락을 해달라고 해도 안 해주고 연락두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이OO이 무슨 곤란한 상황에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직감을 했지요. 곤란한 상황이라는 게 결국 임석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임석은 이OO의 진술에 맞추어주지 않고 부인하면 이OO이 곤란해질 거라고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OO은 이미 공무원으로서는 최고직위인 차관급으로 승진해 있습니다. 임석이 더 이상 이OO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검찰 측 증인도 부인한 1억 수수
둘째, 2008년 총선 무렵의 1억 부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임석은 그의 운전기사 주OO과 진술이 너무 많이 다릅니다. 임석은 당초 1회 갔다고 했다가 이OO과 함께 간 사실이 드러나자, 혼자 1회 더 갔다고 한 반면에 주OO은 계속 1회 갔다고 합니다. 주OO은 따라간 차가 검정색 카니발이라고 거듭 진술한 반면에 임석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누구의 귀띔을 받았는지 은회색, 하늘색이라고 합니다. 임석은 자신의 차를 앞에 댔다고 한 반면에 주OO은 뒤에 댔다고 하면서, 임석이 A4박스를 차에 둔 채 내렸고, 돈을 전달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궁박한 취지에서 인센티브 구조 하에 있던 임석의 진술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주OO의 진술 중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합니까. 더구나 주OO은 1심에서 검찰 측의 증인으로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주OO은 1심에서 왜 당시 검찰에서 그런 식으로 진술을 했냐고 하니까 ‘임석 회장이 이미 진술했다고 해서 제가 진술을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증언합니다. 주OO도 가급적 임석의 진술에 맞추려고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임석이 저희 사무실에 갔다거나, 차를 따라 갔다거나 하는 큰 부분에 대해서는 주OO도 가급적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도저히 안 맞는 것입니다.
셋째, 2012년 총선 당시 1천만 원 부분입니다. 임석은 이와 관련해서도 3차례의 진술내용이 다릅니다. 결국은 돈을 돌려주기에 놓고 나왔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다시 돌려주었거나 많은 돈도 아니니 후원금처리를 하였을 것입니다. 당시는 고액후원금도 많이 들어왔었고 후원금 한도에서도 여유가 있었을 때입니다. 이 자료는 1심 재판부에 이미 제출을 했습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이△△ 의원은 임석으로부터 1,000만원 인가를 받아서 후원금처리 했다고 지난 주 그의 재판에서 증언했습니다.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 변호인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비서실 과장 고OO이 1억 원 박스를 준비했다는 진술을 토대로 저에게 1억 원을 전달했다는 것인데 이△△ 재판이나 박△△ 재판이나 제 재판에 고OO의 박스가 공통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변호인이 관련해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이 부분은 재판장님께서 유심히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변양호 신드롬
존경하는 재판장님! 줄이고 또 줄였는데도 불구하고 얘기가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모두에서 언급한 변양호 씨는 그의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지금 우리 곁에 연원영 사장이 안 계신 것도 슬프지만, 우리사회에 특히 관가에 ‘변양호 신드롬’이란 얘기가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고 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변양호 신드롬’이란 공직사회에서 ‘무언가 잘해보려고 개혁적인 일을 하다가는 꼭 뒤끝이 안 좋다. 그러니 대강 안전하게 가자’는 의미로 쓰이는 말입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는 우리 정치권에서 그래도 할 말은 하고, 여당 내에서 쓴소리를 마다않는 국회의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의 언론기사나 사설에 ‘여의도 정치가 사라졌다’, ‘여당은 눈치보기만 한다’ 등등의 지적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실제 지금 여당에서 소장개혁파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동료의원들도 제게 면회를 와서는, 물론 덕담이겠지만, 정두언이 없으니 여의도가 너무 조용하다고들 합니다. 제가 과대망상인지는 모르겠으나 혹여나 제 사건으로 인하여 정치권에서 ‘정두언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통용된다면, 그것은 저 개인의 불행을 넘어 정치권 전체, 그리고 국가 전체에 크나큰 손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재판장님께서 이 점 깊이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살다보니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억울하게 누명을 쓸 때와 나를 대적하는 누구를 원망하며 증오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통해 거듭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이 고난이 축복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또 저를 이런 궁지에 몰아넣은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얼마 전 구치소에서 이름도 모르는 어느 교도관이 지나가는 제게 흰 종이로 곱게 싼 네잎 클로버를 주고 가셨습니다. 저는 순간 천사가 왔다 갔나 생각하며 망연히 서 있었습니다. 지금 저의 가족과 지인뿐 아니라 국회에 있는 동료들과 지역구에 있는 주민들이 제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뻐서라기보다는 제게 부여할 사명이 그만큼 많아서 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재판장님께서 공정하고 현명하게 판단하실 수 있도록 지혜와 명철을 주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의 결백을 밝혀주시면 반드시 ‘용기와 소신을 가진 괜찮은 정치인’이 되어서 꼭 보답하겠습니다. 두서없는 저의 얘기를 경청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 7. 1.
정두언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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