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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현자타임] 광화문에, 100만 명의 연결된 시민이 있었다는 것, 그거면 됐다

시알못이 본 11월 12일 : 지금, 여기, 우리

2016.11.14(Mon) 10:17:14

2016년은 뜻 깊은 해다. 젝스키스가 해체 이후 16년 만에 돌아왔다. 팬들에게 “그대가 내 앞에 서있네요”라고 감사를 표시하며 컴백했다. 해체된 지 16년이 지났음에도 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비록 고지용은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함께한다며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팬들에게 위로를 보냈다.

 

12일 종각역 일대 풍경. 사진=김태현 기자


광장에도 뜻 깊은 해다. 젝스키스가 팬들 앞에 서있듯이 시민들이 광장 앞에 서있었다. 지난 11월 12일, 1987년 ‘이한열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약 10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광화문, 종로, 시청, 을지로 곳곳에서 시민들의 함성이 들렸다. 젝스키스의 가사처럼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던”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시위따위 알지 못하는 1990년대생, 2010년 이후에 대학에 입학한 나는 궁금했다. 대체 왜 시민들이 휴일인 토요일에, 돈은커녕 먹을 것도 주지 않는 시위에 나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답답하면 직접 뛰라는 명언처럼 나도 직접 광장으로 가서 시민들을 인터뷰했다.  

 

왜 왔냐는 질문에 각기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수원에서 온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수능 끝난 이후 살아갈 미래를 위해 왔다”고 답했다. “자신이 성인이 되었을 때 좀 더 떳떳하게 사회에 나가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한다. 한 대학생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궁금증을 확인하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뇌경색으로 불편한 몸을 끌고 온 인천의 한 중년 부부는 “취업준비생인 아들을 위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자괴감이 들 것 같아서 왔다”고 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여덟 살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 역시 “아들이 살아갈 미래에 떳떳하기 위해 왔다”고 답했다.  

 

지난 12일 시위에 참여한 시민이 걸어둔 표어. 사진=김태현 기자


질문의 내용은 각기 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시민들은 본인들이 이루었던, 본인들이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망가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시민들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말대로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도 아니었으며 야당에게 선동 당한 호구도 아니었다. 그저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장삼이사, 필부필부였다. 

 

생각해보라. 청와대는 대통령의 친구가 기업에게서 비자금을 만드는 범죄를 도왔고, 그 친구 딸의 부정입학을 간접적으로 도왔다. 아무런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의 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의 문화산업 정책에 개입하고, 이권을 챙겼다. 대통령은 반성하기는커녕 변명하기에 급급했고,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은폐했다. 혼이 비정상이 아니고서야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분노는 청와대만을 향하지 않았다. 진실을 보도하는 데에 미진했던 언론, 성역 없는 수사는커녕 황제수사를 한 검찰, 모든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이제서야 대통령을 비판하는 국회의원까지. 시민들이 만들어온 공화국의 기틀을 망친 자들을 향했다. 시민들은 우병우의 오만함을 논하고, 종합편성채널의 편협함을 비판하고, 여당의 무책임함에 분노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그동안 시민들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수많은 시위에 붙은 종북이란 딱지와 그 딱지에 동조하는 여론을 보며 끊임없이 포기했다. 하지만 12일 집회에 모인 인파를 보며 잠시나마 국민들의 주인의식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국민들은 나향욱 씨의 생각과 달리 아무 불만 없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먹기에만 급급한, 둔감한 동물이 아니었다.

 

12일 밤 세종문화회관 뒤편. 사진=김태현 기자


시민들은 자칫 잘못하면 신문 1면의 헤드라인으로만 남을 법한 스캔들을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로 만들기 위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 “좀 더 나은 사회가 필요하다”는 하나의 열망으로 무려 10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그들은 오늘을 바꾸고 싶어했고, 방법은 아무래도 좋았다. 청와대로 갔어야 했다, 말아야 했다 혹은 시위의 방식이 옳았다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젝스키스의 노래 ‘세 단어’엔 이런 가사가 있다. “지금, 여기, 우리 세 단어면 돼요.” 마찬가지다. 11월 12일, 광화문에, 100만 명의 연결된 시민이 있었다는 것, 그거면 됐다. 시민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하나된 시민이 강하듯이 텅 빈 광장을 시민들이 가득 채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됐기 때문이다.

구현모 알트(ALT)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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