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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노포열전] ‘스타’가 아니라 추억으로 먹는 냉면, 남대문 부원면옥

2016.11.15(Tue) 12:23:51

냉면처럼 말 많은 맛집도 드물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냉면에서는 입심에 안 지려고 한다. 다들 자기만의 냉면집이 있다. 을지와 필동면옥의 차이는 늘 논쟁거리이고, 우래옥이 과연 최고냐 아니냐는 싸움도 멈추지 않는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우래옥과 을지면옥이 별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뒷말도 무성했다. 프랑스 애들이 뭘 알어, 이런 말도 나왔다. ‘냉부심’이란 말을 알 리 없는 이들이라는 거다.

 

최고의 냉면은 아니지만 음식이 추억의 매개라는 말이 맞다면, 당연히 남대문의 부원면옥을 친다.

나는 그 ‘일급’ 냉면집 밖에 있는 한 집을 다닌다. 최고의 냉면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음식이 추억의 매개라는 말이 맞다면, 당연히 이 집을 친다. 바로 남대문의 부원면옥이다. 시장통 한구석의 2층에 있지만 아는 이는 다 아는 집이기도 하다.

 

부원면옥의 업력은 57년째를 헤아린다. 원 주인에게서 현 주인으로 넘어온 지는 40여 년이다. 원래 ‘장띠’라고 부르는 인근의 상가에 있었다. 그 후 장사가 아주 잘되어 현재의 장소로 옮겨와서 영업하고 있다.

 

부원면옥은 우선 가격의 매력이 있다. 보통 7000원이다. 냉면은 대개 곱빼기가 없다. 사리 추가다. 이 집은 곱빼기를 지킨다. 가게의 원칙이라고 한다. 가난한 시장상인들이 자주 찾던 집이라 그 원칙을 지킨다. 곱빼기는 딱 1000원 한 장만 더 받다가 이제는 1500원을 더 받아서 8500원이다. 양이 어마어마하다. 나는 덩치가 만만치 않고 대식가인데 이 집 곱빼기는 좀 힘들다. 소박한 오이와 돼지고기 고명(이게 단물이 덜 빠져서 맛이 좋다), 달걀 반쪽이 올라간다. 면은 메밀 함량이 아주 높지 않지만, 먹을 만하다. 달콤한 듯 수수한 육수는 개운하고 진하다. 소 사골을 넣어 만든다.

 

이 집은 고현희 씨가 지킨다. 원 주인 김상렬 옹 모자에서 김 옹의 며느리인 고 씨에게도 넘어온 지 오래다. 34년간 이 가게를 지켰다. 요즘은 아들 둘이 나와서 부엌과 홀을 보고 있다. 대물림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착하고 덩치 좋은 청년이 보인다면 바로 이 집 아들이다.

 

부원면옥을 잘 즐기는 법이 있다. 먼저 4000원짜리 빈대떡을 한 장 시킨다. 돼지기름을 내려서 부친다. 열차집에서나 볼 수 있는 오리지널 빈대떡이다. 소주를 곁들인다. 이 집은 아직도 소주 반 병짜리가 남아 있다. 참으로 소박하고 고마운 일이다. 일행이 좀 있다면 닭무침을 시켜도 좋다. 노계의 씹히는 맛이 좋다. 겨자와 식초를 타서 버무려 먹는 게 기본이다. 그 다음 냉면을 먹는 순이다.

 

이 집 냉면과 관련, 단골인 한 수필가의 글이 있다.

“순조 조에 들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관의 수탈이 극에 달한 데다 가뭄으로 흉년이 계속되자 홍경래는 ‘세도 정치 타도와 서북 도민 차별 대우 철폐’란 기치를 내세워 난을 일으키고, 난이 평정된 뒤 나라에서는 정책적으로 평야지대에서 생산되던 쌀과 조 등 거의 전량을 징수해 민중들이 먹을 거라곤 메밀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 냉면 발달의 동인이 되었다는 기술이다. 오세윤 산문집 ‘아버지의 팡세’(수필과 비평사)에서 발췌했다.

 

돼지기름으로 부친 빈대떡을 시켜 소주 반 병을 곁들인 뒤 냉면을 먹어야 ​부원면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부원면옥은 남대문시장과 뗄 수 없다. 전후에 크게 번성한 시장이다. 원래는 정조시기 칠패시장이 들어서면서 이미 시장으로 기능한 역사적인 땅이다. 이북 피난민이 많이 몰려와서 남대문시장을 번성시켰다. 부원면옥의 성장과도 깊게 연관된다. 부원면옥은 초창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하루에 3000그릇을 판 적도 있다고 한다. 손님이 너무 많아 돈을 안 내고 가는 손님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움직일 공간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이제는 다 전설이 되었다. 냉면이 지근 인기이지만, 진짜 전성기는 다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고현희 사장는 부원면옥의 카운터를 지키면서 하루 한 끼는 냉면으로 먹는다. 먹어봐야 판다는 소박한 영업 방침이다.

“먹어봐야 맛이 지켜지는지, 체크가 되겠지요. 애들 가져서 입덧할 때 외에는 늘 먹었어요. 아마 세계에서 제가 냉면 제일 많이 먹은 사람 중 한 명일 거예요.”

 

그 ‘애들’이 모두 이 가게에서 일한다. 큰아들 재우와 둘째아들 재승이 모두 직원이다. 각각 홀과 주방에서 가업 전수 중이다. 냉면집 주방은 몹시 힘들다. 물을 많이 쓰고 흥건해서 고되고도 고되다. 새벽 6시면 나와서 육수부터 끓여야 한다. 부원집은 아마도 내가 최후까지 다닐 냉면집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다녔다. 음식은 추억이라지 않은가.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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