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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진 충격, ‘전기의 품격’을 따지다

선진국 탈원전, 친환경 발전정책 반면 우리는 싼 값만 고집하며 ‘역주행’

2016.09.16(Fri) 10:00:31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를 쓸 수 없을까. 지난 12일 저녁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8~9㎞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5.8과 5.1의 지진은 한국도 더 이상 지진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이번 지진은 서울과 경기 북부에서도 진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5 이상의 충격이면 땅이 심하게 흔들리고 건물 외벽에 금이 가는 수준이다. 특히 진원지가 고리·월성 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과도 인접한 지점이었단 점은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 해외의 화력발전소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규모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를 했다며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를 일으킨 일본 후쿠시마 원전도 진도 8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연재해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 정부의 해명에만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탈원전’이 세계적인 기류로 자리 잡고 있는 점도 이런 심리의 발로다.

에너지 기술 선진국인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사태를 접하고 탈원전 선언을 했다. 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 폐기하는 한편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석탄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대신 2050년까지 풍력·태양열·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발전량의 80%를 채운다는 계획이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열병합발전(CHP)도 대거 확대한다. 화력발전이 증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마는 데 비해 CHP는 전기를 생산하고 남은 증기·열을 지역난방에 사용하는 발전 방식이다. 연료 효율이 높고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적어 친환경 발전에 속한다.

이런 에너지 체제의 변화를 위해선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에 독일 정부는 국민들에게 1년에 9유로의 전기료를 더 받는다.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를 쓰겠다는 여론 덕에 차근차근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덴마크·스위스·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탄소세 감면 등 여러 지원책을 동원해 CHP·신재생에너지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이런 세계적 흐름과는 반대되는 행보를 걷고 있다. 지난 6월 원자력위원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일대에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을 허가했다. 2011년 12월 신한울 1·2호기 건설 허가 이후 4년 6개월 만의 신규 허가다. 이로써 국내 원전은 건설 중인 곳을 포함해 총 30기로 불어났다. 정부는 2035년까지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전체 발전설비의 29%까지 높일 계획이다. 정부가 원전을 확대하는 이유는 건설비용과 발전단가가 싸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4년 발행한 ‘원자력 발전비용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APR1400) 건설비는 신형 원자로 기준 1㎾당 231만 원이다. 이는 일본(ABWR, 약 365만 원)과 미국(3+세대, 640만 원)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처럼 싼 이유는 여러 원자력 발전소가 한 부지에 모여 있어 행정·입지비용이 절감돼서라는 게 국회사무처의 분석이다. 국내 원전이 울진·영덕·울주 등 경남지역에 밀집된 이유는 주민 반발 등 행정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원자력이 단지 발전소 건축비와 원료비 등으로만 따질 수는 없는 발전 체제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발전소의 건설과 해체비용과 방사성폐기물 처리비용 등을 포함하면 발전단가는 1㎾h당 54.96원(2014년 기준)이다. 해체비용 등을 반영하기 전(30원대)의 2배 가까운 수준으로 석탄(63.36원)의 발전단가와 비슷하다. 

   
▲ 나주 혁신도시 내 한국전력 본사 전경. 사진=한전 홈페이지

한 민간 발전회사 관계자는 “발전단가만 놓고 보면 원자력이 저렴한 것은 사실이나 환경파괴의 잠재적 위험성과 주민반발 등 사회적 갈등 비용을 감안하면 결코 싸지 않은 발전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고 위험과 사회적 비용을 반영한 원전의 실질 단가는 ㎾h당 110.3~371.6원인 것으로 국무조정실 산하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보고 있다.

또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와 CHP 등 친환경발전에 대한 지원사업도 속속 축소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색성장을 슬로건으로 진행하던 태양광·풍력 발전 지원 사업 중 다수가 2014~2016년 종료된다. 전 정부에서 매년 2조 원 이상 투입되던 태양광 보조금은 2013년부터 삭감됐다. 2015년부턴 태양광 지역지원사업의 시공 기준단가도 40% 축소됐다.  

CHP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1978년 2차 석유파동을 겪으며 CHP를 도입했다. 그러나 근거법인 집단에너지사업법은 CHP가 열과 전기에서 수익을 두 번 올리기 때문에 한전이 전기 가격을 20~30% 낮춰 사들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CHP가 열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만 생산할 경우 벌칙 조항으로 발전소를 폐쇄시킨다. 열발전은 의무이며, 전기발전은 선택이다. 전기발전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적자를 보게 되는 CHP들은 현재 고사 위기에 놓였다. 업계는 전기료 인상이나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와 한전은 요지부동이다. 

정부가 화력·원자력 발전을 고집한 채 신재생에너지를 배제하는 이유는 값싼 전기료에 있다. 한전에 따르면 한국의 전기료는 일본보다 2.42배, 미국보다 1.38배, 영국보다 2.21배 싸다. 정부가 산업용 전기를 인위적으로 싸게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싼 값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데 굳이 비싼 발전체제를 들여올 필요는 없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전면 도입으로 전기료를 인상할 경우 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소비자들의 반발이 커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결국 신재생·CHP 등 경쟁자의 부상을 억제하고 화력·원자력 발전 중심의 한전·한수원의 과점적 시장 지위를 지켜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전력거래소는 발전단가가 낮은 발전기부터 가동해 전기를 매입한다. 때문에 화력·원자력 등 발전단가가 싼 전기밖에 팔리지 않으며, 자연스레 한전·한수원의 기득권도 공고해진다. 

다만 이런 매입 방식은 생산단가만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은 문제다. 에너지 효율과 유통비용, 환경 문제 등은 고려치 않았다. 독일 등 유럽의 사례처럼 에너지는 이제 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 특히 최근 경주 지진과 화력발전 단가, 사회갈등 비용 등을 따지면 기존 발전 방식이 가격경쟁력이 월등히 높다고 보기 어렵다. 해안가의 화력발전으로부터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설치하는 송전망은 1㎞를 건설하는데 약 120억 원이 소요된다. 한전은 2014년에만 송변전설비 구축에 2조 1600억 원을 사용했다. 

이에 비해 CHP를 사용하면 송변전망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주민 반발 등 민원 발생도 피할 수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정책의 관점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환경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며 “단지 발전 단가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유통비용과 환경 등 종합적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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