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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을 앞두고

‘나쁜 관행’을 ‘법으로’ 바꾼 공직선거법 개정 사례

2016.08.08(Mon) 11:36:07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주요 쟁점 모두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통상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면 국면이 수습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김영란법의 경우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실제로 국내 포털에서 ‘김영란법, 한숨’이라는 키워드로 최근 두 달간의 뉴스를 검색하면 115건이 검색된다. ‘김영란법, 우려’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무려 2577건이 검색된다. 보수 성향 언론을 중심으로 ‘김영란법, 우려’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김영란법을 관철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열망은 매우 강렬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은 수백만 명이 관련되어 있는 ‘관행’을 법적 강제를 통해, 일거에, 급진적인 방식을 통해 변경시키려는 법안이다. 한마디로 급진적인 방식의 ‘관행 변경 강제법’의 성격을 갖고 있다.

   
7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진=고성준 기자

 

급진적인 방식의 관행 강제 변경법

모든 관행이 좋은 것은 아니다. 나쁜 관행도 많다. 김영란법은 나쁜 관행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의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김영란법은 포괄하는 대상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고, 모호한 규정들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관행의 강제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실제 성공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김영란법에 대한 찬반 논란을 단순히 ‘반(反)부패’라는 대의명분에 입각한 선악 대결구도로 재단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입법을 통해 관행의 급격하고 강제적인 변화가 성공한 사례가 있다. 자신의 선거구에 거주하는 유권자가 대상인 경우, 국회의원의 경조사비 지급과 결혼식 축사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이었다.

한국에서 정치를 하려면,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정치자금이 필요했다. 그 가운데에는 지역구 주민의 관혼상제와 관련된 경조사비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예컨대 서울의 국회의원 선거구의 유권자는 대략 15만∼20만 명 내외이다. 그런데 관혼상제는 백일잔치, 돌잔치, 결혼식, 환갑잔치, 진갑잔치, 장례식 등 ‘생애주기별’로 포진해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 입장에서 보면 관혼상제와 관련된 유권자들의 각종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커지게 된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유권자 한 명 입장에서는 국회의원에게 부조금을 요청하는 게 한두 번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1000번∼10만 번이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횟수가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돌잔치, 결혼식, 장례식장만 찾아다녀도 한 달에 수십∼수백 번을 다녀야 할 만큼 많다. 그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5만 원 정도의 부조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역구에서 한 달에 100회 정도 관혼상제가 있고, 국회의원 임기 4년을 적용하면 부조금으로 내는 금액만 무려 2억 4000만 원이 된다.

이 정도 규모가 되면, 제 아무리 국회의원이라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왜? ‘관행’이 그랬기 때문이다. 게다가 ‘A 아무개’의 행사에는 부조금을 냈는데, ‘B 아무개’ 행사에 부조금을 안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그야말로 ‘원수지는 일’이며, 선거에서 나를 찍지 말고 떨어뜨리라고 촉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강요되던 ‘부조금 관행’: 부패의 순환생태계

많은 국회의원이 아등바등 정치자금에 목을 매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뒷돈을 챙기려고 노력했던 이유 중에는 이처럼 지역 주민들에게 나눠줄 경조사비를 마련하기 위한 취지도 적지 않았다. 흔히 “정치하려면 돈이 들기 마련이다.”라고 표현을 할 때, 그 돈 중에는 동네 유권자들의 경조사비도 포함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런 경우, 국회의원의 경조사비 지급은 하나의 정치자금 순환 생태계’를 구성하게 된다.

①(유권자 개개인은) 관혼상제에 국회의원에게 부조금 요구→②국회의원은 동네 유권자 행사에 경조사비 지불→③돈 많이 드는 정치의 구조화→④국회의원은 기업인들에게 뒷돈 챙기기→⑤국회의원과 기업인들의 결탁 가능성→⑥국회의원의 정치자금 확보→⑦국민들, 정치인들은 기업인들과 결탁한다고 정치불신 확대→⑧(다시) 지역 유권자들, 국회의원에게 경조사비 요구→⑨(다시) 국회의원은 동네 유권자 행사에 경조사비 지불….

이런 방식으로 정치자금은 돌고 돌아 유권자, 국회의원, 기업인, 뒷돈, 부패한 결탁구조, 정치 불신의 확대, 다시 유권자, 다시 국회의원, 다시 기업인, 다시 뒷돈, 다시 부패한 결탁구조가 순환되는 구조를 갖게 된다. 이런 경우, 단지 정치인-기업인의 이권동맹에 그치지 않고, 결과적으로 유권자-정치인-기업인은 상호 연결된 ‘결탁구조’가 된다.

2004년 이전까지 돈 많이 드는 정치구조가 되었던 핵심 이유 중에는 실제로 이와 같은 경조사비의 ‘자금 순환구조’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부패의 순환생태계’ 전체를 추동하는 근본 동력이 ‘관행’에 의한 압력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치는 ‘관행’의 압력에 의한 ‘부패의 순환생태계’라는 사슬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혹은 벗어났을까?

경조사비 관련, 관행에 의한 압력을 일거에 끊어버린 것은 다름 아닌 공직선거법 개정이었다. 법으로 금지시켜버렸다.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지역 유권자에게는 경조사비를 주지 못하도록 했다. 법을 바꾸자, 국회의원들은 핑계를 댈 근거가 생겼다. “내가 말이야, 실은 마음으로는 정말 부조금을 주고 싶은데, 공직선거법 위반이어서 어쩔 수가 없네. 그러니, 좀 이해해줘∼”라고 공직선거법을 핑계 삼아 거부할 명분이 생겼다. 실제로 이러한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인해서 국회의원들은 ‘부조금 관행’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명절이면 국회 의원회관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택배상자가 쌓인다. 비즈한국DB

 

선물과 향응: ‘관행’의 압력 혹은 ‘포섭’하기 위한

김영란법은 대가성 및 직무관련성과 무관하게 연간 100만 원 이상은 금지하고, 식사-선물-경조사비가 각각 3만 원, 5만 원, 10만 원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공무원 등에게는 제3자의 요구를 전달하는 일체의 청탁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명절이 되면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국회의원, 보좌관, 비서관 등에게, 혹은 기자들에게 엄청난 분량의 선물을 보낸다. 그런데 그 선물은 ‘우정’의 징표인 경우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관행’의 측면이 더 크다.

이런 경우, 선물-접대를 하는 기관 및 기업 입장에서도 ‘혹시 남들 다 보내는데, 나만 안 보내는 것 아닐까. 괜히 나만 안 보내면, 우리만 안 보내면, 괜히 밉보이게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할 수 있다.

또 관행에 의한 압력이 아닌 경우에는, 권력수단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보좌관-비서관-기자들을 ‘포섭’하는 것이 오히려 중심목표일 가능성이 높다. 남녀관계에서 몸의 거리가 마음의 거리인 것처럼, 권력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기에게 십만 원-백만 원-수백만 원의 ‘용돈’과 ‘선물’을 주는 사람(기관-기업)이 있으면 아무래도 그 사람에게 조금 더 ‘우호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수백만 명이 관련된 ‘관행’을 급진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변경하려는 법안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후폭풍이 적지 않을 수 있다. 3만 원, 5만 원을 넘어가는 중고가 식당과 선물의 비중이 큰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3% 미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소비위축을 더 강화시킬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런 점들이 우려되기에 김영란법에 우려를 표하는 의견들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하듯이 ‘부패세력의 반발’쯤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김영란법에 우려를 표시하는 보수언론의 주장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 ‘자본에 의한 국가포획’과 ‘자본에 의한 언론의 포획’이 강력한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경우 삼성 등의 재벌문제에 대해서는 ‘광고료와 퉁치고’ 그들이 싫어하는 기사 자체를 쓰지 않는 것이 하나의 관행 및 프로세스로 정착되었을 정도이다. 보수언론의 평소 행실이 그러했으니, 보수언론이 ‘팩트’를 근거로 김영란법에 대한 후폭풍을 우려할지언정, 그런 주장이 국민들의 신뢰와 설득력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행 실시 예정인 김영란법은 애초 김영란 대법관이 제안한 것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김영란 대법관 자신은 시행예정인 김영란법에 대해 ‘김영란법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주장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애초의 김영란법이 현재와 같은 규모로 확대된 김영란법이 된 근본 이유가 재벌-관료-정치-언론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크기’가 그만큼 강력했고, 이러한 여론에 떠밀려서 만들어진 측면도 있다.

 

성공을 기원하되 ‘더 좋은 대안’을 준비해야

결론적으로, 김영란법은 어쩌면 ‘불신의 크기’가 그만큼 크기 때문에 만들어진 ‘극단적인’ 처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기되는 우려의 적지 않은 부분에 공감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조차도 그런 주장을 하는 발화자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주장이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현행 김영란법은 대폭 수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김영란법이 과거 나쁜 관행을 일거에 근절시킨 ‘공직선거법 개정’의 성공사례처럼 되기를 염원하는 것, 그리고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를 대비해서 ‘더 좋은 대안’을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최병천 정책혁신가(전 국회의원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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