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과 1993년은 이차전지 산업에서 백년에 한 번 일어나기도 힘든 일이 연이어 일어난 해였다. 1992년엔 Ni-MH(니켈수소) 이차전지가 시장에 나왔고, 1993년엔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나왔다. 전기에너지 상업화와 궤를 같이한 게 이차전지이다 보니 한 세기 동안 상업화에 성공한 이차전지는 손꼽을 정도였다. 이 이차전지들 중 끝판왕으로 인정받는 게 바로 리튬이온 이차전지다.
한 해 먼저 나온 Ni-MH 이차전지를 살리에르 꼴로 만들어버린 모차르트 같은 리튬이온 이차전지는 처음엔 소형 이차전지 쪽을 석권하더니, 곧이어 풀하이브리드에 먼저 피신한 Ni-MH 이차전지를 다시금 ‘찜쪄먹으면서’ 풀하이브리드와 배터리 전기차 분야로도 진입하며 세계시장을 석권하기에 이르렀다.
LG화학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적용한 현대 아이오닉 전기차. 출처=LG그룹 블로그 |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종주국인 일본에서 최초로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개발, 상용화를 시도한 이유 중 인상 깊은 점은 두 가지였다. 기존 이차전지와 달리 유기계 이차전지로 개발되어 3V 이상 고전압 단전지를 구현할 수 있어 이차전지 중 최고의 에너지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였고, 지구상에 리튬이 풍부한 게 또 다른 이유였다.
한데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출시된 지 23년쯤 지난 지금, 이해가 아니라 외려 오해가 깊어지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희토류 광물인 리튬의 광산을 빨리 선점하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주장이다. 대체 어떤 인사가 이런 악성 루머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촌극으로 인해 볼리비아 리튬 광산 채굴권이 자원외교의 핵심으로 등극했고, 모 정부출연연구소에서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리튬 고속추출 기술에 10억대의 인센티브가 부여되기에 이르렀다.
증권가 리포트나 언론기사에도 ‘2020년이면 리튬 고갈’이란 말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2016년 6월에는 배터리 전기차와 그리드 에너지 저장 장치용 리튬이온 이차전지 수요 증가에 힘입어 탄산리튬 선물단가가 3배가량 급증했다고 국내외 언론과 호사가들이 ‘리튬 러시’를 외치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구나…(그럴 줄 알았다).’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중요해지면서 관심이 급증해 이런 촌극이 빈번해지는 것인데, 반가우면서도 씁쓸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에게 리튬 관련 사업을 어필하기 위해 리튬 고갈을 주장하며 ‘희귀한 금속’이란 의미로 희토류라고 거짓말을 한 사업자들이 잘못 꿴 첫 단추이자 촌극의 시작이었다.
리튬은 희토류가 아니다. 자연계에 풍부한 알칼리 금속이다. 지표면, 해수, 염수에 매우 풍족하다. 다만 지표면에서 채굴할 수 있는 경제적인 리튬이 점점 줄어든다는 말을 과장하여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 한술 더 떠 ‘2020년 리튬 고갈’도 미국지질조사소(USGS) 보고서의 오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네바다 주의 테슬라모터스 기가팩토리가 2020년까지 50만 대/년의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말이 와전된 것이다.
2016년 3월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에 등장한 LG화학 리튬이온 배터리. 출처=LG그룹 블로그 |
이와 흡사한 오독은 이미 10여 년 전 Ni-MH 이차전지에도 있었다. 당시에 니켈 선물단가가 급속히 올라가 Ni-MH 이차전지가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넘어설 거라고 주장한 컨설턴트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2005년 5월, 6월을 거치면서 외려 니켈 선물단가가 급락했다.
일시적으로 경제적인 리튬 확보에 경색이 일어날 수는 있으나 자원 부존량이 풍족한 편이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세르비아, 중국 등에서 지표면 및 염수 호수 리튬 추가 생산이 계획되고 있을뿐더러 리사이클링 이야기도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게다가 리튬이온 이차전지 원가 구조 측면에서도 타격이 크지 않은 편이다. 이게 본래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개발하게 된 최고의 장점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리튬 고갈설은 설레발이 심하다 할 수 있다. 리튬 러시는 결국 누군가의 작은 희망일 뿐이다.
박철완 전기화학자
차세대전지 성장동력사업단을 책임 운영하였고, 산자부 지정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센터 센터장을 지냈다. 책 <그린카 콘서트>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