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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프리즘] 인도의 화폐개혁과 트럼프의 당선

미국 IT를 책임지는 인도 전문인력의 타격이 예상된다

2016.11.16(Wed) 10:23:51

지난 한 주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전 세계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숨죽이고 지켜 보던 미국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트럼프 당선자의 승리 확정 이후 분석 기사가 연일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도 역시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향후 인도-미국의 관계와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분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디 인도 총리가 미국 대선일인 11월 8일 저녁 화폐개혁을 전격 발표하고, 당일 자정부터 도입하겠다며 대대적인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바람에 큰 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인도 내 자산의 대부분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고, 힐러리 지지자인 인도계 미국인이 가장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농담이 돌기도 했다. 

 

지난 한 주 인도를 들썩이게 했던 화폐개혁과 트럼프의 당선은 향후 인도경제와 정치 레짐(regime)의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질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적으로 정치·경제적 이해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 나비효과에서 벗어나기 힘든 현 시대,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인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갑작스레 발표된 화폐개혁이 인도의 경제 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화폐개혁에 대해 알아보자. 모디 총리는 11월 8일 저녁 갑작스런 대국민 특별 담화에서 부패 근절과 위조 지폐 근절을 통한 테러 방지를 위해 11월 9일 자정을 기점으로 고액권인 500루피(약 8500원)와 1000루피(약 1만 7000원) 지폐 사용을 중지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대신 500루피, 2000루피 신규 지폐를 통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권 발행에 대해서는 일부 알고 있었지만 현행 고액권 폐지에 대해서는 총리,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정도로 극비리에 추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의 지하경제 규모는 적게는 국내총생산(GDP)의 20% 많게는 75%로 추정된다. 부패, 탈세, 그림자 금융 같은 지하경제 문제는 인도 경제의 발목을 잡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반부패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모디 총리는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해외 도피 자금을 추적할 특별조사팀을 꾸리며 탈세 단속, 검은 돈 환수 등을 적극 추진해왔다. 그러나 2년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효과가 없었다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는데, 11월 8일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강력한 추진 의지를 재표명한 것이다.  

 

발표 몇 시간 뒤부터 고액권의 유통이 전면 중단됐다. 이들 지폐를 연말까지 은행이나 우체국 계좌에 저축하지 않으면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예정이다. 고액을 입금한 사람들은 탈세 혐의 등으로 감시대상에 오르게 될 예정이다. 적발 시 탈세한 세금은 물론이고 은닉자금의 200%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만 한다. 

 

집안 가득 쌓인 현금이 무용지물이 되거나 벌금폭탄을 맞게 될 위기에 처하자 발표 당일 저녁 자정까지 고액권으로 고급 시계와 가방 등 명품을 사거나 금으로 교환하려는 이들로 쇼핑몰과 귀금속점이 북새통을 이루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고액권 폐화(廢貨) 뉴스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는 집에 있는 모든 현금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금번 개혁으로 부패가 근절되기보다 오히려 주로 현금거래를 해온 소상공인 및 금융 계좌가 없는 빈민층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비판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또한, 내년 초에 있을 주요 주선거들을 앞두고 정쟁관계 정당들의 정치 자금을 봉쇄하겠다는 정치적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개혁 초기 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혼선이 빚어지고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공식 경제의 공식화와 지하경제의 양성화는 세원 확대와 저축 비율 증가, 국가재정 및 금융시장 상황 개선, 공공 및 민간 투자 확대 등 긍정적인 연쇄 효과를 일으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건강한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비공식 고용의 그늘에 가려진 채 살아가던 2.1억 명의 인도인들의 권익과 사회적·경제적 평등이 조금이나마 증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불법자금을 은닉하고자 하는 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숨기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카스트 제도가 실존하며 신분 차별이 뿌리 깊게 남아있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부정부패에 대한 모디 총리의 강경한 대응은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선사한 것이다.  

 

한편 트럼프 당선자의 승리는 갑작스런 화폐개혁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대한 인도 내 우려는 우리에 비해 비교적 높지 않은데 기인한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운동 당시 자신이 당선되면 “미국이 인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으며, 현재 인도와 긴장관계가 최고조에 올라있는 파키스탄을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라고 칭하며 인도의 손을 간접적으로 들어주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적대감은 인도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인도에게 전략적 안도감을 선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 인도의 무역개방도가 비교적 낮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는 어느 자유무역협정도 맺지 않은 탓에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우려도 많다. 미국 전문직 취업비자(H1-B)의 70%는 인도인들이 발급받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강경한 이민 정책으로 비자 규제가 강화될 시 인도 전문인력 특히 IT 전문 인력 및 IT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약한 바와 같이 법인세 인하 단행하는 바람에 미국 기업들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외국인 투자 유치가 절실한 인도로의 투자유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고 있다.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Verma 주인도 미국 대사는 지난 11월 4일 뉴델리에서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 “인-미 양국이 지난 세월 동안 신뢰를 쌓으며 발전시켜 온 관계에는 큰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당선자의 그간 발언을 토대로 전망하면 △미국과 인도의 관계 강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 △미국과 중국의 갈등 심화, △미국의 고립주의 정책에 따른 중국의 영향력 확산 가속화 등이 예상된다. 이러한 미국 정책기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세계 및 지역 질서 변화는 인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크게 바꿔놓을 것이며, 그에 따라 아직까지는 전략적 독립성(strategic autonomy)으로 대표되는 인도의 대외 전략도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제도주의에 따르면, 제도는 경로 의존적으로 (path dependence), 사회관계와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는 결정적 분기점(critical juncture)에서의 우발성에 의해 일어난다. 화폐개혁과 트럼프 승리라는 두 개의 중대한 사건을 흡수할 시간도 없이 연속으로 맞닥뜨린 인도가 앞으로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어떻게 대응할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박소연 국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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