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아재캐스트 > 덕후

[스덕일기21] 제동신, 찬양해!

진짜 프로선수, 그곳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존재

2016.12.21(Wed) 08:50:16

세상엔 식지 않는 만년 떡밥들이 많다. 찍어 먹기와 부어 먹기, 짜장과 짬뽕, 양념 치킨과 후라이드 치킨 등등 말이다. E-스포츠에도 만년 떡밥이 하나 있다. 한 종목의 우승자가 다른 종목에서도 잘할 것인가가 그 주인공이다. 스타크래프트1 게이머가 워크래프트3와 스타크래프트2에서도 성공할 것인가로 수많은 팬들이 키보드 배틀을 떴다. 스타크래프트1 우승자가 스타크래프트2까지 우승한 경우는 크게 없으나, 성공한 수많은 스타크래프트2 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1 연습생 출신이니 떡밥의 결론은 아직까지 미정이다.  

 

사실 택뱅리쌍의 스2 성적은 좋지 않다. 사진=eSportsTV 유튜브 캡처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스타크래프트1 우승자 출신 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2도 우승한 경우는 드물다. 최종병기 이영호의 개인리그는 프로리그에 비해 초라했으며, 김택용은 스타크래프트2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판을 떠났다. 송병구는 코치로 더 크게 성공했다. 임요환과 홍진호 그리고 이윤열 등 올드 게이머 역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동은 달랐다. 스타크래프트1에서 노력의 아이콘이던 그는 스타크래프트2 월드 파이널 준우승과 지역 대회 우승을 거두는 등 단연코 스타크래프트1 우승자 출신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다.  

 

스타크래프트1과 2 모두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나 처음은 미약했다. 2006년에 데뷔한 이제동은 개인리그에서 맨날 떨어지고 프로리그에서 승수를 쌓는 프로리그 전용 게이머였다. 실제로 2006년 이제동의 개인리그 전적은 대부분 PC방 예선이었으며 쌓은 승수는 프로리그에 국한됐다. 개인리그 1승을 프로리그 1승보다 높게 쳐주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이제동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각성은 순간이었다. 

 

프로리그만이 전부였던 이제동의 전적. 사진=와이 고수 캡처


이제동은 ‘천하제일 스타대회’라고 불린 2007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처음으로 본선을 밟은 2007년 EVER 스타리그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더니 송병구를 3:1로 원사이드하게 밀어내고 우승했다. 첫 진출에 바로 우승을 한 로열로더가 됐다. 그때부터 이제동의 우승은 진행됐다. 2008년 곰TV MSL 시즌 4, 아레나 MSL 준우승, BATOO와 박카스 스타리그 우승 등 그의 기록은 역사적이었다. 

 

화승이 해체되고 제8 게임단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으로도 최고의 노력을 다한 그는 스타크래프트1 리그가 마무리되자마자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갔다. 2012년 연말까지 그의 스타크래프트2 성적은 처참했다. 예선 통과도 못했다. 2012년 12월 초 북미 EG팀으로 넘어간 이제동은 절치부심해 북미에 김치 게이머의 위엄을 몸소 보여줬다. 

 

EG 소속 당시 이제동 포스터. 사진=teamliquid 홈페이지 캡처


비록 스타크래프트1에서 보여주던 폭군의 모습은 아니었으나 북미 최고 게이머 중 한 명이었다. 최지성과 최성훈과 고석현 등 한국에서 넘어온 게이머들과 함께 결승에서 치열하게 대결했다. 2013년 WCS 글로벌 파이널까지 진출하며 올드 팬들과 신규 유입된 팬들을 가리지 않고 감동을 주었다. 스타크래프트 갤러리, 피지알21, 포모스 등 모든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가 이제동을 연호했다. 비록 4연 준우승으로 스타크래프트2의 홍진호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제 이제동은 경상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군입대를 기다리는, 흔한 아프리카 스타크래프트1 BJ가 됐다. 지금의 이제동은 예전의 폭군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2에 익숙해져 스타크래프트1 뮤탈 컨트롤은 녹슬었고, 최신 빌드도 쓰지 못한다. 심지어 아마추어 선수에게 아프리카 스타크래프트 리그 지역 예선에서 패배했다. 저그임에도 불구하고 프로토스에게 질 때가 많고, 뮤탈리스크 컨트롤이 나빠 선러커를 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콩두 소속의 이제동. 사진=콩두 컴퍼니


그렇지만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기욤 미소의 소설 제목처럼 그곳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존재다. 은퇴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게임을 해주고 그를 연호한 팬을 잊지 않는 진짜 프로 선수다. 2002년 월드컵을 본 팬들이 안정환을 보며 그때를 기억하듯, 그의 플레이를 보며 예전 스타크래프트1 전성기를 기억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오래 있어주면 한다. 아프리카든, 트위치든, 오버워치든, LOL이든, 스타크래프트1이든, 스타크래프트2든 간에 그가 어디서나 프로게이머로서 있어주면 좋겠다는 올드 팬의 작은 소망이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


[핫클릭]

· [스덕일기20] 정의구현의 다크나이트 이성은
· [스덕일기17] 미친 저그, 올드들에게 비수를 꽂다
· [스덕일기16] 미남 게이머의 족보
· [스덕일기15] 마재윤을 꺾은 ‘택신’ 김택용
· [스덕일기13] 마재윤의 집권
· [스덕일기8] 최연성, 괴물 탄생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