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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리버럴의 패배가 아니라 ‘시골의 역습’

2016.11.15(Tue) 12:05:18


트럼프 당선, 리버럴, 깨시민, PC(Political Correctness)의 역풍인가? 

 

트럼프의 당선은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한 ‘깨시민’ 리버럴의 역풍인가? 민주당 주류 리버럴의 행동양식을 대표하는 단어가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이다. 인종, 종교, 성적 소수자에게 예의에 어긋나는 단어와 행동을 배제하려는 리버럴의 행동양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흑인’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PC는 갖가지 패러디를 통해 조롱당하고 혐오받고 있다. 이런 태도가 지나쳐 비기독교인에게 상처가 되므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든가, 성별을 나누는 ‘he’, ‘she’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을 세우고 상대방을 악인으로 매도한다는 것이 anit-PC 진영의 주장이다. 이러한 위선적이고 때론 황당한 진보 지식층과 진영의 행동에 진절머리가 난 평범한 미국인들이 직설적이고 솔직한 트럼프의 지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11월 9일 트럼프가 당선 수락 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AP/연합뉴스


하지만 리버럴과 대중의 간극을 상징하는 문화-언어양식인 PC에 대한 역풍이 과연 이런 결과를 만들었는가? 나는 그건 피상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반례가 여전히 건재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다. 모범적 리버럴이자 올바른 가치의 전도사인 그는 퇴임이 코앞인 이 시점에도 지지율이 60%에 달한다. 리버럴에 대한 혐오, 분노로 이 결과를 설명하기 힘든 이유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인종, 인권, 다양성과 같은 문화적 요소가 없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왜 그 문제가 이렇게 격렬하게 지금 이 시점에, 8년간이나 오바마를, 그리고 지금도 지지하는 미국에서 터져 나왔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이 왜 전 세계적인가 하는 물음이다. 분노한 사람과 그가 분노하는 대상으로 편을 나눠서 볼 일이 아니다. 왜 그들이 지금, 이렇게나 거칠게 본색을 드러냈는가?

 

 

# 백인의 승리인가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언론에서 이번 대선을 평가하는 중론인 ‘백인의 반격’이 사실인가? 이번 대선이 유독 인종간 대결로 비치지만, 사실 지난 오바마의 대선이 진정한 인종간 대결이었다. 2012년 오바마의 대선과 이번 대선에서 백인의 지지율 분포는 거의 동일하다. 

 

2012년 오바마-롬니 인종별 지지율. 출처=위키피디아


2016년 힐러리-트럼프 인종별 지지율. 출처=위키피디아


공화당 후보에 대한 백인의 지지는 59%에서 58%로 거의 동일하다. 오히려 눈에 띄는 점은 민주당 후보에 대한 ​유색인종의 ​지지율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즉, 이는 트럼프로 인해 백인이 대거 나섰다기보다는 백인 상류층인 힐러리가 유색인종에 호소력이 부족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 그럼 무엇이 변수였나

 

2012년 대선 주별 결과(위)와 2016년 대선 주별 결과(아래). 출처=위키피디아

 

이번 대선 판도를 미 대륙 전체로 놓고 보면 붉은 내륙과 파란 해안으로 나뉜다. 미국의 인구증감 지도와 트럼프 지지자들의 지도를 겹쳐보면 놀랄 만큼 일치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지역이자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를 선택한 러스트벨트가 공화당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이 지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라는 ‘구원’을 품은 도시다. 이 협정으로 러스트벨트는 멕시코에 경제적 기반을 빼앗겼고 이를 주도한 힐러리에게 20년도 더된 ‘한’이 서린 것이다. 즉, 이 또한 자유무역의 패자가 보여준 한이다.

 

이번 결과를 놓고 ‘백인 하층민의 반란’이라는 데 대한 반박으로 트럼프 진영의 백인 상류층 지지율을 꼽는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할 점은 그들은 트럼프 때문에 나선 이들이 아닌 언제나 공화당을 지지했던 ‘상수’라는 점이다. 우리가 이번 결과를 주목하는 이유는 큰 변화가 발생했고 이 변화를 발생시킨 ‘변수’를 찾기 위해서다. 상수로 인해 결과가 변했다고 보는 것은 착시다. 백인 상류층도 트럼프 지지자 중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이번 대선의 향방을 가른 지역은 러스트벨트였다. 그리고 러스트벨트의 키를 쥔 것은 백인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이 투표소로 달려갔고, 그로 인해 러스트벨트가 넘어갔으며, 이곳에서 승부가 갈렸다. 그들이 변수였다. 결국 트럼프의 당선은 자유무역의 유탄을 맞은 백인 하층민이 만들어냈다.

 

 

# 장벽은 내부에 있다

 

러스트벨트 오하이오(위)와 최대 경합주 플로리다(아래)의 투표율. 출처=위키피디아


전국 규모에서의 ‘패자’인 러스트벨트가 아닌 플로리다엔 무슨 일이 있었나. 스케일을 각 주 규모로 줄여서 보면 주도와 도시는 힐러리, 이외 지역은 트럼프 일색이다. 심지어 공화당의 아성 텍사스조차도 도시지역은 힐러리를 지지했다. 도시와 시골 간에 뚜렷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도시 규모에 따른 힐러리-트럼프 지지율 격차. 출처=위키피디아


내륙과 시골. 이들이 바로 트럼프를 찍으며 분노를 표출한 이들의 정체성이다. 백인의 분노도 물론 맞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인구분포가 도시-이주민, 시골-백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이주민이 일자리를 구할 곳은 도시뿐이기 때문이다. 즉 백인의 분노는 시골의 분노와 같은 말이다.

 

이처럼 세계화로 인한 승자와 패자의 경계는 전국  규모에서도 그리고 주 내에서도 갈라지고 있다. 과거엔 국경과 국경이 격차의 갈림선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이 보여준 건 세계화가 제1세계 내부를 1세계와 제3세계로 갈라놓았다는 점이다. 

 

 

# 슈퍼시티가 모든 걸 빨아들이고 있다

 

비금융 기업들의 자본수익률(위)과 미국의 주 간 불평등지수(아래). 출처=Economist.com


2001년에 상위 50개 도시의 시민은 보통의 미국인들보다 27% 더 높은 생산성을 보였다. 하지만 오늘날 그 수치가 34%로 증가했다. 이를 GDP 규모로 보면 차이는 더욱 커진다. 그 도시들이 전국의 인구를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에서 2014년 사이에 미국의 인구는 3.1% 증가했지만 상위 50개 도시는 9.2%씩 증가했다. 농촌 컨트리의 60%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경제는 슈퍼스타 기업들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업들은 도시로 집중되고 있다. 슈퍼스타, 슈퍼시티의 시대다.

 

도시들, 그것도 극소수 슈퍼도시들이 미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가장 먼저 경제적 성과를 흡수하고, 이후에 문화적 우위까지 점했다. 이 문화적 우위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고, 폴 크루그먼 같은 ‘먹물’이며, 민주당을 찍으라고 호소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다.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이번 대선의 외침이다.

 

 

# Average is over

 

자유무역은 명백히 좋은 일이다. 확실히 후생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문제는 Average is over, 더 이상 평균은 의미 없다. 미국이 잘되면 나도 잘되리라는 믿음이 깨졌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도시와 시골 간에는 선이 그어졌고, 성 안과 밖으로 갈렸다. 이 형국에 미국 전체의 평균치는 의미 없다. 이게 바로 EU가 원심력에 찢기려하고 미국의 양안이 원심력으로 떨어져 나가려고 하는 이유다. 내부로부터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주한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인 다니엘 튜더는 영국을 ‘런던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라고 했다. 대처 재임기와 서비스, 금융 중심의 산업 재편기를 거치며 런던으로의 흡수가 가속됐고, 이 차이는 경제적, 문화적 격차에 이어 평균수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재분배 없는 세계화는 죽음의 불평등까지 낳고 있다.

 

영국의 지역별 기대수명 격차. 출처=위키피디아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다. 난 이 사건에 유독 리버럴의 정치적 올바름을 주범으로 놓고 가열 찬 비판을 쏟아내는 이들이 오히려 리버럴의 세계관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고 있다. 리버럴의 실패를 고소해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신자유주의의 지지자들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세계화의 동업자들의 패배를 보고 섬뜩함을 느껴야 합당하다. 

 

 

# 결국은 먹고사니즘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역사의 진리다. 출근할 직장이 있고, 사회적 역할이 있고 지갑이 두둑하면 혐오를 억누를 수 있다. 뱃가죽이 두꺼워지면 그 밑에 욕지거리를 감출 수 있다. 하지만 점점 지갑이 얇아지고 직장마저 잃는다면 더 이상 그런 품격을 지킬 수 없다. 옆자리의 유색인종이 신경 쓰이고 미워지기 시작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얇아진 지갑이다.

 

이제 ‘자유무역의 과실이 모든 걸 해결하리라’는 믿음은 끝났다. 복지로 돈 몇 푼 쥐어주면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는 점에서 자유무역 신화의 종말은 한층 심각하다. 과거 1세계 국가, 2세계 국가로 나뉘었던 계급 사회가 국가 내부에서 나뉘기 시작했다. 도시와 시골은 같은 국가 안의 다른 나라가 됐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Great divergence, 위대한 혹은 위험한 차이다.​

남궁민 ‘예술을 빌려드립니다’ Paleto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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