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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태반주사, 마늘주사가 독감 예방접종용이라고?

독감은 ‘독한 감기’가 아니다

2016.11.23(Wed) 09:31:24

추석 연휴는 진즉에 지났고 어제(11월 22일)는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었다. 이름과 달리 강원도를 제외한 지역에서 소설에 눈 구경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맘때쯤 되면 다들 기억하는 게 있다. 바로 독감 예방접종이다. 예년 같으면 독감 예방접종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을 때인데, 나라가 이 모양이라서 그런지 독감 예방접종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주사는 맞아야 한다. 지금 수백만 국민의 촛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그 여인은 국민의 건강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데 우리마저 깜빡하면 안 된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분들이 자주 물어보는 말이 있다. “아니 난 독감은 잘 안 걸려. 그런데도 매년 독감주사를 맞거든. 그런데 왜 감기 예방주사는 안 놔주는 거야. 감기는 일 년에 몇 번씩도 걸리는데 말이야.” 이유는 간단하다. 독감 예방주사는 있지만 감기 예방주사는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독감과 감기는 전혀 상관없는 질병이라는 뜻이다. 즉 독감은 이름과 달리 독한 감기가 아닌 것이다.

 

독감과 감기는 전혀 상관없는 질병이다. 감기 예방주사는 없지만 독감 예방주사는 있다. 사진=비즈한국DB


감기(感氣, cold)에 걸리면 콧물이 나고 기침을 하다가 며칠 지나면 저절로 낫는다. 아이들 같으면 열이 나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다. 며칠 지나면 낫는다. 내가 살던 독일에서는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가면 학교와 직장에 가지 말고 며칠 쉬라는 처방만 내준다. 주사는커녕 약 처방도 거의 하지 않는다. 본인이 답답해서 코를 뚫어주는 스프레이를 구입하거나 열이 오르면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독감(毒感, flu)은 다르다. 독감의 전형적인 특징은 고열과 통증이다. 두통, 근육통, 복통, 관절염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몸살 증상이 심한 것이다. 노인과 임산부의 경우 폐렴이 동반되면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독감은 세계대전보다 무섭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죽은 사람은 1500만 명 정도인데, 1918년 한 해에만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이 5000만 명에 이른다. 이때 우리나라에서도 14만 명이 독감으로 죽었다. 스페인독감이 우리나라 역사에는 무오년독감으로 기록되어 있다. 

 

독감으로 인한 대량 사망이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 독감 사망자는 매년 50만 명에 달한다. 인구가 8000만 명 정도인 독일에서는 2003년에 1만 5000명의 노인이 독감으로 사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000명 정도가 독감으로 사망한다. 그 가운데 20퍼센트는 임신 말기의 여성이다. 이것은 모성애가 너무 지나쳐서 생긴 문제다. 혹시 태아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병을 방치하다 생긴 일이다.

 

그렇다면 감기와 독감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감기는 감기 환자의 손을 만졌을 때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감기 바이러스는 손을 타고 퍼져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외출하고 돌아온 다음에는 손을 비누로 깨끗이 잘 닦으면 된다. 이에 비해서 독감은 아무리 손을 닦아봐야 소용없다.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환자가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작은 물방울에 묻어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채기를 할 때는 입을 가려야 하고, 독감이 유행할 때는 마스크를 하는 것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손을 타고 퍼져나간다. 따라서 외출하고 돌아온 다음에는 손을 비누로 깨끗이 잘 닦으면 된다. 사진=비즈한국DB


아니, 같은 바이러스인데 감기 바이러스는 손을 통해서 감염되고 독감 바이러스는 재채기를 통해 감염된다는 말인가? 같은 바이러스면 그럴 리가 있겠는가. 바이러스라고 해서 다 같은 바이러스가 아닌 것이다. 

감기는 아데노바이러스, 리노바이러스, 콕사키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잡(雜)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한다. 이에 비해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특별히 ‘인플루엔자(Influenza) 바이러스’라고 한다. 인플루엔자는 라틴어로 ‘영향을 끼치다’라는 뜻으로 특별한 영감을 주지 못하지만 영어에서 독감을 뜻하는 플루(flu)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A형, B형, C형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A형은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틴(hemaglutin)과 뉴라미니다제(neuraminidase)라는 단백질의 형태에 따라 분류된다. 현재 헤마글루틴(H) 항원은 16가지, 뉴라미니다제(N) 항원은 9가지가 있다. H항원과 N항원의 조합에 따라서 다양한 바이러스가 생긴다. 스페인독감을 일으킨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형의 H1N1 바이러스다. B형에는 빅토리아(Victoria)와 야마가타(Yamagata) 바이러스 등이 있다. B형과 C형의 경우에는 A형만큼 변이가 빠르지는 않다.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환자가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작은 물방울에 묻어서 퍼져나가기 때문에 독감이 유행할 때는 마스크를 하는 것이다. 사진=비즈한국DB


감기는 증상이 가벼운 질병이지만 독감은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감기 예방주사는 없어도 독감 예방주사는 있으니 준비만 하면 된다.

 

청와대는 2014년 3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0종류의 녹십자 의약품을 31차례에 걸쳐서 대략 2000만 원이 넘는 양을 구입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태반주사, 감초주사, 마늘주사 같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왠지 이름부터 과학과는 거리가 멀고 옛날에 시장에서 약장수들이 파는 약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 효능이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대부분 독감 예방접종용이라고 해명했다. 주치의가 이런 약을 처방했을 리가 없다. 청와대 직원과 그 여인의 건강이 심히 걱정된다. 아무리 봐도 그 여인은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국민 걱정 그만 끼치고 어서 내려와라!

 

독감 예방주사는 늦어도 11월까지는 맞아야 좋다. 대통령이 금방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싸움이 길어질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몸은 우리가 지키자. 예방주사를 맞기 전에 의사와 상담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 나라는 심각한 독감에 걸렸다. 예방주사를 맞기에는 늦었다. 아프더라도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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