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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tar] ‘세상을 관찰합니다’ 시인 오은 인터뷰

단어를 고르는 재치, 세상을 응시한 시에 젊은층 환호…“아직도 백지를 보면 아득”

2016.12.18(Sun) 12:47:50

“겁이 많아서 여행보다는 산책이 좋아요. 산책하면서 세상을 관찰하는 것도 좋고.”

 

‘시의 봄’이 돌아왔다. 한동안 대중에게 외면받던 시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한 대형서점이 집계한 올해 한국 시집 판매 증가량은 무려 505.7%다. 이러한 인기의 중심에는 청년시인 오은(35)이 있다. 페이스북은 더는 친구신청을 받지 못할 정도다.

 

두 달 전까지 ‘다음 소프트’에서 ‘오 대리’로 일했던 오은은 군중 밖이 아닌 군중 안에서 세상을 응시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는다.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꿈을 꾸며 지내려고 합니다’라고 적은 사직서대로 지금 그는 집필활동, 강연 등으로 지난날과 다른 인생을 걷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시인 오은을 만났다. 

 

오은은 요즘 젊은층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사진=비즈한국 DB


 ―이름이 참 예쁘다. 본명인가.

“그렇다. 어렸을 때 형제들이 모두 ‘진’자 돌림인데 나는 왜 ‘오은’이냐고, 혹시 주워온 거 아니냐면서 사촌 집에 갈 때마다 울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금(金)으로 하면 오금 저리고 동(銅)으로 하면 (오동) 나무이니 은(銀)으로 했다’고 하시더라. 가끔은 이 이름이 단어를 가지고 이리저리 비틀어보기를 좋아하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2000년, 스물이라는 나이에 등단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원래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데 대학 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처음 독서실을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그게 못 견디게 지루해서 그런 마음을 끄적였다. 근데 그걸 읽은 형이 재미있었는지 나 몰래 여기저기에 글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주최 측에서 전화가 왔기에 “아니 내가 그런 글을 썼는지 어떻게 아세요?”라고 따졌다(웃음). 등단이라는 단어가 뭔지도 몰라 등단이 뭐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시상식에서 심사위원분이 ‘등단이 뭔지도 모르는 애가 등단했다’고 하셨다(웃음).“ 

 

―시인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그저 부러운 얘기일 거 같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등단한 것이 어떨 때는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이 ‘시인이 되고 싶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애쓰는데 나한테는 그런 게 없었다. 시인으로서의 자의식도 없었다. 그걸 일깨워 준 사람이 바로 김언 시인이다. 블로그에 올린 영화 리뷰에 그 형이 댓글 단 게 인연이 되어 그가 발간하던 ‘현대시’에 내 시 몇 편을 실게 되었다. 시인 감수성을 가지고 글을 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2009년, 사고가 크게 나 병원에 원했을 때 형이 ‘미당 문학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는데 다리를 절면서 축사하러 갔었다(웃음). 그만큼 애틋하고 중요한 사람이다.” 

 

―가장 최근에 발간한 세 번째 시집 ‘유에서 유’는 어떤 책인가.

“기성세대인 오은이 지금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젊은이들에 대해 쓴 시집이다. ‘서바이벌’, ‘졸업시즌’ 등은 젊은 친구들의 대화를 관찰하며 느낀 ‘헬조선’을 반영했다.”

 

―왜 청년들에 주목했나.

“나보다 힘든 대상들에 마음이 간다. 내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까 그 대상이 젊은 친구들이었다. 청년실업, 아르바이트 등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참 많이 보였다. 그들에게는 ‘생활’이 아닌 ‘생존’만 있을 뿐이다. 생활이라는 건 내가 누릴 것도 있을 때 가능한 거 아닌가.”

 

―많은 사람이 시인 ‘오은’에 대해 ‘단어를 참 잘 가지고 논다’고 말한다. 비결이 있나.

“단어를 사랑한다. 어렸을 때부터 국어사전을 매일 봤다. 사전을 딱 펼쳐서 ‘아지랑이’처럼 발음을 했을 때 ‘말 맛’이 있는 단어를 그 날 하루 동안 꼭 써먹어 보려고 했다. 맥락에 맞던 그렇지 않던 발설을 했을 때 내 단어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공부라기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내가 쓰는 시도 스스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 보니 단어가 단어를 불러들이는 글이 많다.”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뭔가.

“돌이켜보면 블로그 닉네임으로 만들었던 ‘불현듯’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을 뒤흔들어버렸다. 불현듯 시인이 되었고 불현듯 사회학과에 갔고 불현듯 큰 사고를 당했고 불현듯 빅데이터 회사에 갔고 불현듯 사표를 던졌다. 평소의 나는 되게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근데 큰 결정들은 불현듯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결단력이 발휘되었다. ‘불현듯’의 어원이 또 뭔 줄 아나. ‘불켠듯’이다. 단어 뜻도 예뻐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단어다.”

 

‘다음 소프트’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맡았던 그는 두 달 전 회사를 그만뒀다. 사진=오은 페이스북 캡처


 ―회사원으로만 살아가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어떻게 회사 다니면서 시집을 냈나.

“제대로 병행하지 못했다. 입사할 때는 ‘나는 일을 잘할 테니까 칼퇴근 할 거고 집에 와서 시를 쓸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엑셀부터 난관이었다. 초기에는 일을 못 해서 야근했고 나중에는 일을 꽤 잘해서 야근했다. 야근을 달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도저히 안 될 거 같아 매주 일요일을 글 쓰는 날로 정했다. 그래서 친하지 않은 이상 결혼식도 잘 가지 않았다. 또 매일 자기 전 5분 동안 한글 창을 띄워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일요일에 글을 쓰는 자신을 상상했다. 자기암시를 한 거다. 패턴이 만들어지니까 그래도 최소한 일요일마다 글을 쓰게 되었다.”

 

―최근 퇴사한 회사에서 했던 일이 ‘빅데이터 분석’이다. 저녁에는 시인으로 감성적인 글을 썼다. 결이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어떻게 병행했을까 싶다.

“내가 했던 일은 기업이 의뢰한 질문에 대해 데이터를 찾아 거기서 인사이트를 얻고 그것을 그 회사에 전달하는 것이었다. 분명 이성적인 분야지만 시와 유사한 부분도 많다. 빅데이터 분석이든 시 쓰는 일이든 세상을 관찰해야 한다. 나는 평소에도 풍경, 사람들 대화, SNS 글 등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반면 두 일이 다른 부분도 많아서 더 좋았던 거 같다. 만약에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온종일 문학을 접했다면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거 같다.” 

 

―‘오 대리’는 어떤 사람이었나.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물론 직장에서는 ‘직장인 오은’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면을 썼다. 적당히 처세술도 있고 웃겨주지만 예민함은 좀 덜 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는 시인 오은이기 때문에 최대한 비전 있어 보이는 가면을 쓰고 나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맡은 수많은 역할에 맞게 아침에 가면을 쓰고 나온다. 시를 쓰는 시간이 좋은 건 그런 가면들을 훌러덩 벗어 던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구린 구석까지 응시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모르고 어떻게 남이 공감을 하는 글을 쓸 수 있겠나.” 

 

―SNS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정보를 얻고 공유하는 가장 빠른 창구다. 물론 소통도 의미 있다. SNS는 나의 최상의 버전을 전시하는 공간일 수 있지만 그런데도 진심이 전해질 때도 있고 이를 통해서 독자들의 존재들을 알 수 있으니 놓고 싶지는 않다. SNS를 통해 대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이 과제로 제출해야 하는 인터뷰 요청이 많이 오는데 나는 이런 인터뷰에 가장 최선을 다한다. 그 아이들에게는 문인이 꿈이니까 대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질문 중에 ‘오은에게 시란?’처럼 추상적인 게 참 많다(웃음). 잘해준다고 소문이 났는지 요청이 점점 많아진다.”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지만 지민이의 생일시를 쓰면서 그는 다시 펜을 잡을 힘을 얻었다. 사진=오은 페이스북 캡처

 

―SNS를 보면 사회현상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 거 같다. 특히 세월호 사건에 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날 ‘한국상담대학원’이라는 곳에서 진은영 시인의 요청으로 특강을 하고 있던 중 세월호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고 나오니 아니었다. 너무 충격받아서 은영 누나랑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헤어졌다. 한동안 시뿐만 아니라 어떤 글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졌다. 세월호는 극복하지 않으면 글을 다시 쓸 수 없을 정도로 큰 무기력을 가져다 준 사건이었다. 얼마 전 문단계 성 추문이 붉어지면서 지금도 비슷한 부분이 좀 있다. 이쪽 세계가 워낙 좁아서 (문제가 된 사람들이) 모두 동료·선배·후배인 사람들이다. 내 앞에서는 정말 깔끔하고 신사적이었는데….”

 

―세월호 사건의 충격을 극복하고 글을 다시 쓰게 된 계기가 있나.

“‘치유공간 이웃’의 이명수·정혜신 대표가 진행하는 ‘생일시’를 쓰면서부터다. 생일시는 세월호 사건으로 사망한 아이들의 생일이 돌아올 때 그 아이의 목소리로 엄마·아빠에게 말하는 시다. 그런데 처음엔 죽음 이후를 모르는 내가 무조건 ‘여기서 잘 지내요’라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글을 쓰는 것이 참 힘들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시를 읽으며 감동하고 오히려 슬픔이 해소된다고 하셔서 열심히 썼다. 어제의 흐름이 끊기면 안될 것 같아 2주 동안 매일 썼다. 나는 지민이라는 아이를 맡았는데 다행히 읽으시면서 굉장히 많이 우시면서도 지민이가 잘 있는 거 같다고 행복해하셨다고 하더라. 그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가라앉다’와 같은 표현을 쓸 때 무조건 반사처럼 그 사건이 떠올라 깜짝 놀란다.”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퇴사하고 나서 여러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현재 그중 한 곳에 가기로 한 상태다. 지금까지 한 일과는 많이 다른 일이라는 점이 끌려 감히 해 보겠다고 했다. 직업은 경제적인 부분을 충족시켜줘야 하는 거라고 보기 때문에 내게 시인은 직업이라기보다 정체성이다. 바람은 우선 시를 잘 쓰는 거다. 아직도 백지 앞에 서면 아득해진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것도 쓸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자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불가능성의 공간이다. 갑자기 시를 다 알아버리게 된다면 아마 시를 더는 쓰지 않을 거다. 시 창작 강의를 할 때도 나도 시를 잘 모르겠으니 우리 같이 찾아보자는 식으로 말한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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