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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비아그라보다 더 큰 문제, 탐욕이 보인다

청와대가 미용병원이나 중환자실이 아니니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한 사실이 너무 선명하다

2016.11.24(Thu) 11:46:59

참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포털 검색어에서 보는 것도 참 힘든 일인데, 그 검색어 옆에 하필 비아그라가 같이 나오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그래서 쏟아지는 기사를 보며 제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해버린 건지, 참으로 기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진=JTBC ‘비정상회담’ 캡처


하여간 ‘비정상회담’ 녹화는 지난 11월 13일이었습니다. 당연히 청와대가 비아그라를 구입한 사실 같은 건 전혀 몰랐지요. 심지어 마크가 자기 나라에서 개발된 약으로 비아그라를 언급한다는 것 외에는 전부 대본에도 없던 애드리브입니다. 하지만 저도 방송 클립을 돌려 보다가 제가 ‘​(고산에 간다고) 근데 뭐, 받아는 가세요’​ 하는데 조금 소름 돋았습니다. 시국이랑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더군요. 결론적으로 우연의 일치입니다. 하지만 ‘​​성지예능’​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얼굴을 봤으리라고 생각하니 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 짤막하게 나온 부분에서 사실관계를 조금 보완하고, 또 성지예능의 발언자로서 몇 가지 말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일단 비아그라의 고산병 치료 기전은 혈관확장이 맞지만, 주는 폐혈관에 작용합니다. 폐동맥을 이완시켜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폐부종을 예방하는 기전입니다. 이게 주 기능인데, 두통에 관련된 언급만 방송에 나갔기에 덧붙입니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비아그라 고산병 치료 발언은 의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현재 고산병에 대비해서 비아그라를 처방하는 것은 비보험일 뿐 불법도 아닙니다. 아프리카 순방 3국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은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로, 약 2400m입니다. 보통 2500m 정도를 고산병 증세가 발생하는 고도로 보는데, 예민한 사람들은 1800m 정도에도 고산병 증세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라 일이란 게 워낙 중한 일이라 만반의 준비를 전부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해명은 일단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1차 선택제인 아세타졸라마이드가 있고, 그 외 덱사메타손, 징코 빌로바에다가, 단순히 증상을 경감시키기 위한 아스피린,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등에 더해 우직하게 산소통까지 준비할 수 있었는데, 전부 놔두고 비아그라를 왜 364알이나 더 구매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문헌상 비아그라는 중증 폐부종 예방에만 쓰는데, 중증 폐부종이 일어나려면 적어도 해발 3000m보단 높은 곳에서 트레킹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워낙에 중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고, 극도로 예민한 분이 계실 수 있으니 일단은 그렇다고 칩시다.

 

사진=한국화이자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비아그라 논란에 대한 국민의 의혹과 불신은 의학적 사실 관계 너머에 있습니다. 같이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태반주사 200개, 백옥주사 60개, 감초주사 100개, 마늘주사 50개를 거액을 들여 구매합니다. 이것들은 전부 의학적인 근거가 입증되지 않은 비보험 항목입니다. 비보험 항목이라는 뜻은 이러합니다. 누군가 폐렴에 걸리면 항생제를 먹습니다. 이것은 입증된 치료이므로 보험이 적용되고, 나라에서 돈을 대줍니다. 하지만 누가 젊어지고 싶다거나 피부가 좋아지고 싶어 태반주사나 백옥주사를 맞는다면, 이것은 입증된 치료약이 아닐뿐더러 실제로 아픈 것도 아니므로 나라에서 돈을 대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비보험 항목입니다.

 

정부는 태반주사나 백옥주사나 감초주사 따위를 의학적 근거가 떨어지기 때문에 비보험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주사를 국민들이 못 맞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 법을 만든 사람이건, 일반 국민이건, 이 주사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험 적용 없이 자유롭게 자기 돈을 내고 맞으면 됩니다. 하지만 비보험을 지정한 장본인인 청와대가, 혈세까지 잔뜩 써서 그 주사들을 사다가 맞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효과가 좋은 주사라면 전 국민에게 보험 적용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그냥 너무 맞고 싶었다면 법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조용히 병원에 가서 다른 국민들처럼 자기 돈을 내고 맞든지요.

 

그래서 비아그라에 대해서는 발 빠르게 해명했지만, 이 비보험 항목에 대한 해명은 ‘경호원들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정도의 궁색한 것밖에 없습니다. 청와대 정도 되는 기관에서 ‘경호원들의 건강’을 의학적으로 입증된 걸로는 못 챙기는 걸까요. 처음부터 눈먼 돈으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발상입니다. 심지어 이 목록에는 피부 미용 시술용으로만 쓰이는 엠라크림, 전립선이나 탈모 약인 프로스카, 엄청난 고가에다가 면역 질환 치료에 쓰이지만 노화를 방지한다고 알려져 있는 면역글로불린까지 들어있습니다.

 

이것들은 피부미용병원이나 중환자실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쓸 약이 아닙니다. 청와대는 미용병원이나 중환자실이 아닐 것이고, 공식적인 대통령 주치의가 단독으로 이렇게 의학적 근거가 떨어지거나 미용에만 이용되는 약품을 다량 구매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문 지식과는 관계 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했다는 사실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최순실 게이트’의 발단은 혈세로 개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처방 논란과 사건의 핵심과는 참으로 일맥상통한 면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시기에, 탐욕의 아수라장 같은 목록에서 하필 발기부전 치료제의 대명사인 비아그라가 들어 있던 겁니다. 여기서 이 약은 본디 용도와 다르게 고산병 때문에 구매했노라 청와대에서 열심히 해명해본들 감정적으로 그걸 이해하고 믿어줄 국민이 있겠습니까. 구차하게 들릴 뿐입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만약은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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