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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노포열전] 노가리골목의 시조, 을지로 오비베어

2016.12.12(Mon) 09:59:49

1933년,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작년 경성부 내에 맥주 소비량은 전 조선의 3할인데 생맥주준 140석, 병맥주 4만 1000상자(후략).”

식민지 시기의 일이다. 경성은 지금의 서울이다. 생맥주 준(樽)은 요즘 말로 ‘케그’에 해당한다. 대용량의 나무통을 말하는 듯하다. 140석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상당량이 ‘삐루호루’(비어홀)에서 팔렸던 것이다. 

 

생맥주는 6·25 전쟁 후, 대한민국이 새로 건설되던 시기에도 여전히 팔렸다. 생맥주 광고가 신문에 더러 등장한다. 생맥주는 병맥주와 달리 더 생생한 느낌이 있어서 전문점에서 팔렸다. 70년대에는 젊음의 상징처럼 되었다. 종로와 관철동 일대에 생맥주 전문점이 성행했다. 

 

생맥주가 대중의 술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의 일이다. 오비맥주에서 염가형 ‘오비광장’을 출시하면서 체인형태의 업장을 늘렸다. 싼 안주과 생맥주를 보급했다. 을지로 생맥주 야장(夜場), 노가리골목의 산 증인이자 시조인 ‘을지로 오비베어’가 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보통 그냥 ‘을지로 노가리집’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이제는 노가리를 파는 집이 여럿이 되었고, 골목 자체가 명물이 되었다. 이 집은 1980년 12월 문을 열었다. 창업주 강효근 옹의 말이다.

 

1980년 12월에 문을 연 을지로 오비베어와 창업주 강효근 옹. 최근 이 집은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때 맥주 한 잔에 380원, 안주는 일괄로 100원이었어. 김, 땅콩, 어포류지. 모두 오비맥주 본사에서 공급했어. 근데 노가리가 주 안주가 된 건 사연이 있어. 공정거래위에서 안주를 일괄 공급하고 파는 건 법 위반이라고 했어. 그러니 각자 가게서 메뉴를 만들기 시작했지. 각 업장마다 치킨도 팔고, 대구포도 팔았지. 우리는 노가리였고.”

 

이 가게에서 시작, 지금의 노가리골목이 된 것이다. 겨우 10여 평의 작은 가게다. 바닥은 이른바 ‘도끼다시’이고 벽돌로 만든 테이블이다. 대낮부터 오랜 단골들이 생맥주에 노가리, 번데기를 든다.

 

창업주 강 옹의 연세는 올해 아흔. 그는 여든일곱 살까지 이 가게에서 맥주를 뽑았다. 놀라운 일이다. 여전히 정정하지만 딸과 사위에게 영업을 맡겼다. 그래도 당신이 ‘디스펜사’(맥주 공급기)를 제일 잘 다룬다고 하신다.

 

이 집은 몇 가지 ‘전설’이 있다. 노가리를 처음으로 이 골목에서 판 것 말고도 당시 오비맥주에서 공급한 1천cc짜리 잔이 여럿 보관되어 있다는 점도 그렇다. 낮 12시가 넘으면 손님이 찾아오는,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빨리 문을 여는 생맥주 전문점이라는 것도 있다. 

 

강 옹의 맥주 따르는 솜씨는 신기에 가깝다. 따님 호신 씨의 증언. 

“주문이 밀려들어도 전혀 내색이 없으셨어요. 잔을 기울이고, 디스펜서를 당기고, 차아악 밑술이 깔리고 거품을 얹어내는데, 그게 이른바 일관작업이에요. 정확해요. 생활의 달인 같은 건데 뭐랄까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술, 그거 말고 뭐 설명할 말이 없네요.”

 

강 옹은 겨울에는 4도, 여름에는 2도가 생맥주의 적정온도라고 했다. 노가리는 제일 비싼 걸로 사온다.


이 집의 맥주 맛은 왜 다를까. 우선 내가 마셔보았다. 맛이 부드럽다. 목을 치는 탄산의 힘이 지나치지 않다. 물리적 통각으로 마시는 맥주가 아니라 맛과 향으로 마시게 된다. 온도도 적당하다. 잔은 냉각보관하지 않는다. 맥주 온도와 잔의 상온의 온도가 적절히 최종의 온도를 맞춘다. 그래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강 선생이 영업비밀(?) 하나를 푸신다.

 

“겨울에는 4도고, 여름에는 2도야. 그게 적정 온도야. 모자라거나 넘치면 맛이 없어요. 맥주 맛이 그게 그거 같아도 다 다른 이유야.”

이 집은 맥주 케그(통)가 들어오면 가게 뒤 공간에 냉장보관한다. 맥주 맛이 좋은 이유다.

 

강 옹은 이 집을 열기 전에도 생맥주를 알았다. 70년대에 종로3가에서 노르망디라고 하는 경양식집을 운영했다. 당시 생맥주 파는 경양식집은 고급에 속했다. 멋진 설비를 차려놓고 생맥주를 ‘쪽끼’로 팔았다. 쪽끼, 또는 조끼라고 부르는 건 영어의 ‘jug’가 일본어 발음으로 와전된 것이다. 이 집의 노가리는 최고의 맛인데, 이유가 있다. 우선 제일 비싼 걸 산다. 아침에 떼어온 노가리를 두들긴다. 특제 소스도 한몫한다.

 

“요즘 생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1도 높아요. 한 마디 하고 싶은데, 생맥주에 물 탔니 어쩌니 하는 건 거짓말이야. 불가능하다고, 물 타는 건. 타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요(웃음). 그러니 믿고들 드세요.”

 

최근 이 집은 서울 문화유산이 되었다. 오래도록 을지로를 지킬 것이다.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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