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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벗어나 VR, 드론, IOT…‘인텔 맞아?’

개발자회의(IDF)로 본 ‘공룡’ 인텔의 생존전략

2016.08.29(Mon) 13:18:05

인텔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뭘까?

아마 ‘펜티엄’이나 ‘486’ 같은 프로세서가 먼저 떠오를지 모르겠다. 인텔은 여전히 컴퓨터의 두뇌인 CPU, 즉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가장 잘 만드는 기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인텔의 독주를 깰 수 있는 기업이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텔의 최근 움직임은 프로세서 중심 회사라는 기존의 생각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인텔은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인텔개발자회의(IDF)’를 개최했다. IDF는 인텔이 관련 업계에 앞으로 나올 기술과 업계의 비전을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사실상 인텔이 PC시장을 이끌어왔기 때문에 이 자리를 통해 PC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행사는 조금 달랐다. 발표 내용에서 ‘인텔’이라는 주어를 가리면 어느 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인텔은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 대신 가상현실(VR) 기술이나 드론, 사물인터넷이 주를 이었다. 먼저 인텔의 발표 내용 몇 가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상현실, 드론, 사물인터넷… 그리고 인텔의 컴퓨터

가장 관심을 끈 것은 가상현실 플랫폼이다. 인텔의 프로젝트 얼로이(Project Alloy)는 오큘러스나 기어VR처럼 머리에 쓰고 가상현실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하드웨어 플랫폼이다. 하드웨어 플랫폼이라는 이야기는 인텔이 뼈대를 만들어 놓고, 이 기반 기술을 이용해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관련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이야기다. 이 기기는 머리에 쓰는 헤드 마운트 안에 작은 컴퓨터를 집어넣어 외부의 컴퓨터와 선으로 연결할 필요가 없다. 또한 주변 사물을 입체적으로 인지하는 인텔의 리얼센스 카메라 기술이 들어가서 몸이 움직이는 방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머리에 쓰고 가상현실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하드웨어 플랫폼 ‘프로젝트 얼로이’. 사진=인텔

VR 시장은 콘텐츠의 성장보다 플랫폼 전쟁이 먼저 앞서서 벌어지고 있다. 이미 나와 있는 페이스북의 오큘러스나 HTC의 바이브가 자리를 굳혀가고 있고, 곧 구글도 카드보드 외에 ‘데이드림’이라는 가상현실 플랫폼을 내놓는다. 인텔 역시 갖고 있는 프로세서와 센서 기술을 이용해 이 시장에 뛰어드는 셈이다. 인텔은 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셈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윈도에 프로젝트 얼로이를 기반으로 하는 VR 환경을 넣을 계획이다.

사물인터넷을 위한 자그마한 컴퓨터들도 발표했다. 인텔 ‘줄(Joule)’은 여러 가지 센서 기술을 다른 기기에 접목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또한 인텔은 ‘유클리드 개발자 키트(Euclid Developer Kit)’을 내놓았다. 로봇이나 연구 목적으로 여러 가지 센서와 컴퓨팅, 또 다른 기기와 통신하는 연결성을 만들어주는 개발도구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센서나 이를 통한 사물인터넷 기기를 만들 때 인텔의 도구를 이용하라는 메시지다.

이런 기술이 종합적으로 들어가 있는 게 바로 ‘유닉 타이푼 H 드론’으로 인텔은 그동안 이 드론을 개발해서 100대를 한꺼번에 하늘에 띄우는 퍼포먼스를 여러 차례 벌인 적 있다.

이 외에도 인텔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 개발에 대한 의지도 밝혔다. 지난달에 발표했던 제온 파이의 다음 세대 제품인 ‘나이츠 밀’ 프로세서로 머신러닝, 딥러닝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컴퓨팅 환경을 발표하기도 했다. 5세대 이동통신도 빠지지 않는다. 인텔은 이미 5세대 이동통신과 관련된 기술 개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앞으로 스마트폰과 자동차, 그리고 이를 제어하는 서버가 모두 5세대 통신으로 묶이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은 다소 식상할 정도지만 그 어디에도 빠질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가장 놀라운 소식은 인텔이 ARM 기반 프로세서를 외주 생산하는 사업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ARM이라는 이름은 낯설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가 ARM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스마트폰에서 쓰는 퀄컴 스냅드래곤, 삼성 엑시노스, 애플 A9 등의 프로세서가 모두 ARM의 프로세서 기술을 사서 만든 칩이다. 인텔이 이 칩들의 생산을 맡겠다는 이야기다. 최근 몇 년간 스마트폰을 두고 인텔과 ARM 사이에 일어난 치열한 전쟁을 알고 있다면 이 소식은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으로 느껴질 것이다.

반도체는 개발만큼이나 생산이 중요한 문제다. 인텔은 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하는 회사지만 ARM은 설계 기술만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프로세서는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 같은 반도체 생산 전문 회사에 맡겨야 했다. 인텔도 그 프로세서를 위탁해서 만들어주는 사업, 즉 ‘파운드리(Foundry)’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인텔의 파운드리 비즈니스는 당장의 자존심보다 ARM 기반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위탁 생산을 통해 새로운 반도체 공정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려는 전략에 가깝다. 최근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장 설계는 더 어려워졌다. ‘18개월마다 두 배의 트랜지스터를 집어넣는다’는 무어의 법칙이 사실상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대신 이렇게 만든 공정을 활용해 인텔 외의 반도체도 생산하고, 이로서 공정 개발로 인한 수익을 높이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만큼 반도체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이야기다.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여러 센서 기술을 다른 기기에 접목할 수 있는 ‘줄’. 사진=인텔

 

반도체 공룡, 인텔도 피할 수 없는 컴퓨터의 변화

이쯤 되면 ‘인텔의 새 프로세서 이야기는 없나’라고 궁금해할 수 있다. 그동안 인텔은 IDF를 통해 새로운 반도체 공정 기술, 혹은 차세대 프로세서 기술들을 주로 밝혀 왔다. 이번에도 프로세서 관련 내용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프로세서 자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진 않았다. 더구나 PC 업계에서 잔뜩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7세대 코어 프로세서 ‘카비 레이크(Kaby Lake)’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과연 인텔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인텔의 변화는 당연하지만 위기에서 온다. 그동안 반도체 시장, 특히 인텔이 집중해온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었다. 인텔은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와 생산 기술을 기반으로 수십 년 동안 엄청난 프로세서를 만들어 왔다. AMD라는 경쟁자를 만나면서 그 기술 발전 속도는 더 빨라졌고 가격은 떨어졌다. 그 결과 PC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지만 이내 포화 상태를 이뤘다.

PC 교체 주기는 늘었고, 사람들은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은 인터넷 이용량을 급격히 늘리면서 인텔이 서버 시장에서 강자가 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PC만으로는 컴퓨터 시장을 손에 쥐기 쉽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모든 기기는 컴퓨터를 필요로 하고, 더 많은 기기가 연결되고 있지만 업계는 컴퓨터 시장의 축소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텔은 ‘유닉 타이푼 H 드론’ 100대를 한꺼번에 하늘에 띄우는 퍼포먼스를 여러 차례 벌인 적 있다. 사진=인텔

인텔로서도 PC와 서버 중심의 사업을 벗어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제는 기기 자체에 대한 요구보다도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서비스가 더 중요한 환경이 됐다.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플랫폼을 바라보는 게 인텔로서도 당연한 일이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인텔은 AMD 같은 직접적인 경쟁자만 이기면 될 줄 알았지만 세상은 또 한 번 달라졌고, 시장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당장은 VR이나 드론, 사물인터넷 플랫폼 같은 비즈니스가 인텔과 직접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 역시 컴퓨터의 확장 분야라는 점은 인텔도 인정한 셈이다. 크고 비싼 컴퓨터 대신 작고 싸지만 어디에나 들어가는 PC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온 것이다. 그동안 반도체는 돈을 찍어내는 사업으로 불렸다. 누가 더 세밀하게 반도체를 그려낼 수 있느냐의 경쟁이었고, 그 결과는 더 높은 수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컴퓨팅 환경은 달라지고 있다. ‘컴퓨터’라는 말의 범위도 달라졌다. 인텔의 변화는 그 흐름의 증거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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