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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현자타임] 박근혜정부의 ‘원칙’

2016.09.22(Thu) 15:26:19

대통령이 다시 분노했다. 이전과는 달랐다. 비판의 대상은 정치인, 관료도 아니었고 ‘사사건건 발목 잡는’ 국회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한진해운의 전 대주주였던 조양호 회장을 향했다.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이 개별기업의 실명을 거론하며 직접적으로 비판한 이례적 사건이다. 박대통령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한 기업의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가 경제 전반에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지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비판의 핵심은 첫째, 한진해운의 대주주가 기업의 실패에 책임을 충분히 지고 있지 않으며, 둘째, 이를 사회에 떠넘겨 사회 전반에 경제적 피해를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양호 회장과 대한항공은 사재를 출연하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책임이 바로 이것이다.

 

   
▲ 9월 7일 한진해운살리기 부산시민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대한항공 빌딩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사진=임준선 기자

 

자본주의의 꽃은 기업이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곧 주식회사를 의미한다. 400여 년 전 서구에서 발명된 주식회사가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유한책임’의 도입이다. 이전에 개인의 사업이 실패하면 개인은 모든 것을 잃었다. 터키로 향하던 배가 침몰하자 가슴살을 떼어주게 생긴 안토니오가 바로 주식회사 이전 ‘무한책임’ 시대 사업가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정된 지분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는 주식회사는 다르다. 주식의 소유 규모는 곧 주주의 책임범위와 일치한다. 100주의 주식을 가진 이는 기업이 파산할 경우 오로지 100주에 대한 책임만을 진다. 이로써 자본가들은 위험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방법을 찾았고, 사업가들은 사업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로 귀결되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안토니오가 주식회사의 대주주였다면 가슴살을 떼어줄 필요 없이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됨으로써 실패의 책임을 질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채택한 대한민국에서 조양호 회장과 대한항공은 한진해운 파산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할까?

 

우선 주식의 가치만큼 재산상의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또 경영권을 내놓아야 한다. 이미 조 회장과 대한항공은 두 가지 방식으로 책임을 졌다. 한진해운에 대한 지분은 가치를 잃었고 경영권도 상실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두 번째 문제 제기, 그래도 국가경제에 파급력이 큰 기간산업인 해운을 운영하는 대주주는 단순히 주주로서뿐 아니라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미 조양호 회장과 대한항공은 회사가 흔들릴 만큼 한진해운에 지원을 했다.

 

2014년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당시에 이미 대한항공은 1500억 원을 한진해운에 지원했고, 이후 수천억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으며, 3년이 지난 현재까지 무려 2조 원 가까운 대한항공의 자금이 한진해운으로 흘러들어갔다. 오히려 당시엔 이러한 조 회장의 행동에 육해공 통합 물류회사라는 개인적 소망을 위해 대한항공을 위험에 빠뜨리는 오너의 독단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조 회장의 한진해운 대표이사 취임 이후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급등하기 시작했고, 이번 사태를 맞으며 대한항공의 주가는 하락했다. 만약 필자가 대한항공의 주주라면 오히려 조 회장의 과도한 ‘책임의식’에 배임죄를 묻고 싶을 것이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지금의 압박에 대해 배임죄 걱정에 아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중이다. 대통령은 기업에 배임을 강요하고 싶은 것인가?

 

분명 작금의 한진해운 사태는 분개해 마땅한 사건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분노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 조 회장과 대한항공은 이미 책임을 졌다. 엄밀히 말해 지금 한진해운과 조 회장은 ‘남’이다. 분노해야 할 대상은 바로 사회적 파급력이 막강한 기업을 회복시키거나 혹은 파장을 최소화하며 ‘안락사’시켜야 할 정부와 채권단이 한진해운을 ‘돌연사’시켜버렸다는 점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을 단번에 죽였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한진해운의 공공성을 역설했지만, 관료들과 채권단은 그런 고려 없이 평범한 사기업처럼 결단을 내버렸다. 정부와 산은은 공공의 책무를 사명으로 받들어야 할 공공권력이다. 정작 공공에 미칠 파급력을 고민해야 할 정부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나? 그렇게 중차대하다는 한진해운 파산 국면을 이끄는 건 대통령도, 총리도, 경제부총리도 아닌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단독 플레이로 보이는 게 현실이다. 지금 전 세계 바다에서 한진해운의 배를 유령선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은 누구인가?

 

   
▲ 9월 2일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회에서 한진해운 부도사태에 따른 긴급 대책회의을 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채권단은 추상같은 금융논리를 강조한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총체적 부실이 명백했던 대우조선해양에는 4조 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이들이 왜 한진해운에만 이렇게 가혹한가.

 

고용인원이 수만 명에 강력한 노조를 가진 데다 PK지역 민심관리를 위해 대우조선해양은 ‘정무적’으로 살려야 했지만, 비교적 고용규모가 크지 않은 4000여 명에 노조도 미약한 한진해운에게는 가혹하다는 얘기가 시중에 떠돈다. 대우조선해양과 너무도 다른 ‘원칙’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납득할 만한 음모론이다.

 

공자는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는 말을 남겼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답다’는 의미다. 제자리에서 맡은 바를 묵묵히 수행하면 비로소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다. 구성원들의 하극상과 튀는 행동을 가장 싫어하는 박 대통령이 가장 좋아할 말일 것이다.

 

묻고 싶다. 조 회장과 대한항공이라는 대주주가 대주주답게 책임을 지고 있을 때, 공공의 책무를 사명으로 하는 정부와 산업은행은 공공부문다운 행동과 책임을 이행했는가? 한진해운의 공공성을 감안한다면 정치적 결정을 통해 국유화를 하는 게 옳다. 만약 청산가치가 더 크다면 사회적 손실을 감안하고 청산을 결정하는 게 옳다.

 

이제 결정의 책임은 정부에 넘어와 있다. 이제는 그들이 미뤄왔던 그들의 역할을 해야 할 때다. 더 이상 남 탓을 할 때가 아니다.

한때는 박근혜 대통령의 트레이트 마크는 ‘원칙’이었다. 아직 그 원칙이란 게 남아 있다면 그 원칙을 묻고 싶다. 박 대통령과 박근혜정부가 갖고 있는 경제원칙은 대체 뭔가?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이 맞는가? 아니면 박심 속에는 또 다른 어떤 원칙이 있는 건가? 있다면 부디 국민들에게 공유해주면 좋겠다. 물론 그 원칙이라는 게 처음부터 있었다면 가능한 부탁이겠지만.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남궁민 ‘예술을 빌려드립니다’ Paleto 대표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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