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쓰니?” “작년에 쓰던 것.” “그걸 여태 쓰고 있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같은 것만 쓰면 문제가 없니?” “나는 쓰던 걸 다 써야 다른 걸 쓸 수 있어.”
“그래도 이걸로 한번 바꿔봐.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반응이 아주 좋아.”
지난해 가을 시작한 소설에 진척이 없던 여자는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신제품을 권하자 당황했다.
최근 우연히 읽은 수필의 한 대목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 두 사람의 대화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다. 작은 해석 차이는 문제가 없지만, 서로 다른 해석이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면 혼란이나 분열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창작의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걸 두고 ‘라쇼몬 효과’라고 한다. 같은 사물이나 사안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려는 심리를 뜻한다. 일본의 국민 감독으로 통하는 구로자와 아키라가 만들어 195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석권했던 영화 ‘라쇼몬’으로 인해 생겨난 말이다.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대표작 ‘나생문’과 ‘덤불 속에서’를 각색해 만든 영화다. 산속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연루된 네 사람이 각기 다른 진술을 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미궁 속으로 빠진다는 이야기다. 모두 자기가 본 것만을 진실이라고 믿는 인간 심리를 그린 것이다. 정영환은 풍경화를 통해 라쇼몬 효과를 말한다.
그는 단색조의 풍경을 그린다. 단지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그의 회화에는 실제 보이는 숲이나 강 혹은 나무가 사실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경치를 그대로 재현하는 그림의 의미를 넘어선다. 여기서 그의 작업의 묘미가 보인다.
그의 풍경에는 사실적 색채가 없다. 작가의 마음을 용해시킨 푸른색 하나로 모든 풍경을 압축한다. 그래서 화면에서 공간감이 없어져버린다. 여기서 더 나아가 숲이나 나무 외에는 모두 여백으로 처리한다. 산수화의 풍경 조형 방식을 서양화 기법으로 바꾸어버린 셈이다. 분명 서양식 구성의 풍경인데 산수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릴까.
그는 풍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똑같은 사물이나 사실을 보고도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느낀다.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욕구가 스며들어 대상을 왜곡시킨다.
정영환의 회화에서 사실적으로 나타난 나무나 숲은 우리가 바라보는 객관적 세상이며, 단색조의 색채와 여백은 작가라는 한 개인이 해석해낸 세상인 셈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