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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가 하루아침에 학자로?…전경련 딜레마

해체도 쉽지 않아 해리티지 같은 연구재단화 제기되지만 현실적 어려움 산적

2016.12.12(Mon) 23:23:31

“우리가 연구재단을 표방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헤리티지재단처럼 가나.” 

 

지난 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회원사 임원들이 모인 만찬 자리에서 성토가 이어졌다. 전경련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자 헤리티지재단이나 후버연구소 같은 연구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들 재단은 미국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외교·안보·경제·사회 문제 연구소다. 전경련 산하에도 한국경제연구원과 자유경제원 등의 연구단체가 있다. 그러나 전경련 산하기관은 행동 중심적인 데 비해 미국의 재단·연구소는 학술적 정책만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재계 총수들이 손을 들고 있다. (손든 사람 순서대로 왼쪽부터)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국정농단 사태로 1961년 설립 이후 최대의 고비를 맞은 전경련. 국민에게 사과하고 사태의 재발방지를 막겠다고 약속했다. 어떻게든 해체를 막고 생존하겠다는 뜻이다. 한국의 가장 큰 경제 로비 단체로서 그간 입법·사법·행정·언론을 상대로 활약해 온 점을 고려하면, 600여 회원사로서는 전경련 해체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크게는 법인세 인상 저지와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도입, 작게는 퇴직금 공제제도 축소 등의 입법 활동에 관여해 왔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6일 국회 청문회에서 “전경련을 헤리티지재단처럼 변경하고, (나머지 조직은) 친목단체로 남기는 게 제 의견”이라며 해체 여론을 막아섰다.

 

해체해서는 안 될 이유로 ‘돈’ 문제도 있다. 전경련의 자산은 3600억 원, 부채는 3400억 원이다. 전경련은 회계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산한 수치다. 만약 전경련이 해체된다면 법에 따라 부채를 청산하고 남은 자산은 모두 국고로 환수된다. 전경련이 회원사 회비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엄연히 기업들의 자산. 전경련으로서는 이 돈을 국가에 헌납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정부가 민간 기관을 강제로 해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조직의 역할 변화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연구기관으로 성격을 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모이고 있다. 이런 의견에 전경련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역할’이다. 전경련은 정권의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사업적 이익을 챙기는 어디까지나 로비단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킨 5·16 쿠데타 이후 정부-기업 간 소통기구로서, 대기업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정부의 요청사항을 접수, 이행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1960~1970년대 성장집중형 경제 모델에 부응하며 한국 산업화에 기여한 측면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 모금,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마련,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세풍사건’ 등을 일으켜 정경유착의 본류라는 지적을 받는다. 최근에는 어버이연합에 집회 참가비 등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 전경련이 연구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데 대해 내부적으로 불만이 적지 않다. 연구 역할만 할 거면 전경련의 존립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가장 큰 회원사인 삼성전자가 탈퇴를 선언했음에도, 나머지 회원사의 이익 신장을 위해 조직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6일 국회 청문회에서 “전경련을 헤리티지재단처럼 변경하고, (나머지 조직은) 친목단체로 남기는 게 제 의견”이라고 밝혔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특히 재계에 직접적인 연관이 적은 정치·외교·안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재계가 거액의 회비를 낼지도 미지수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조직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법인세 인상 등 민감 사안을 전경련·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총대를 메고 뛰어준 측면이 있다”며 “조직 정체성이 바뀌면 전경련에 대한 회원사의 입장도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능력의 문제도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황금기를 보낸 헤리티지 재단은 1995년부터 매년 ‘세계 경제자유지수’를 발표하고 있으며, 연구원 수만 150여 명(2004년 기준)에 달한다. 현재 전경련 전체 직원 수는 물론, 한국경제연구원(50명)보다도 많다. 

 

헤리티지 재단은 레이건 대통령 당선인 시절 3000건에 달하는 ‘리더십을 위한 위임령(Mandate for Leadership)’을 제안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중 60% 정도를 정부 정책으로 채택했다. 전략방위계획(SDI) 이론 등 다수의 미국 외교·안보 전략이 헤리티지 재단에서 시작됐다. 과연 전경련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실적인 능력의 부족과 실익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임원 등 회원사 고위직의 친인척이 전경련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진 점도 걸림돌로 꼽힌다. 전경련의 조직을 축소하거나 변형하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재계 관계자는 “임원이나 오너 친인척이 전경련에 채용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 가장 피부에 와 닿는 해체 불가의 이유”라며 “개혁을 위해 범정부 기구를 출범시키거나, 시민사회단체에서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전경련 해체나 성격조정 논의는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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