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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사건이 검찰을 깨우는 까닭

2016.05.11(Wed) 17:57:35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덕종 씨와 환경보건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5월 11일 옥시가 입주한 여의도 IFC 앞에서 영국 본사 방문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옥시 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를 상대로 한 고발이 처음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것은 지난 2009년. 서울중앙지검은 사건을 형사2부에 배당했다.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형사부서지만 혐의를 새롭게 인지해 수사를 펼쳐나가는 부서는 아니었다. 그냥 경찰을 지휘하며 경찰이 넘기는 사건을 정리해 법원으로 기소하는 곳이었는데, 당시 검찰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어느 정도 가중치를 부여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검찰은 질병관리본부의 결과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중간에 사건을 기소중지 했고, 일부 피해자들이 검찰 대신 법원에서 민사 소송을 진행해 보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처벌 없이 사건이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기업살인처벌법(기업 판매 제품에 따른 사고나 산재 사고 시 책임자 처벌은 물론 법인 매출액을 고려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법)이 없는 한국에서 ‘옥시의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검찰 내에서도 지배적이었다.

검찰 조직 내에서는 소위 특수와 공안 전문 검사가 되는 게 인정받는 문화가 있다. ‘검찰의 존재 목적은 거악 척결’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러다보니 이번 가습기 사건이 배당됐던 일반 형사부 산하 검사들은 일반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같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소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능력을 빨리 인정받아서 특수나 공안으로 부서를 옮겨야 하는데 성과를 보장할 수 없는 수사이기 때문.

6년여 만에 본격 수사 방침을 밝힌 검찰은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형사2부 검사를 모두 특별수사팀으로 꾸렸다. 형사2부에 배당되어 있던 일반 사건은 모두 다른 부서에 넘겨주고 오롯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만 매달렸다. ‘공소시효까지 감안할 때 너무 늦었다’는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검사를 계속 충원하며 수사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그동안 옥시 측이 저지른 만행들을 찾아냈다.

옥시는 6년 동안 수사기관이 미적거린 틈을 놓치지 않았었다. 피해자를 외면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보고서를 조작했다. 서울대와 호서대 등에 연구 용역을 준 뒤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실험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당연히(?)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보고서가 작성됐다. 서울대 교수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자문료 명목의 금품을 먼저 옥시 측에 요구했다고 한다. 게다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언론에 접촉해 해당 보고서가 나온 것은 본인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알리려고까지 했다.

   
▲ 신현우 전 옥시 대표가 지난 5월 9일 오전 서울 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하지만 작심하고 달려든 검찰 수사에 덜미가 잡혔다. 검찰은 수사를 확대해, 옥시 영국 본사를 기소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물론 검찰 수사에서 나오는 게 전부 범죄 혐의는 아니다. 검찰에서 기소를 했다고 하더라도 혐의가 모두 유죄로 판결나는 사건은 드물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전례가 없기 때문에 옥시에 대한 처벌이 가능할지는 확신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검찰은 피해자들의 안타까움을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의미 있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언론에 매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실리고 있고, 옥시와 다른 업체들의 뻔뻔한 대응이 질타를 받고 있다. 옥시 등 제조업체들은 뒤늦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국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옥시라는 기업도 잘 몰랐던 국민들이 이제는 옥시가 만드는 제품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유력 정치인도, 대기업 오너 일가도 연관되지 않은 사건임에도 검찰 수사가 국민과 언론의 절대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로부터 환영받는 검찰 수사는 이례적이다. 한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전쟁 중인 전선에 비교하면 그동안 검찰은 특공대 부서만 주로 인정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었죠. 일반 전선을 지키면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는 경찰에게 넘기는 경향이 있었던 것인데 이번 사건을 토대로 검찰 내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경찰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검찰 조직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겠지만, 거악이 관련되지 않았더라도 검찰이 사건을 주도하며 끌고 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대검찰청의 핵심 관계자 역시 “국회에서도 옥시에 대한 청문회 얘기가 나오지 않느냐”며 “잘못된 제품을 판매했을 때 수천억 원을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부터 기업 살인죄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법안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라고 높게 평가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비즈한국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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